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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구걸하는 외국인'에게 거부감이 드는 이유

ⓒ라파엘 라시드
ⓒhuffpost

종로3가역 1번 출구, 오후 6시. 퇴근 시간이다.

붐비는 퇴근 시간 종로3가역 1번 출구 근처에서 누군가 바닥에 앉아 물건을 팔고 있다. 엽서나 그림 같은 하찮은 물건들을 펴놓고 앉아 있는 그는 지체장애인도 어르신도 아닌 젊은 백인 남성이다. 지나치는 행인들 중 누군가는 “신기하다”라며 걸음을 멈추고, 그 옆 누군가는 스스럼없이 3천 원을 꺼내어 엽서 카드 한 장을 산다. 나는 서울 여러 장소에서 이와 유사한 현상을 반복적으로 목격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그들이 얼마나 파렴치한 인간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활기차고 볼거리 즐길 거리로 가득한 종로3가 근처에 살고 있다. 좌우로 사무실이 즐비한 청계천, 포장마차, 전통의 인사동, 관광객들로 가득찬 광화문, 커플들의 명소 익선동, 게이들이 즐겨 찾는 바(bar), 은퇴하신 어르신들이 장기실력을 겨루는 종묘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모여드는 곳이다.

여기는 가난이 숨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누구도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돈의동 쪽방촌이 대표적이다.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1.5평 남짓한 공간에서 사회에서 가려진 채로 살고 있으며, 폐지를 주워 팔거나 건설 현장에서 일당을 받아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빈곤은 선택이 아닌 일상이며 쪽방촌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돈을 구걸하는 백인 남성을 보았을 때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보기에 멀쩡한 그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 구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혼란스러웠다. 옆 친구는 그가 바로 베그패커 ‘begpacker’라고 넌지시 알려줬다.

베그패커란 배낭여행자 백패커(backpacker)와 구걸이라는 의미의 begging 이 합쳐져서, 배낭여행 경비를 마련할 목적으로 길거리에서 물품을 팔거나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유명 관광지인 태국에서 시작되어 현재는 동아시아 주요 도시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영국 인디펜던트의 보도에 따르면 태국은 이런 상황이 보편화되어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2만 밧 (약 70만 원)이상의 현금을 입증하는 사람에 한해서 입국을 허용하도록 출입국관리 정책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과 같은 동남아를 거쳐 대만, 홍콩, 한국에도 상륙하게 된 것이다. 베그패커들은 자체 페이스북 페이지도 갖고 있으며 활동 사진과 정보들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그패커들의 전략은 서로 유사하다. 우선 지하철역 입구나 유동인구가 많은 거리에 자리 잡는다. 여행 배낭, 캠핑 매트, 하와이 반바지 차림 등 배낭여행자임을 암시하는 아이템들을 소지한다. 여행 사진, 싸구려 팔찌, 엽서와 같은 물품을 펼쳐놓고 팔거나 ‘프리허그’(free hug)를 모방하며 모금 활동을 한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엉성한(clumsy) 현지어로 쓰여진 팻말인데 예를 들면 이런 내용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세계 여행 중입니다. 돈 없습니다. 한국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이런 눈물 나는 내용 속에 돈이 없는 이유는 생략한다.

나는 한 백인 베그패커에게 영어로 물었다. 누구이며 여기에서 뭘 하는지. 돌아온 답변은 세계를 여행하는 중이며 서울에는 며칠간만 묵을 예정인데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는 종로3가고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가 바로 당신 뒤에 있다. 창피하지 않아?” 그러자 대뜸 그 여성은 “나는 영어를 모른다.”라는 간단한 답변과 함께 더 이상 말이 없었다.

ⓒ@pipo_p4

나는 한국에서 수년간 살아가는 외국인의 한사람으로 취업허가 받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단기간 머물며 불건전한 수익 창출을 거두는 베그패커를 문제시하는 지도 모른다. 그들은 종로뿐만 아니라 홍대, 강남, 신림, 신도림 등 서울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거의 매일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에서 어김없이 만나게 된다. 이런 베그패커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당신이 지금 하는 행위가 불법인 줄 알죠? 여행자는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어떤 활동도 불법”이라고 얘기해줬고 그럴 때 마다 그들은 영어를 모르는 척 연기할 뿐이었다.

더이상 묵과할 수 없어 파출소로 향했다. “저기요. 여행자들 이 근처에서 구걸하는데 단속 안 하세요?” 경찰은 “그래서요? 저희가 어떻게 해주길 원하세요? 다른 데로 이동하시라고 할까요?” 나는 조금 당황해서 “이거 불법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귀찮은 듯이 마지못해 경찰은 “알았어요. 단속할게요.”라고 대답했다. 그 후 같은 이유로 수차례 동네 파출소를 방문했지만 그때마다 경찰은 “쟤 또 왔네”라는 표정을 지을 뿐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4개월간 며칠 전에 본 베그패커를 다시 만난 적도 있고, 며칠만 머문다는 사람을 2개월 후에 만난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진짜 여행자들인지 아니면 구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그들이 얘기하는 스토리가 어디까지 사실인지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

한번은 본인이 청각장애가 있다고 하는 베그패커를 만났는데 그는 태극기를 팔고 있었으며 이번에도 어김없이 “한국문화를 사랑한다”와 같은 글귀가 적힌 종잇장을 들고 있었다. 내가 당신이 지금 하는 행동은 사기행위이며 엄연히 불법이라고 말하자 그는 손짓인지 수화인지 알 수 없는 행동으로 “미안합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내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분명하게 말하자 갑자기 내 말을 알아듣고 그 자리를 황급히 떠나는 것이었다.

그동안 베그패커가 어떻게 한국과 아시아 전역에 확산할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이 궁금했다. 행인들이 그들에게 쉽게 지갑을 여는 동기는 무엇인지? 왜 베그패커들은 대부분 백인들로 이뤄졌는지? 만약 베그패커가 백인이 아닌 흑인이나 타 인종일 때도 행인들로부터 호기심과 우호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 있을까?

측은지심이 들어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도와주려고 걸음을 멈춘이도 있을 것이다. 또는 자유와 낭만으로 묘사되는 배낭여행자를 도움으로써 세계적으로 가장 긴 업무시간에 시달리는 아시아 사람들이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아시아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작동하는 봉건 사대주의가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침략과 식민지 경험을 출발점으로 많은 아시아 사람들의 서양 문물에 대한 무분별한 신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동경과 부러움의 상징인 백인이 내 앞에서 관용과 자비를 요청하는 드라마틱한 순간을 어쩌다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아주 잠시나마 역할이 뒤바뀐 상황을 통해 모종의 쾌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냥 베그패커가 파는 아름다운 물품을 사람들이 난생 처음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시아 사람들의 자비가 어디서 비롯된 것이든 베그패커들은 아주 영리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고 현재까지 그 결과가 아주 성공적인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 주변 친구들은 “그만둬. 왜 맨날 트위터에서 그들을 욕하니? 파출소에 신고할 것까지 있어? 그들은 누구에게도 피해주지 않았잖아.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돼?” 하지만 나는 이러한 의견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나는 백인이 아닌 혼혈 영국 시민권자로 피부색이 우리의 관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일상에서 자주 경험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주위의 외국인 친구들보다 현 이슈를 더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이 사회에서 백인이 아닌 다른 피부색 외국인이 겪는 차별이 어떤지는 나보다 관련 뉴스나 SNS가 더 잘 말해 줄 것이다. 또한 선진국 시민권자로서 이 사회에서 선진국 시민들이 받는 특권(외국인 어드벤티지)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고 있다.

베그패커들은 행인들의 지갑을 착취하려는 목적으로 아시아 국가들에서 백인 특권을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다. 단순하고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법한 구걸 행위가 이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백인이 아닌 외국인들의 노력을 비웃고 있으며, 힘겨운 삶을 하루하루 이겨내고 있는 시민들의 선의를 농락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인들을 속이기 쉬운 타깃으로 가정하는 그들의 행태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나아가 그들의 구걸 행위는 쪽방촌에서 가난한 일상을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모욕이다. 해외 여행은 삶의 필수 요소가 아니라 사치이자 특권이다. 그리고 진짜로 구걸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은 그 행위가 불가피한 것이지 선택해서가 아니다. 구걸을 자유와 낭만의 일부분으로 포장하려(exoticize)는 행위는 그렇기에 옳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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