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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05일 13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1월 05일 15시 00분 KST

기다리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다

보헤미안 랩소디
huffpost

영국의 락밴드 퀸과 그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다. 기다리던 영화였다. 실망스럽지 않았다. 최근 개봉한 거의 모든 영화들, 특히 한국영화에게 실망을 했던지라 오랜만에 극장에 간 보람이 있었다. 10월은 이런저런 일로 내 유일한 취미인 영화볼 짬도 내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을 낸 보람이 있었다. 단상 몇개.

조심스러운 판단이지만, 사람의 감수성은 대략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받았던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인식이나 사유의 깊이는 나이들수록 달라질지 모른다. 그러나 취향, 예컨대 음식, 음악, 예술, 사소한 생활의 대상들에 대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등은 나이를 먹는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음악이나 미술 등의 취향은 특히 그렇다. 나는 지금도 그 시절에 즐겨 들었던 노래를 찾아 듣는다. 그만큼 취향은 보수적이다. 그 보수성이 꼭 좋다는 뜻은 아니고 조금씩의 변화도 있지만.(예컨대 나는 나이들수록 오페라가 좋다) 퀸은 그런 음악 중 하나였다. 

보헤미안 랩소디

이 영화는 1970년 프레디 머큐리가 밴드에 가입하는 시점부터 시작된다. 영화는 크게 머큐리의 사생활과 밴드 활동의 두축으로 구성된다. 브라이언 메이(리드 기타), 로저 테일러(드럼), 존 디콘(베이스) 등 밴드의 다른 멤버들은 머큐리의 관계에서 머큐리의 시점을 통해서 조명된다. 그들 모두의 이야기를 다루는 건 영화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이해할 법한 설정이다. 그 설정에 기반해 꽤 설득력있게 영화는 전개된다.(생존해 있는 멤버들이 영화의 ‘고증’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각 멤버들의 대학 전공을 두고 그 자신도 디자인을 전공한 머큐리가 쏟아내는 영국식 위트와 풍자도 재미있다.

일단 머큐리라는 인물이 지닌 ‘개성’ 이 드라마틱하고 영화적이다.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파시(Parsi) 가족에서 태어나 아프리카, 인도에서 살다가 10대후반에 영국으로 이주한 머큐리의 성장배경부터가 통상적이지 않다. 1946년생(1991년 사망)으로 24살에 밴드에 합류한 머큐리는 영화의 초반부에 나오듯이 공항의 하역노동자로 일하는데(아마도 일종의 알바) 그 장면에서도 ‘인종주의’적 편견이 드러난다. 영화는 아주 깊이있게 다루지 않지만, 머큐리의 주변인적 인종성, 그리고 영화에서 상당한 비중을 두고 다루는 그의 동성애 성향이 당대에 가졌던 의미에 초점을 둔다. 지금보다 훨씬 소수인종과 동성애자에 대해 억압적이었던 당대의 시대 분위기가 정확히 밴드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나같은 문외한이 말할 바는 아니다.(영화에는 그런 분위기를 짐작케 하는 언론 인터뷰 등이 꽤 길게 나온다) 다만, 자신들의 음악적 지향점을 설명하면서, 주류가 아닌 주변인들을 대변하는 밴드가 되겠다는 머큐리의 말에는 그의 이런 독특한 정체성이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밴드의 대표곡 중 하나인 ‘We Are The Champions’가 좋은 예다.  

영화에는 락음악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1970-80년대 대중음악의 소소한 풍경이 흥미롭게 제시된다. 그 풍경은 단지 퀸만이 아니라 당시 서양대중음악계 전반의 모습처럼 읽힌다. 이제는 모든 것이 컴퓨터로 조작되지만, 퀸이 음악을 녹음하던 시절에는 다양한 (지금보면 코믹해보이는) ‘아날로그’ 방식이 사용되었다. 영화에는 밴드의 대표곡중 하나인 ‘보헤미안 랩소디‘의 녹음 장면이 꽤 길게 묘사되는데 재미있다. 밴드의 멤버들도 머큐리가 작사한 내용의 정확한 의미를 몰랐다는 것 등. 그리고 지금 들어도 혁신적인 이 노래가 당시의 주류대중음악계에서 받았던 오해와 홀대 등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그리고 그런 ‘반항‘과 ‘저항’이 우리시대의 대중음악계에는 얼마나 허용되는지 궁금해진다. 하긴 이미 락의 시대는 끝났으니 이런 얘기를 할 것도 없지만.

물론 어떤 장면들은 다소 상투적이다. 짐작한 바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음악을 하는 아들을 못마땅해하는 아버지의 모습, 그런 가족과의 화해, 밴드 멤버들 사이의 동료애와 갈등과 화해, 동성애때문에 생기는 여러 긴장관계들 등. 그러나 지금 보면 다소 상투적으로 보이는 이런 모습들이 당대에 가졌을 ‘전형성’을 생각해보면 그것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이 있다. 영화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이 주는 압도감도 대단하지만 프레디의 삶과 연결되어 소개되는 퀸의 노래들이 주는 감흥은 크다. 그런 감흥에는 어쩔 수 없이 이 밴드를 좋아했던 내 젊은 시절의 정서도 작용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높은 ‘싱크로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다만, 머큐리의 독특한 입모양은 과도하게 강조된 느낌을 준다)

퀸을 알든 모르든 볼 만한 음악영화다. 추천할 만한 영화가 눈에 띄지 않는 때에는 특히 그렇다. 꼭 극장에서 보시라. 

*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