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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갓한국 정상시민’ 향한 조롱과 풍자…불편한가?

ⓒXtvN
ⓒhuffpost

XtvN이 새로 선보인 코미디 프로그램 <최신유행 프로그램>은 제작진이 칼날을 잔뜩 세운 티가 역력한 프로그램이다. 사람을 웃기기 위해 구사하는 화법이 동시대 다른 한국 TV 코미디들과는 그 궤가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별걸 다 줄여서 말하는 요즘 세대의 경향을 살펴본다며 출발한 콩트는, 그걸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기성세대들 또한 사실은 술자리 건배사에서 온갖 줄임말을 구사하며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아우성”(아름다운 우리의 성공을 위하여)이라거나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성행위”(성공과 행복을 위하여) 같은 케케묵은 건배사를 구사하며 그것도 재치라고 즐거워하는 기성세대의 모습이 극사실주의로 재현된 대목을 보고 있노라면 실소가 터져 나온다. 별걸 다 줄여서 말하는 요즘 세대도, 요즘 것들은 별걸 다 줄여 말한다고 투덜거리면서 사실 자신들도 줄임말을 쓰고 있는 기성세대도 다 싸잡아 놀려먹는 콩트의 온도는 서늘하다.

요즘 코미디와 다른 결의 웃음공장

입만 열면 자신의 군 경력을 앵무새처럼 반복해 과시하는 ‘군무새’(군대+앵무새)들을 집요하고 정성스레 조롱하는 콩트도 독하긴 매한가지다. “그들은 사실 굉장한 사랑꾼이에요”라는 멘트가 나올 때만 해도 ‘아, 너무 놀리기 그래서 적당히 수습하고 넘어가려는 건가’ 싶었지만, 콩트는 그렇게 안전한 길을 걷지 않는다. 여자들은 왜 군대 안 가냐며 울분을 토하던 예비역들은, 술자리에 예쁜 여자 동기가 등장하자 앞다투어 순정을 고백하며 자신들이 군에서 빼돌린 물건들을 선물로 바친다. 너 주려고 안 먹고 모았다며 교회에서 나눠준 초코파이를 꺼내고, 몰래 탄피를 빼돌려서 만들었다며 탄피반지를 꺼내는 목불인견의 광경은, 마침내 누군가 “이 정도는 빼돌려야 빼돌린 거라 할 수 있”다며 수류탄을 꺼내다가 실수로 안전핀을 해제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폭발음과 함께 화면을 암전시키고는 아무런 수습도 안 해주고 끝나는 이 한 편의 부조리극. 부조리극은 프로그램 밖에서도 일어났는데, 일부 남자 시청자들이 온라인 공간에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라며 분노를 토해낸 것이다. SBS <웃찾사>의 ‘남자끼리’ 코너에서 극단적으로 희화화된 여자친구 캐릭터 이은형이 조롱의 대상이 됐을 때는 그냥 웃자고 만든 프로그램에 진지병 환자들이 훈장질한다며 ‘광대의 미학’을 이야기하던 이들이, 자신들이 조롱의 대상이 되자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이야기하며 웃음의 윤리를 찾는 광경, 덕분에 잘 봤다.

한국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한국식 이름 ‘김요한’을 만들어 달고 한국을 찾은 미국인 청년 요한 로버츠(조엘 로버츠)의 행적을 쫓는 콩트 ‘김요한 이야기’쯤 되면 자조적인 웃음은 극에 달한다. 한국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 김요한은, 인천공항에서 연남동까지 택시비용 150만원을 청구당하고도 “정이 넘치는 대한민국”이 자신을 속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어느 나라든 택시기사는 3D 업종 중 하나야. 이걸 잘 알고 있는 한국은 택시 기사님들께 그에 합당한 소득을 보장해주는 거지!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버는 나라! 역시 킹갓한국!” 찜질방 수면실에 머리끈 하나 던져두고는 “여기 우리 자리다. 짐 놓아둔 것 못 봤느냐”며 역정을 내는 사람을 만나도 “외침을 많이 당했던 한국인들 특유의 영토수호정신”이라고 해석하며 순순히 자리를 비켜주는 김요한의 행보는 눈물겹고 당혹스럽다. 비록 콩트의 주인공은 정신승리의 행보를 걷는 미국인 청년 김요한이지만, ‘김요한 이야기’가 조롱과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건 대한민국 사회다. 끊임없이 서구 선진국 국민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인정욕에 가득 찬 우리 말이다.

요컨대 <최신유행 프로그램>은 기존의 한국 코미디가 구사해온 안전한 공식, 즉 비만인과 지체장애인, 발달장애인, 외국인, 여성 등을 조롱하는 상투성에서 한 뼘쯤 달아난다. <최신유행 프로그램>이 조롱과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건 오히려 평소라면 웃음의 대상이 될 일 없이 안전하게 남을 놀리는 재미를 누렸을 한국의 수적 다수, ‘정상시민’들이다. 프로그램은 관심을 받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과장된 어조의 문구와 필터투성이 셀카를 올리고는 행복을 가장하는 소셜미디어 스타들, 군 복무 경력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며 다른 이들을 무시할 근거로 삼는 군필자들처럼 프로그램의 주 시청계층이 되는 10~30대들을 열심히 놀려먹는다. 그런 그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기성세대들이나,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해 온갖 것에 감탄하고 찬사를 보내는 외국인 예능을 즐겨 보는 평범한 시민들도 프로그램의 레이더를 피해 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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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조차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 광대

소수자들을 조롱하는 코미디를 보며 편하게 웃어온 이들은 이런 시도가 불편할 것이다. 누군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정의한 희극의 특징을 언급하며 그런 소수자 조롱이야말로 코미디의 본질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희극은 (중략) 보통 이하의 악인의 모방이다. 이때 보통 이하의 악인이라 함은 (중략) 우스꽝스러운 것과 관련해서 그런 것인데 우스꽝스러운 것은 추악의 일종이다. 우스꽝스러운 것은 남에게 고통이나 해를 끼치지 않는 일종의 실수 또는 기형이다.” 하지만 정말 그것만이 코미디의 본질일까?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위엄의 격하’가 성적이고 외설적인 유머의 보편적인 매력을 뒷받침하는 기초 중 하나라고 주장하며 미국의 인류학자 샤농(섀그넌)의 일화를 예로 들었다. 베네수엘라 선주 민족인 야노마미족의 가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부족민들은 샤농에게 고의로 추장과 그 가족들의 이름을 저속한 욕설로 대체해 알려줬다. 샤농이 다섯달 동안 공들여 조사해 기록한 가계도에는 추장의 이름 대신 ‘기다란 음경’이 적혀 있었다. 권력자를 조롱해 그에게서 위엄을 걷어냄으로써, 그조차 본질은 평범한 인간들과 다를 바 없음을 폭로하며 웃은 것이다.

이런 양상은 부족 단위 생활을 고수한 선주 민족뿐 아니라 국가를 이룬 고도문명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단국대 중어중문학과 유승현 교수는 연구논문 ‘둔황 강창의 민중적 웃음’에서 춘추시대 말 제나라 재상 안영의 일화가 문자 기반 문학과 민중문학인 강창(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나 장터에서 이야기와 노래를 섞어 연출하는 공연 성격의 중국 문학)에서 각각 어떻게 다르게 전승되는지를 비교했다. 130㎝가 채 안 되는 안영의 작은 키를 조롱해 그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서, 초나라 사람들은 사신으로 온 안영에게 대문 옆에 새로 낸 작은 쪽문으로 들어올 것을 요구했다. 안영은 태연하게 “개의 나라에 왔다면 응당 개구멍으로 들어갈 것이나, 사람의 나라에 온 것이니 사람의 문으로 들어가겠다”고 응수한다. 그러나 민간 강창을 기록한 <안자부>에서 안영은 기꺼이 그 작은 쪽문으로 출입한다. 어찌하여 쪽문으로 들어왔느냐는 질문에 안영은 “개집에 왔으니 개구멍으로 들어온 것뿐”이라 말한다.

유승현 교수는 이를 두고 “문인들의 웃음은 대체로 자기 자신을 웃음의 대상보다 우월한 위치에 놓음으로써 자신을 풍자의 대상에서 제외시킨다. 하지만 민중들은 웃는 장본인으로서 자신조차 웃음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어쩌면 이는 스티븐 핑커가 말한 ‘위엄의 격하’의 가장 발전된 형태인지도 모른다. 세계의 질서를 전도해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진 채 웃음으로써 현실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 말이다. 정치적으로 불공정하고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며 기존 질서만을 공고히 하는 농담을 일삼는 코미디언들을 변호할 때 종종 호출되는 ‘광대의 미학’은 사실 이런 곳에 적용되어야 한다. 왕의 위엄마저 격하시키기 위해, 광대는 보통 마지막 순간까지 보호의 대상이 되는 ‘웃는 장본인으로서의 자신’부터 먼저 웃음거리로 까내린 채 농담을 시작한다. 민주주의 시대의 왕인 정상시민들은 <최신유행 프로그램>이 4회에 걸쳐 선보인 농담들이 불편하겠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광대의 미학’인 것을.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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