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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를 보여주지 않았다(리뷰)

그래서 스스로 어떤 영화가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

  • 강병진
  • 입력 2018.11.02 10:18
  • 수정 2018.11.02 12:06
ⓒ20세기폭스코리아

전기 영화의 성공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론상으로는 머큐리의 삶을 잘 재현한 영화여야 하지만, 보는 내내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캐스팅은 훌륭하고, 훌륭한 작품들 만든 (문제가 많은)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퀸의 히트곡들을 다 사용할 수 있었고, 밴드 멤버들의 경험과 삶을 상당히 정확하게 담아낸 영화인데도 말이다. 

이 영화는 거대한 플래시백이다. 시작은 1985년, 머큐리(라미 말렉)가 런던에서 열린 역사적 라이브 에이드 공연 무대에 오르기 직전이다. 그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영화는 머큐리가 불사라라는 이름을 쓰면서 히드로 공항의 수하물 담당 직원으로 일했던 1970년대로 돌아간다. 록스타가 되고 싶던 그가 전통적 파시 교도 부모와 충돌하는 모습이 나온다. 나중에 퀸이 되는 스마일이라는 밴드에 합류하는 모습이 나온다. 메리 오스틴을 알게 되고 약혼하는 것도 나온다. 슈퍼 스타가 되고, ‘Bohemian Rhapsody’, ‘We Will Rock You’, ‘Another One Bites the Dust’ 등 퀸의 명곡을 만드는 걸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성공-좌절-성공 스토리다. 머큐리는 명성이 자기혐오의 미봉책이 아님을 차차 알게 된다. (아주) 짧은 깨달음의 순간을 거쳐, 현재로 돌아와 라이브 에이드 공연이라는 의기양양한 클라이맥스로 간다. 여기서 말렉은 15분 동안 머큐리를 재연하며 영화를 마무리짓는다.

ⓒ20세기폭스코리아

록의 전설이었던 머큐리를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낸 라미 말렉의 연기가 영화를 구해낼 수 없다는 사실은 이 영화에 정말 큰 결함이 있다는 증거다. 말렉은 작은 고갯짓, 과장된 손짓 하나로 잠깐이지만 진짜 머큐리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곤 한다. 최소한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머큐리의 모습을 재현해내긴 한다. 이런 순간들이 연달아 나오기 때문에, 말렉의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는 이 영화가 사실 고르지 않다는 걸 거의 잊을 정도다. 

훌륭한 전기 영화, 유명하고 사랑받는 작품을 화면에 옮긴 영화는 그 인물과 원작의 정수를 잡아내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전기 영화가 품고 있는 딜레마는 재미를 주는 동시에 인물을 실제와 가깝게 그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인물의 실제 가족이 요구하는 것과 감독의 창조적 비전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팬들이 프레디 머큐리와 같은 인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초월하는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모른다. 그래서 스스로 어떤 영화가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 불편한 현실까지 보여주는 드라마? 동성애 록 뮤지컬 판타지? 여기서의 이슈는 장르를 섞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 영화의 톤이 일정하지 않아서 우리가 프레디 머큐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야 하는 영화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거리감을 주는 효과가 생겼다는 점이다.

시도는 했다. 영화가 나오기 전, 팬과 평론가들은 트레일러를 보고 머큐리의 퀴어 정체성을 스트레이트워싱하고 파시라는 배경을 숨기는 것이 아닌지 우려했다.

 

 

″보헤미안 랩소디 트레일러가 게이/바이 슈퍼스타 프레디 머큐리가 여성과 만나고 사귀는 것은 보여주지만 남성을 사랑한 것은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트윗을 쓸 정도로) 화난 사람이 나말고 또 있나?”

머큐리의 HIV/AIDS 진단과 뒤이은 죽음을 축소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머큐리 역 배우로 물망에 올랐던 사샤 바론 코헨은 머큐리의 AIDS 투병보다는 퀸이 인기를 얻게 된 기간에 집중하길 원했던 퀸의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와의 의견 충돌로 2013년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영화는 머큐리의 성적-민족적 정체성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서툴게 다뤄서 그보다 더 나쁜 결과를 낳았다. 머큐리가 파시(Parsi)라는 뿌리에서 거리를 두고 싶어했다고 설정하고, 평생 친구로 지낸 메리 오스틴과 오래 사귀는 동안 섹슈얼리티로 고민했던 것과 함께 아주 짧게 다루고 만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2011년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머큐리의 어머니는 아들이 아시아의 유산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말했다. “프레디는 파시였고 그걸 자랑스러워했다.” 당시 89세이던 제르 불사라의 말이다. 프레디의 생각은 달랐을 수도 있다. 영화에서 그는 본명인 파로크로 불리기를 거부하며, 누가 묻지 않으면 자신이 어떤 민족인지 거의 밝히지 않는다. 머큐리의 가족들은 그의 죄책감과 인정 욕구를 돋보이게 하는 진부하고 급조된 캐릭터로 기능한다.

혹은 더 복잡한 역학이 작용했을 수 있지만, 영화는 그것을 보여줄 공간을 만들지 않았다.

ⓒ20세기폭스코리아

 

아마 우린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남성들과의 관계가 머큐리의 삶에 걸쳐 어떻게 구체화되었는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머큐리와 매니저 폴 프렌터 사이의 좋지 못한 관계를 서둘러 보여주고는 연인이었던 짐 허튼과의 관계로 곧장 넘어가고, 머큐리의 연인은 아니었지만 그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던 영국 DJ 케니 에버렛과의 관계는 잠깐 언급하고 지나가 버린다.

머큐리와 메리 오스틴의 관계가 플롯을 지배한다. 머큐리가 죽기 전에 함께 살았던 허튼은 마지막 15분에만 불쑥 등장해서, 그의 중요성을 놓치기 쉽다. 이 영화는 머큐리와 허튼이 파트너가 되기 1년 전에 끝나는데, 그러면 애초에 넣긴 왜 넣은 것인가?

이 영화는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서 퀸의 전설적 무대를 압축하여 아름답게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19억 명이 머큐리가 여기서 퀸의 상징적 노래들을 부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영화에서 머큐리는 이미 AIDS 진단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사실은 1987년에 진단 받는다.) 거의 끝없는 관중들을 훑는 오버헤드 샷, 뮤지션들의 다리 사이와 무대 위를 오가는 카메라, ‘We Are the Champions’를 열창하는 말렉의 얼굴 클로즈업 등으로 이 공연의 신화적 부분을 표현했다.

머큐리를 연기하는 말렉의 모습이 최대한 드러나는 이 부분만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이다. 영화 자체가 할 수 없었던 모든 일을 퀸의 음악이 대신한다.

많은 팬들이 퀸, 머큐리의 삶과 영향력에 대한 몇 조각의 지식을 아는 상태로 이 영화를 볼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갖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마지막 곡이 끝나고 웸블리 스타디움의 조명이 켜질 때, 관객의 머릿속에 남을 것은 귀에 쏙 들어오는 노래, 머큐리와 말렉의 기교에 대한 감탄 정도일 것이다.

*허프포스트의 글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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