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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공범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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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 전 대법관이 경호원의 부축을 받는 사진이 실렸다. ‘험난했던 ‘시골 판사’의 첫 출근길…시위대에 밀려 넘어지기도’라는 제목이 달렸다. 중간제목은 ‘신변위협 우려해 일찍 관사로 퇴근’, 본문은 ‘첫 출근길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노조원들은 법원 민원실에서 난동을 부렸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9월11일치 <동아일보>를 보고 깜짝 놀랐다. 현장에 있었던 그는 경찰에 막혀 박보영 판사를 만나지 못했다. 박 판사는 2014년 서울고법 판결을 파기하고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한 대법원 3부 주심이었다. 양승태 재판거래 문건에서 쌍용차 판결이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에 기여했다”며 박근혜 국정운영 협조사례로 뽑혔다. 정리해고 이후 동료와 가족 30명을 잃은 그는 박 판사를 만나 재판거래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추석 명절 고향에서 시골 판사로 간 대법관을 폭행했다는 비난을 받을까 걱정이었다. 2009년 파업이 떠올랐다. 정부와 언론은 노동자들을 폭도로 몰았다. 몇 해 뒤 후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형, 사람들이 우리를 빨갱이, 폭도라고 해요.” 평택에서 일을 구하지 못한 윤형이는 인천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었다. 얼마 후 쌍용차 부품사 면접을 보게 됐다며 소주를 사들고 찾아왔다. 그러나 사회는 ‘쌍용 출신’을 받아주지 않았다. 2012년 3월 후배가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22번째 죽음.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렸다. 얼마 전 30번째 죽음을 치르고 나서야 복직에 합의했다.

김 지부장은 보도 당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동아일보>는 “사실 확인 결과 박보영 판사는 시위대에 밀려 넘어진 사실이 없다”며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독자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좀비는 또 다른 좀비를 만들었다. <문화일보>는 <동아일보> 보도를 근거로 ‘대법관 출신 시골판사 선의마저 짓밟은 반법치 행패’라는 사설을 실었다가 “허위사실을 근거로 논평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정정했다.

그런데 한달 뒤인 10월10일 국정감사에서 한국당 이완영 의원은 “박보영 전 대법관, 출근할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봉변당했죠?”라고 물었고,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그렇다.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좀비는 죽지 않는다.

가짜뉴스는 노조 혐오, 반노조 정서를 키운다. 노동 양극화로 대기업·공기업 노조가 직장인의 상류층이 된 시대, 귀족노조 채용세습 프레임은 청년의 분노를 자극하기 딱 좋다. 노조가입률이 높은 국가일수록 행복하고 평등하다는 진실은 사라지고, 청년들은 노조를 적대시한다. 최근 <조선일보>, <중앙일보>, 종편이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앞장선 서울교통공사 노조에 채용세습 허위기사를 쏟아내다 노조의 정정보도 청구로 된서리를 맞았다. 현대차가 최대 주주인 <한국경제>는 ‘“사내하청 직원은 직접교섭 대상 아닌데…” 현대차·정규직 노조도 ‘당혹’’ 기사로 노노갈등을 부추기다 정정보도를 냈다. 조기진화로 좀비의 확산을 막았다.

2013년 7월21일 현대차 비정규직 희망버스. <한국경제>는 ‘쇠파이프 든 2500명, 펜스 뜯고 강제진입’이라는 기사를 썼다. 쇠파이프는 한 개도 없었다. 새누리당은 “쇠파이프를 동원해 무법천지의 폭력을 행사했다”고 비난했다. 당시 희망버스 기획단이었던 필자는 바쁘다는 이유로 언론중재위에 제소하지 않았다. ‘쇠파이프 난동’은 지금도 ‘진짜뉴스’로 떠돈다. 허위보도를 방치한 필자는 가짜뉴스의 공범이었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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