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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병동서 마주친 생의 마지막

ⓒozgurkeser via Getty Images
ⓒhuffpost

그냥 오지 말라고 했다. 지금 모습 흉해서 보여주기 싫다고 했다. 몇해 전 췌장암으로 세상을 뜬 지인은 자신의 마지막을 보여주지 않으려 병문안을 거절했다. 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때가 되면 그가 남긴 말이 떠올라 가슴을 아린다. 그분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요양병원 침대에 덮인 흰색 시트를 뒤로하고 발길을 돌려본 일이 있는가. 시트 아래에서 하체는 벗겨지고, 두 손은 묶인 환자의 침대 말이다. 그런 어르신을 두고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운가. 주말이면 어르신을 뵈러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분들을 주변에서 볼 때마다 삶은 참 모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죽음도 살았을 때, 의식을 놓기 전부터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서점엔 ‘좋은 죽음’을 준비하라는 책도 많이 나와 있다. 임종 직전까지 의식을 잃지 않고, 유언까지 마치는 죽음은 거의 없으니 준비는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16년째 매주 자원봉사해온 예은주씨의 얘기를 들어봤다. 고양시에서 서울 강남까지 오가며 봉사해온 그의 기억에서 가장 먼저 나온 사람은 70대 여자 환자였다. 

“암 환자였어요. 다른 환자들처럼 보통 두달 정도를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그 기간 동안 여고 동창 친구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고, 하하호호 웃음소리로 병동이 시끌벅적했어요. 잔치가 열린 듯싶었으니까요. 저도 마지막은 이렇게 마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얼마 전 돌아가신 말기 폐암환자도 기억했다. “회 한 점 먹고 싶다고 하셨어요. 환자 상태가 그런 날것을 소화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병원 허락을 받고 자원봉사들이 힘을 모아 그분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를 들어 드렸죠. 참치 회에 소주 한 잔. 얼마나 행복하시던지….” 예씨는 “가족이나 친구와 마지막을 편히 나눌 수 있는 그런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60대 여자 환자였는데, 자기를 이렇게 만든 남편, 시어머니를 끝까지 용서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우리가 의식을 놓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이 화해 아닐까 싶지만 그것 역시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가족과의 소통이나 지원도 좋은 죽음으로 가기 위한 필수 코스인 것 같다. 더구나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할 수 있는 이런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소수에 불과하다. 가톨릭대학 병원 등 일부에만 있는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기 위해 환자와 가족들은 들어갈 자리가 생길 때까지 줄을 선다. 개인적으론 고교 동창으로부터 “호스피스 병동 들어가게 힘 좀 써달라”는 청탁까지 받은 적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럴 능력도 안 되지만, 이것이야말로 치명적인 새치기여서 그런 청탁은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인에게 있어 죽음의 70%는 병원 객사라고 한다. 지난해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법이 시행 중이나 연명의료중단에 관심이 집중됐을 뿐 좋은 죽음을 위한 환경 조성은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영국은 암 환자의 95%가 호스피스를 이용하나 한국은 15%에 불과하다고 한다. 호스피스 병상수는 좋은 죽음을 측정하는 지표일 텐데 사정이 이 정도라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가족과 종교인 등의 도움을 받아 편안하게 죽음으로 다가가게 돕는 호스피스제도를 어떻게든 확대해야 한다. 물론 병원 입장에서 돈만 들고 이윤은 남지 않는데 어떻게 호스피스병동을 늘리겠느냐는 항변도 이해할 수는 있다. 이 때문에 시설을 늘리기 어렵다면 가정호스피스라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이것 역시 제약이 아직까지는 많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이 주변에 별로 없다. 그리고 신청을 하고 싶어도 병원과 집 사이의 거리가 차로 30분만 떨어져 있으면 수혜대상에 오를 수 없다.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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