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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진학률과 ‘스위스 패러독스’

ⓒKonoplytska via Getty Images
ⓒhuffpost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높은 대학진학률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말이다. 독자 여러분은 이 말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명박이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을 해결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고졸 전성시대’의 도래를 선언하면서 마이스터고를 설립하고 (노무현 정부가 폐지했던) 현장실습제도를 부활시켰다. 직업계 고등학교에 과감한 지원을 하되 이를 취업률과 연계했다. 이러한 기조는 박근혜 정부 아래서도 계속되었고, 그 결과 2009년 80%에 달했던 대학진학률(전문대, 사이버대 포함)은 현재 68%까지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 아래서도 이런 정책 방향은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진보적인 학자들 중에도 대학교육의 가치에 대해 이명박과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장하준은 대학진학률이 10~20%로도 충분하며, 그 이상은 낭비라고 주장한다. 장하준에 따르면 기술적으로 발달한 경제일수록 교육받은 사람을 덜 필요로 한다. “선진국의 상점에서 일하는 점원들은 덧셈을 못해도 상관없다. 바코드 기계가 그것을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1990년대에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했던 스위스의 대학진학률이 10~20%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그 증거로 든다. “(너도나도 대학에 들어가려 애쓰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영화관에서 화면을 더 잘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한 사람이 서기 시작하면 그 뒷사람도 따라서 일어서게 되고, 그러다가 일정 비율 이상의 사람들이 일어서면 결국 모두가 서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말이다.”

나는 여기서 자기 자신은 박사학위가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고등학교 졸업장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장하준 교수의 패러독스를 비판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그가 말하는 ‘스위스 패러독스’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는 점만 말해두고자 한다.

우선 1990년대까지는 스위스뿐 아니라 유럽 다른 나라들도 대학진학률이 낮았다. 사실 스위스는 노동 인구에서 대학 졸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이웃 나라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1999년 스위스의 25~64살 인구 중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의 비율은 23.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0.7%)보다 3%포인트가량 높다(한국은 23.1%). 2017년에도 스위스의 25~64살 인구 중 대졸자의 비율은 42.6%로 여전히 오이시디 평균(36.9%)을 상회했다.

다음으로 스위스의 대학진학률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곧장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사람들을 고려해야 한다. 대학 신입생의 거의 전부가 그해의 고등학교 졸업생으로 이루어지는 우리와 달리, 스위스에서는 사회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대학에 가는 사람들이 많다. 2015년 기준 스위스 청소년이 25살 이전에 대학에 들어갈 가능성은 47%이지만,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대학교육을 받을 가능성은 71%이다.

스위스의 높은 생산성과 경제적 활력은 대학교육의 이런 개방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술혁신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학에서 배운 지식은 몇년 안에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 공부와 일 사이를 오가는 것이 쉬운 사회는 이런 변화에 더 유연하게 대응할 것이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이 대폭 축소되었지만, 취업을 우선시하는 정책 방향은 바뀐 것 같지 않다. “대학진학률이 높은 것이 문제”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직업교육의 미래에 대한 전면적인 재구상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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