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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군대에서 만난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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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일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 내려졌을 때 저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제가 군에서 만났던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1979년부터 1981년까지 후방 사단 신병교육대에 근무했던 저는 당시 여호와의 증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신병교육대에서 기간병들이 하는 궂은 일 중에는 여호와의 증인들을 설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총을 들고 하는 훈련을 거부했습니다. 총은 살인 무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학물이라도 먹은 기간병들은 “총은 방어용 무기”라거나 “누가 네 가족을 쏴서 죽이려고 한다면 네가 총을 들어서 가족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들을 논리적으로 제압하려고 했습니다.

다른 기간병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을 때리거나 기합(얼차려)을 주는 등 가혹 행위를 했습니다. 그래도 여호와의 증인들은 총을 들지 않았습니다. 결론은 감옥행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한 사람과 나눴던 대화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왜 총으로 사람을 쏘라고 합니까? 총 쏘는 대신에 공사판에서 중노동을 시키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나라는 누가 지키지? 다들 군 복무 대신에 공사판으로 가면 어떻게 하나?”
“5년 동안 중노동을 시키면 될 것 아닙니까? 저는 총을 드느니 차라리 중노동 5년을 하겠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5년 중노동보다는 3년 군 생활을 할 겁니다.”(당시 군복무기간은 거의 3년이었습니다.)

“공사판에서 노동을 제대로 안 하고 시간만 보내면 어떻게 하지?”

“그럼 그때 감옥에 보내면 되지요.”

훈련병 신분이었던 그 여호와의 증인 앞에서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 사람 말이 옳았기 때문입니다. 그 여호와의 증인은 본래 허리가 좋지 않았는데 가혹 행위까지 당해서 군부대 밖 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했습니다. 제가 인솔자였습니다. 그는 병원에 갈 때 탈영을 하려고 했지만, 인솔자인 제 입장이 곤란해질 것 같아서 탈영을 포기했다고 나중에 저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그가 탈영을 감행했다면 제 군 생활도 순탄치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제대하면서 앞으로 10년쯤 뒤에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될 것 같다고 예상했습니다. 집총을 거부하는 소수의 사람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대체복무제는 매우 합리적인 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놈의 대체복무제’는 제가 군 생활을 한 지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도입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체복무제는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거나 채택했던 거의 모든 선진국에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제도입니다. 국제연합 인권위원회와 가톨릭 로마 교황청, 또 대부분의 종교계에서도 대체복무제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못한 것은 일제 강점기와 박정희 전두환 군사 쿠데타로 형성된 군사 문화의 영향,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특혜를 줄 수 없다는 보수 기독교 교단의 반대 등 여러 가지 비합리적 이유 때문입니다.

지난 6월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 없는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으니 이제 비로소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번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짚고 대체복무제를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11월2일 치 신문 사설 제목을 보겠습니다.

<경향신문>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 합리적 대체복무제 기대한다

<국민일보> 현역 복무하는 청년들 박탈감은 어떡할 건가

<동아일보> 종교적 병역거부 무죄, ‘대체복무 없는 면제’ 형평 어긋나

<중앙일보> 종교적 병역거부 무죄 … 국회는 대체복무 입법 서둘러야

<한겨레> “민주주의는 관용과 포용 인정해야 한다”

<한국일보>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대법 판결, 합리적 대체복무제 서둘러야

그런데 <조선일보>와 <문화일보>는 좀 달랐습니다.

<조선일보> 우리 사회 안보 사치와 ‘설마’ 病 보여준 ‘병역거부’ 판결

<문화일보> 잇단 국가적 논쟁 사안 판결과 大法院 정치화 우려

<조선일보> 사설 내용을 일부 살펴볼까요?

“대법원은 이 판결을 내리면서 우리 대한민국이 어떤 안보 상황에 처해 있는지 한 번이라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 평화가 온 듯하지만 실은 정규군만 120만명에 달하고 핵과 생화학 무기로 무장한 북한군이 지척에서 위협하고 있다.

우리처럼 엄중한 안보 상황에 있지 않은 나라라면 ‘소수자에 대한 관용’도 존중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이 그럴 수 있는 처지인가.

이 판결을 보면서 나라가 안보 사치에 빠져 국가 생존을 놓고 공론(空論)을 벌이고 있는 것만 같다. 모든 것이 ‘설마 전쟁이 나겠느냐‘는 심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대법원의 판결을 ‘안보 사치’라고 비판한 것입니다. <문화일보> 사설 내용은 좀 더 심합니다.

“문 정권 출범 뒤 이미 8명의 대법관이 교체됐고 앞으로 5명이 더 바뀐다. 전체 14
명 중 13명이 문 대통령 임기 때 임명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면서 대법원(大法院)이 특정 이념과 정치적 편향에 치우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는데, 불행히도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고법원마저 법리(法理)보다 ‘코드’를 앞세운다는 의심을 자초하면 국민의 사법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

최근 내려진 ‘병역·강제징용·종북’ 등 3건의 국가적 논쟁 사안들에 대한 판결을 보면 기우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지난 1일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을 포함해 일제 강제 징용 재상고심 판결,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에 대한 이른바 ‘주사파·종북 발언’ 사건은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그런데 최근 교체된 박정화·민유숙·김선수·이동원·노정희 대법관 등 5명이 3건의 판결에서 똑같은 목소리를 냈다. 박·노 대법관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김선수 대법관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 출신이다. 모두 양심에 따른 결정을 내세우겠지만, 민감하게 찬반이 바뀔 수 있는 사안임을 고려하면 ‘지명권자’에 따라 똘똘 뭉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뿐만 아니라 일제 강제 징용 재상고심 판결까지 문재인 정부 ‘코드 판결’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가의 반응은 어떨까요? 자유한국당 공식 논평이라고 할 수 있는 송희경 원내대변인의 논평은 이렇게 나왔습니다.

“개인의 신념과 양심을 중시한 법원의 판단은 존중한다. 그러나 부작용을 최소화할 제도적 보완 장치가 미비된 상황에서의 이번 결정은 다소 성급한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분단이라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도 간과해선 안 된다. 북핵 위협은 여전히 상존하고 남북은 대치하고 있다. 북한의 조선노동당 규약에는 ‘적화통일’이 버젓이 명시되어 있다. 현역 장병들의 박탈감과 사기 저하도 우려된다.”

“오늘 대법원의 판결로 대체복무제의 입법이 더욱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자유한국당은 현역 복무자들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국방 의무의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은, 모든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 마련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을 약속드린다.”

판결의 파장으로 인한 부작용을 걱정하면서도 신속한 대체복무제 법제화를 약속했습니다. 이 정도면 꽤 합리적이고 적절한 논평입니다. 그런데 정치인들 개개인의 반응은 전혀 다르게 나왔습니다.

- 김성태 원내대표, 2일 원내대책회의

“문재인 대통령께서 가장 대표적인 코드인사인 김명수 대법원장을 그 논란과 반대 속에서도 앉혀 놓으니까 달라지긴 달라진다. 역시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병역은 양심의 자유에도 불구하고 헌법이 국민에게 부여하고 있는 신성한 의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겨 주기 바란다.”

- 홍준표 전 대표, 2일 페이스북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그런 판결을 했는지 의아스럽지만 문 정권의 선 무장해제에 부합하는 코드 판결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국가안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법인데 이제 3년도 남지 않는 정권이 오천만 국민을 김정은의 말 한마디로 이런 무장해제 상태로 몰고 가는 것을 우리는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 윤상현 의원, 2일 페이스북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군대 가면 양심 없는 사람입니까? 군인 되면 양심 버린 사람이 되는 겁니까? 군인 애인 두면 양심 없는 사람과 사귀는 것입니까?

코드 대법원의 양심 없는 판결은 결국 문재인 정권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안보 재앙입니다. 이러면 함께 잘사는 국가는커녕 함께 촉 망하는(‘폭망하는’을 잘못 쓴 듯) 국가가 됩니다.

대한민국은 이런 대법원의 끼리끼리 코드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군대 가서 나라 지키는 대한국민 군인들의 진짜 양심을 지켜야 이 나라도 지켜낼 수 있습니다.”

- 김진태 의원, 2일 논평

“이제 다 군대 못 가겠다고 하면 나라는 누가 지키나? 이 정권은 어떻게 이렇게 국방력을 허무는 일만 골라가며 하는지 모르겠다. 북한군 복무 기간은 남자 10년, 여자 7년이고, 이스라엘도 남녀 의무 복무다. 우린 가고 싶은 사람만 간다.”

“법원은 본래 사회를 뒤따라 가며 청소해야 하는 데 요샌 앞장서서 사회를 개조하려고 덤빈다. 법복 입은 좌파 완장 부대답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법원을 시켜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도록 했다는 식의 논리입니다. <조선일보> <문화일보> 사설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이들의 주장은 궤변입니다. 제가 이들의 주장을 궤변이라고 하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전원합의체 판결입니다.

법원조직법 7조(심판권의 행사)는 반드시 대법관 전원의 3분의 2 이상의 합의체에서 재판하여야 하는 경우를 △명령 또는 규칙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인정하는 경우 △명령 또는 규칙이 법률에 위반된다고 인정하는 경우 △종전에 대법원에서 판시(判示)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해석 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부에서 재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 판결은 이 가운데 세 번째, 즉 대법원 판례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우리나라 최고법원의 최종 판결입니다. 전원합의체 판결로 판례가 변경된 것은 시대 정신과 대한민국 공동체의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법치국가의 구성원이라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특히 보수를 자처하는 언론이나 정치인이라면 더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둘째, 비판의 내용이 사실과 다릅니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을 임명한 것이 문재인 대통령 코드인사인가요? 아닙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군대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병역의 의무가 있습니다.

이제 국가안보가 위태로워질까요? 아닙니다. 극소수 병역거부자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이런저런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고 있습니다.

군대에 가는 사람은 비양심적인 사람인가요? 아닙니다. 그 양심과 이 양심은 다른 개념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문재인 정부의 북한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우리 군의 무장해제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선동입니다. 색깔론입니다.

11월 3일치 <경향신문> 8면에 이혜리 기자가 쓴 매우 유익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길지만 그대로 소개하겠습니다. 이미 읽어보신 분들은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팩트체크]

“군대 간 나는 비양심적?”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에 대한 3가지 오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2일 오후 300건을 넘어섰다. 대체로 이번 판결 때문에 군 복무를 마친 남성들이 억울하게 됐다고 호소하는 글이다. 이 같은 주장에는 대법원 판결 취지를 오해하거나 왜곡하는 부분이 많다. 경향신문은 이번 대법원 판결과 1·2심 법원에서 나온 앙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여러 무죄 판결문과 문헌을 참고해 사실과 오해를 확인했다.

“군대 간 나는 그럼 비양심적이냐?”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군대 간 나는 그럼 비양심적이냐?”, “군대에 간 젊은 청춘들은 비양심적이라는 건가”라는 주장이 많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양심의 의미와 헌법 제19조에서 규정한 ‘양심의 자유’에서의 양심의 뜻을 혼동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양심이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정의돼 있다. “나는 양심적”이라고 할 때의 그 ‘양심’이다. 여기서 양심적이라는 말은 ‘선량하다’, ‘착하다’, ‘올바르다’는 뜻으로 쓰인다.

헌법에서 말하는 뜻은 조금 다르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 양심에 관해 “헌법 제19조에서 보호하는 양심은 ‘착한 마음’ 또는 ‘올바른 생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을 추구하는 가치적·도덕적 마음가짐을 뜻한다”고 규정했다.

대법원은 이번 선고에서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했다.

단순히 선량하다거나 올바르다는 의미가 아니다. 헌법의 양심은 예를 들어 ‘집총’이 자신의 인격과 존재를 무너뜨리는 행동이 될 것이라는 절박한 내면의 소리다. 개인의 소신에 함부로 국가가 간섭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이번 판결도 이같은 양심에 대한 정의에서 도출됐다.

“나도 양심적 납세거부 하련다?”

일각에선 국방의 의무에 납세의 의무를 빗대 “나도 양심적 납세거부를 하겠다”며 판결을 비판한다. 김소영·이기택 대법관도 반대의견에서 “병역거부를 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가 있다면, 자신의 다른 행위 예컨대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는 행위가 이에 기여하는 경우에는 그것도 거부하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국가에 낸 세금이 국방비로도 쓰인다는 점에서 진정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면 세금까지 거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이런 주장에서 비롯된다.

역사적으로 양심상 결정이 확고하게 법의 보호를 받는 것은 병역거부가 거의 유일하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역사가 깊고 죽음까지 불사하는 절박함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지난 8월30일 열린 공개변론에서 이창화 변호사는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는 로마시대 때부터 시작됐고,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에서 1만2000명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일제의 징병을 거부하자 33명이 수감되고 5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기구들은 납세거부에 대해서는 이같은 양심의 절박성, 밀접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국내 문헌에 따르면 1990년 네덜란드 시민이 자신의 세금이 군대경비 지출, 핵무기 조달과 보유에 관련이 있어 납세거부를 한 사건에서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자유권규약 제18조(양심 및 종교의 자유)의 보호범위 밖에 있다고 결정한 적이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없으면 국방력 상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면 국방력이 상실돼 국가안전보장에 위기를 초래한다는 주장도 반대론자들 주장의 핵심이다. 이번 판결에서는 조희대 대법관 등 4명이 반대의견에서 “우리나라의 안보 현실은 급박하다”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매년 600명 안팎으로 전체 군인 수(약 60만명)와 비교해보면 극소수다. 국방부는 상비병력을 감축하겠다는 입장이고 매년 사회복무요원·산업기능요원·전문연구요원·공중보건의 등 입영하지 않는 보충역이 8만3000명에 이른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지속적으로 처벌해왔지만 거부자 수가 줄지 않는 추이를 볼 때 무작정 수감을 시키는 것보다 대체복무를 마련해 대안을 주는 게 국방력에 더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 대법관 등 4명의 반대 의견은 국가안보 태세를 굳건히 갖춰야 된다고는 했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상비병력에서 뺐을 때 국방력에 어떤 상실이 있는지는 입증하지 않았다.

이동원 대법관의 별개 의견도 주목을 받는다. 이 대법관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수, 그들에 대한 병력 자원으로의 현실적 활용 가능성, 정보전·과학전의 양상을 띠는 현대전의 특성 등을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해야 한다는 다수의견에 동의했다. 다만 이 대법관은 “국가안전보장에 지장이 생기게 된다면 다시 그들을 현역병 입영 대상자 등으로 하는 병역처분을 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어떻습니까? 이처럼 몇 가지 사실만 확인해도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한 맹목적 비판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셋째,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자격입니다.

문득 궁금했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군대는 제대로 갔다 왔을까? 확인해 보았습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예비역 병장입니다. 최소한 군대 문제에 대해서 뭔가 말을 할 수 있는 기본 자격은 갖췄습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어떨까요? 홍준표 전 대표는 자서전 <변방>에 이렇게 썼습니다.

“1980년 4월 낙방한 후 방위 소집에 응했다. 그 당시 내 체중은 48킬로그램이었고 시력과 피부 병력이 겹쳐 4급 판정을 받고 방위 소집에 응해 14개월간 군부대에서 근무했다.”

홍준표 전 대표의 현재의 모습과 체력을 보면 잘 믿어지지 않는 얘기지만 아무튼 병역의 의무를 마치긴 한 것입니다.

윤상현 의원은 석사 장교 출신입니다. 석사 장교는 1980년대에 6개월 군사훈련을 받고 소위로 임관하면 곧바로 전역하는 제도였습니다.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아 폐지됐습니다. 윤상현 의원은 소위 임관일과 전역일이 같습니다. 병역 의무를 마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군 복무는 딱 하루만 한 셈입니다. 김진태 의원은 공군 대위로 전역했습니다.

네 사람 모두 병역의 의무는 다한 셈입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 정치인들은 군대 문제에 대해 발언을 할 때는 좀 조심해야 합니다.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 출신 대통령이나 공직자 중에는 병역 면제자이거나 군 생활을 했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병역의 의무를 부실하게 이행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관지 확장증으로 군대에 가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부 고위 공직자 중에는 병역 면제자가 참 많았습니다. 김황식 국무총리, 정운찬 국무총리, 정정길 대통령실장, 원세훈 국정원장 등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청와대 지하 벙커에 외교·안보 수뇌부가 모여 있는 장면은 국민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벙커 멤버의 절반이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들인 것으로 드러나 구설에 오른 적도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성이라 해당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완구 국무총리는 평발 관련 질병으로 보충역 판정을 받았고, 황교안 국무총리는 두드러기로 군대에 가지 않았습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내년 2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나설 것 같은데 병역 문제를 어떻게 돌파하려고 할지 의문입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야권 인사 가운데 차기 대선주자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지지자들은 그가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것을 알고 있을까요?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보수 정당 공직자 중에 군대에 가지 않았거나 군 생활을 부실하게 한 사람이 많은 것은 참 이상한 일입니다.

현 집권세력인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공직자 중에도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은 민주화 운동으로 감옥에 가는 바람에 군대에 가지 못한 경우가 꽤 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말로 하면 ‘고귀한 의무’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사회 고위층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합니다. 로마 시대부터 귀족들은 공공 봉사와 기부, 헌납의 전통을 세웠습니다. 특히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큰 명예로 여겼습니다. 이런 문화는 유럽과 미국으로 이어졌습니다.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수많은 고위층의 자식들이 참전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계층 간 대립을 완화하고 국민을 단결시킵니다. 기본적으로 보수의 가치입니다. 자유한국당의 조직강화특위 위원을 맡은 전원책 변호사가 “병역과 납세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자가 명색이 보수주의 정당에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한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핵심을 꿰뚫은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대법원 판결을 강하게 비판하는 사설을 쓴 언론사 사주 중에도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향해 끊임없이 색깔론을 제기하며 정치 공세를 펴는 이른바 보수 인사 중에 군대에 제대로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도대체 뭘까요?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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