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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배상 책임을 줄이기 위한 박근혜와 양승태의 눈물겨운 노력

꽤 오랜 시간 준비했다

전범기업에 대한 강제징용 피해자의 소송은 2000년부터 시작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여운택씨와 강제징용 피해자 2명은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신일철주금(옛 일본제철)을 상대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금과 강제노동 기간 받지 못한 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기각’이었다. 2001년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이어 2002년 오사카 고등재판소,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도 원고 최종 패소를 선고했다.

이들은 2005년에 한국법원에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과 2심인 서울고법은 일본 법원의 확정판결을 근거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지만, 대법원은 2012년 5월, “일본 법원의 판결은 일제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히면서 배상청구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서울고법은 2013년 7월, 대법의 파기환송 취지대로 신일철주금이 1인당 1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할 것을 판결했다. 하지만 신일철주금은 재상고(대법원의 파기환송 이후의 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 다시 대법원에 상고하는 것)를 결정했고 이 판결은 2018년 10월,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거의 5년 동안 계류되어 있었다.

 

ⓒPOOL New / Reuters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외교부의 문건에 따르면 2013년, 일본 정부는 이 대법원의 판결이 확정되지 않도록 요구했다. 그리고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차한성 전 법원행정처장,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등은 위안부 협상과 맞물려 일본측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합의한다. 사법부가 내려야 할 결정을 행정부와 사법부가 미리 상의를 한 셈이다.

일본 측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한 사전 작업은 2015년에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2015년 1월 대법원은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했다. 개정안은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공익 관련 사항에 관하여 대법원에 재판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고, 대법원은 이들에게 의견서를 제출하게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당시 밀실에 모였던 이들이 짰던 시나리오는 외교부가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면 대법원은 ‘새로운 쟁점’이 생겼다는 이유로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한 뒤 대법원이 소부 판결을 파기하는 방향 등을 논의했다.

2015년이 12월이 되었다. 박근혜는 위안부 협상을 알리며 이 협상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근혜는 이면에서 위안부 협상을 타결한 일본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이유로 일본 전범기업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책임 판결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거나 최대한 늦추라고 주문했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나라망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후 박근혜는 재판을 늦추기 위한 ‘의견서 제출 처리‘를 지시한다. 시점은 다.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 돈(10억엔)으로 만들어지는 화해치유재단 설립되는 2016년 8월 이후였다. 박근혜의 지시 이후 재판 지연 작업은 본격화된다. 2016년 9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외교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외교부로부터 의견서 제출 절차 개시 시그널을 받으면 (시나리오를) 진행하겠다”고 제시했고, 외교부는 그해 11월 대법원에 의견서를 냈다. 이후 국정농단 사태가 본격화되며 ‘오더’를 내릴 대상이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 2018년까지 흘렀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재판을 늦추기 위해 노력했을까? 답을 찾기 위해서는 양승태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을 확인해야 한다. 2013년 12월에 작성된 문건 등 다수의 문건에서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민사 손해배상 소멸시효가 3년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사건을 다시 살펴보자. 대법원은 2012년 5월에,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손해배상 청구권이 있다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는 소송을 건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강제징용 피해자 모두에게 ‘손배 청구권’이 있다고 알려진 날이다.

제766조(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①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

대법원이 청구권이 있다고 판결한 2012년 5월을 ‘안 날‘로 본다면 2015년 5월 부터는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소송이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났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재까지 강제징용피해자 중 소송에 참여한 인원은 900여명이다. 하지만 전체 피해자는 20여만명에 이른다. 2018년 대법 전합체가 내린 판결대로 손해배상금을 추산할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할 액수는 20조원에 이르지만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면 900억원으로 줄게 된다는 의미다.

검찰 관계자는 ”강제징용 소송 소멸시효가 완성된 이후엔 피해자들이 배상금을 받을 권리가 없어진다”며 ”배상금보다 적은 돈으로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그런 식으로 검토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소멸시효를 2012년 5월이 아니라 대법원이 전합체 판결을 통해 최종 결정한 2018년 10월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만약 이날을 민법상 ‘안 날’로 할 경우 강제 징용 피해자들은 2021년 10월까지 소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더라도 또 다른 산을 넘어야 한다. 일본 측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이번 판결에 대해 배상을 거부하도록 지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소멸시효 문제가 해결되어도 일본 측이 배상을 거부하게 되면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해당 기업에 대한 강제집행을 진행하는 등의 추가적인 다툼을 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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