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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이 러브호텔에 왜 가?"에 대해 이 여성이 내놓은 대답

유도선수 출신의 방송인 오하시 그레이스

  • 박수진
  • 입력 2018.11.11 12:03
  • 수정 2018.11.11 14:03

″휠체어에서 생활하면서 콘돔을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니는 여성이 있다”

 

섹스를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을 취재하던 중 들려온 소식이다.

콘돔을 늘 지참하고 다니는 여성은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밖에 본 적이 없다. 게다가 휠체어를 타고 생활한다니? 당장 만나보고 싶어졌다. 

그 여성의 이름은 오하시 그레이스다. 일본계 미국인인 그레이스씨는 일본 NHK의 장애인을 주제로 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바리바라’의 출연자이기도 하다. 

 

허프포스트와 인터뷰하는 오하시 그레이스
허프포스트와 인터뷰하는 오하시 그레이스 ⓒKAZUHIRO SEKINE

 

그레이스씨는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다. 어깨 아래로는 거의 움직이지 못 하고, 감각도 없는 중증장애인이면서 일도 연애도 활발하게 하는 인물이다.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이메일을 보내자 이런 답변이 왔다.

″여성이 성에 대해 오픈하는 것이 여성의 사회 진출의 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꺼이 인터뷰하겠습니다!”

그레이스씨는 TV 출연 때도 자신의 경험을 섞어 성에 대해 직설적으로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 생활보조인의 도움을 받으며 오사카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그레이스씨를 만났다. 그레이스씨는 침대에서 웃는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KAZUHIRO SEKINE

 

″장애인이 러브 호텔에 왜 가?”

 

오하시 그레이스(이하 그레이스): 지금의 남자친구는 사이타마 현에 있는 재활 센터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교통사고로 척수를 다쳤고, 저와 마찬가지로 휠체어 생활을 합니다. 시설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공간이 나뉘어져 있고, 이성이 상대쪽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금지돼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연애 금지였어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둘만 있을 장소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그런데 찾다보니 휠체어를 탄 채 들어갈 수 있는 러브호텔이 거의 없었어요. 휠체어 탄 사람이 러브호텔을 이용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죠. 우리 둘이 함께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러브호텔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장애인 한 명과 비장애인 한 명이라면, 작은 장애물 정도는 휠체어로도 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휠체어 탄 두 명은 바닥이 한 단이라도 높아지면 앞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엘리베이터도 휠체어 두 대가 같이 들어가기엔 너무 작아서 따로 타야했고요. 꽤 힘든 과정을 거쳐, 이런 장애물들이 최소한인 시내 호텔을 하나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남자친구와의 섹스는 잘 되지 않았지만, 저는 침대에서 그저 함께 할 공간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다보니 애초에 섹스란 어떤 걸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됐어요.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똑같이 섹스를 못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각자 서로의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생각해봐요. 삽입을 고집하지 않는 경우도 그중에 하나고요.

어쩌면 (섹스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서로를 생각하는 시간이 그만큼 더 많으니까, 그쪽도 멋지게 사랑하고 있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외형적인 섹스보다 상대를 생각하는 시간이 대단히 더 낭만적인 시간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게 어쩌면 장애인의 특권일지도 모르겠네요.

섹스를 하는 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을 때의 기쁨이나 성취감도 있지만, 그런 앞의 과정도 섹스의 일부이니까 일반적인 섹스 형태 이상의 섹스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KAZUHIRO SEKINE

 

한 달에 한 번 HIV 검사, 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성교육

 

그레이스씨는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하기 전, 베이징 올림픽 미국 대표 선발전에 나갔을 만큼 우수한 유도선수였다. 그는 지금의 성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가 18살 때 다니던 올림픽 훈련센터 덕이라고 말한다.

 

그레이스: 미국 선수촌에서는 성교육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선수를 비롯한 모든 분들, 고무를 꼭 씁시다”라면서 매일 콘돔을 나눠줍니다. 항상 갖고 다니라는 말이죠. 혹시 불쑥 임신하면 올림픽에 나갈 수 없으니 갖고 다니라는 거예요. 그때 습관 때문에 지금도 콘돔을 갖고 다니고 있어요. 섹스를 즐기는 건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도 배웠습니다. 시합 전에 긴장을 풀 수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요.

HIV 검사는 매달 한 번씩 받았습니다. 성병 검사도 있고, 저용량 경구피임약도 생리 불순을 예방하기 위해 처방받아 복용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섹스에 대해 말하는 게 터부시 되지만, 미국에서는 ‘섹스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다양한 대책을 취하고 있었던 거죠.

 

자료사진
자료사진 ⓒpioneer111 via Getty Images

 

여성이면서 장애인으로 성에 대해 말한다는 것

 

그레이스: 여성이 성에 관해 말하면 더러운 것처럼 보는 시각이 많고, 장애인이 성에 관해 말하는 것 역시 위화감을 갖는 사람이 많습니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연애 이야기를 할 때와 장애인들이 연애 이야기를 할 때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거든요.

인터넷에는 저에 대해 ”기분 나쁘다”는 식의 댓글도 많이 달립니다. 하지만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서로 사랑하고 싶고, 연애 상대도 누구라도 좋은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고 싶거든요. 섹스도 하고 싶은 날이 있으면 하기 싫은 날도 있고, 사랑이라는 게 결국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하는 것이고 그건 장애인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장애인이 되면 그런 개별적인 특성들은 다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깨려면 정중하게 설명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아무래도 공손하게 대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아니야!”라고 강하게 말하며 장벽을 깨야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특히 여성 장애인으로서, 이 부분은 신중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오히려 반발을 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발이란 ‘당신을 거부한다‘, ‘당신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사 표시잖아요. 그런 반응에 직면하는 게 당사자에게는 가장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신중하게 말하는 방식으로 성에 대해 오픈해나가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KAZUHIRO SEKINE

 

*허프포스트 일본판의 「なんで障害者がラブホを使うねん」世間の思い込みに、重度障害者の大橋グレースさんはどう答えた?를 번역,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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