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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원정출산이 위헌이라고? '출생시민권'을 둘러싼 쟁점들 (총정리)

수정헌법 제14조의 역사, 법적 쟁점들을 살펴보자.

  • 허완
  • 입력 2018.10.31 17:18
  • 수정 2018.10.31 17:36
ⓒNICHOLAS KAMM via Getty Images

″미국에서 태어나는 신생아의 7.5%, 매년 30만명 넘는 아기들이 불법 이민자들에게서 왔다니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가. 이건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 감당할 수도 없고 옳지도 않다!”

2015년 8월, 당시 이제 막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든 예비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는 이런 트윗을 올렸다. 약 38개월 뒤, 이제 제45대 미국 대통령 신분이 된 트럼프는 마침내 자신의 오랜 구상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가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이 되고... 그 모든 혜택을 받게 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된다. 이건 끝내야 한다.” 30일(현지시각) 일부 내용이 공개된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한 말이다

  

출생시민권의 개념

용어부터 정리해보자. 출생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은 해당 국가의 영토에서 태어나는 아기에게는 부모의 국적과 무관하게 자동적으로 그 나라의 시민권이 부여되는 것을 뜻한다. (트럼프의 부정확한 주장과는 달리) 미국을 비롯한 30여개 국가가 이 원칙을 적용해왔다.

미국의 경우, 부모의 국적은 물론 부모가 출산 당시 적법한 체류 허가를 소지하고 있는지와는 무관하게 자녀에게 시민권을 부여해왔다. 미국 땅에서 태어나기만 했다면 말이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태어난 아기를 흔히 비하의 뜻을 담아 ‘앵커 베이비(anchor baby)’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먼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미등록(undocumented)’ 이민자들이 출산을 하는 경우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는 멕시코 등 중남미 출신 부모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민 규제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불법’ 이민자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자녀의 미국 국적 취득을 목표로 미국 내 출산을 기획하는 사례도 있다. 이른바 ‘원정출산’이다. 보통은 관광 비자 등을 받아 입국 자체는 합법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앞선 사례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인 부모들에 의한 사례가 많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렇게 미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 아기가 21세가 되면, 그는 부모나 형제 등 가족을 미국으로 초청할 수 있게 된다. 가족들은 미국 영주권을 부여 받고, 나중에는 시민권까지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른바 ‘연쇄이민(chain migration)’이다.

이른바 ‘앵커 베이비’는 그 부정적 뉘앙스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합법으로 간주되어 왔다. 바로 미국 수정헌법의 이 조항 때문이다.

수정헌법 제14조

제1절. 미합중국에서 태어났거나 귀화한 사람 및 그곳의 사법권에 속하게 된 모든 사람은 미합중국의 시민이며 그들이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다. (후략)

All persons born or naturalized in the United States, and subject to the jurisdiction thereof, are citizens of the United States and of the state wherein they reside.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시내에 위치한 옛 법원 청사 건물에 드레드 스콧 부부 판결 관련 명판이 붙어있는 모습.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시내에 위치한 옛 법원 청사 건물에 드레드 스콧 부부 판결 관련 명판이 붙어있는 모습. ⓒKansas City Star via Getty Images

 

출생시민권의 역사

미국 수정헌법 제14조가 제정된 건 노예제와 관련이 있다. 1799년 버지니아주에서 노예 신분으로 태어난 흑인 남성 드레드 스콧은 육군 소속 외과의사였던 자신의 두 번째 ‘주인’ 존 에머슨을 따라 미국 내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게 된다.

그렇게 그는 1836년 자유주(free state, 노예제가 없는 주)인 일리노이로, 이듬해에는 현재의 미네소타주에 해당하는 지역과 위스콘신 자유지역으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그는 역시 노예 신분이었던 여성과 만나 결혼해 가정을 꾸리게 된다. 이후 스콧 부부는 일리노이와 위스콘신 사이의 미시시피강 증기선 위에서 딸을 낳았다.

시간이 흘러 에머슨이 사망하자, 스콧은 자신과 가족의 자유권을 구매하려는 시도가 에머슨의 부인에 의해 거부되자 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그는 자신과 부인이 노예제가 없는 자유주와 자유지역에 2년 간 거주했고, 첫 딸 역시 자유주와 자유지역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점을 들어 ‘한 번 자유를 얻으면 영원히 자유를 얻는다(Once free, always free)’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주리주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스콧과 그의 백인 후원자들은 사건을 연방대법원으로 끌고 갔고, 연방대법원은 ‘흑인 노예는 재산일 뿐 절대 자유시민이 될 수 없다‘고 판결하게 된다. 그 유명한 ‘드레드 스콧 대 샌포드 사건(1857년)’이다.

이 판결은 노예제를 둘러싼 미국 남부와 북부의 갈등을 더 촉발하는 계기가 됐고, 결국 남북전쟁(1861~1865년) 이후인 1868년, 막 해방된 노예들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수정헌법 제14조가 비준된다. 앞선 판결이 무효화 된 것이다.

이처럼 애초 흑인 미국인들의 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수정헌법 제14조는 이후 이민자들의 자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소개한 내용을 보면, 1898년 연방대법원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중국 국적의 부부의 아들(Wong Kim Ark)이 미국 시민이며, 따라서 출국 후에라도 다시 미국에 들어올 수 있다고 판결했다. 

당시 대법원은 중국인 노동자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중국인입국금지법(Chinese Exclusion Act)’에도 불구하고 그 자녀의 미국 시민권이 인정된다고 봤다. 이 판결은 지금까지도 출생시민권의 효력을 인정하는 판례로 인정받게 된다.

미등록 이민자 자녀에 대한 판결도 1982년에 나왔다. 당시 법원은 ‘텍사스가 불법 이민자의 자녀의 공립학교 입학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수정헌법 제14조의 ‘사법권’을 적용함에 있어서 합법적으로 미국에 입국한 외국인 거주민과 비합법적으로 입국한 외국인 거주민들 사이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후 미국에서 이같은 소위 ‘앵커 베이비’의 숫자는 2007년 37만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출생아 10명 중 거의 1명 꼴이었다. 이후 서서히 줄어드는 추세다.

2016년 퓨리서치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태어난 비합법 이민자 부모 자녀는 27만5000명으로, 그 해 미국에서 태어난 신생아의 7%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에 거주하는 외국 출생(foreign-born)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들 중에서는 약 32%가 미등록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이른바 ‘원정출산‘의 경우, 최근에는 중국인 부모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2015년 WSJ은 ‘이민연구센터’ 자료를 인용해 오로지 출산을 목적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이들은 매년 4만명으로 추산되며, 이 중 대부분은 중국인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WSJ은 이같은 ”중국인 출산 관광업(birth tourism)의 증가”는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는 중국의 신흥 부유층이 늘어난 상황을 반영한다고 소개했다. 숙박과 교통, 병원, 여권 발급까지 포함된 ‘패키지’ 상품이 4만달러에서 8만달러에 판매되고 있으며, 이들이 미국에서 지출하는 금액이 연간 10억달러(약 1조1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는 내용도 소개됐다.  

ⓒPete Marovich via Getty Images

 

출생시민권 폐지에 대한 법적 문제들

출생시민권에 대한 반론이 없었던 건 아니다. 헌법학자이자 캘리포니아주 채프먼대 헌법학센터 소장인 존 이스트먼은 지난 40여년 동안 헌법이 잘못 적용되어 왔다고 악시오스에 말했다. 수정헌법 제14조의 ”그곳의 사법권에 속하게 된”은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을 지칭한다고 봐야 한다는 것.

트럼프 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을 지낸 마이클 안톤은 지난 7월 워싱턴포스트(WP)에 쓴 ‘시민권이 출생시민권이어서는 안 된다’는 글에서 출생시민권은 ”역사적으로, 헌법적으로, 철학적으로, 실질적으로 부조리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출생시민권에 대한 그동안의 판결이 수정헌법 제14조를 오독한 데 따른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정부 안팎의 열렬한 이민 지지자들의 주도”로 그동안 미국 정부가 해당 문구를 ”미국 법에 속하게 된”으로 단순하게 해석하는 바람에 마치 미국에 입국한 관광객들에게도 이 조항이 적용되는 것처럼 오해되어 왔다는 것.

수정헌법 제14조의 입안자들은 미국이 시민권을 부여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정확히 구별하기 위해 이 사법권 조항을 추가했다. 자유의 몸이 된 노예는 분명 해당된다. 불법적으로 이곳에 온 이민자의 자녀는 분명 그렇지 않다. (워싱턴포스트 기고문, 7월18일)

그는 대법원 판례로 이 문제가 정리됐다는 통념에도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1898년 ‘미국 대 Wong Kim Ark’ 사건에서 법원이 내린 판결은 합법적 거주민의 자녀에게만 적용된다는 의미라며 ”불법적으로 이곳에 거주하는 이들에게서 태어난 자녀의 지위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이 문제는 쉽게 바로잡을 수 있다”고 했다. ‘비시민(noncitizens)의 자녀는 미국 사법권에 속하지 않으며, 따라서 수정헌법 제14조 상의 시민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법적으로 명확하게 하면 된다는 것.

만약 이같은 입법 절차가 어렵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는 적었다. ”행정명령은 연방 기관들에게 비시민의 자녀는 시민이 아니라고 명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에 동의하는 이들은 좌우 이념을 떠나 소수에 그친다는 게 미국 언론들의 평가다. 출생시민권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 자체를 개정해야 할 것이라는 것. 대통령의 행정명령이나 연방 법률을 제정하는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항소법원 판사로 임명한 제임스 C. 호는 로펌 소속이던 지난 2011년 WSJ 기고문에서 당시 몇몇 주의 의원들이 주 법령 개정을 통해 출생시민권 폐지하려는 행위가 ”반헌법적”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이 표현(수정헌법 제14조)의 순전한 의미는 분명하다. 미국에 살고 있는 외국 국민은 그가 미국 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를 지기 떄문에 ”그곳의 사법권에 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해외 국가를 대표해 미국에 입국한 외국 외교관들은 미국 법에 대한 외교적 면책 특권을 누림에 따라 그곳의 사법권에 속하지 않게 된다.)

(중략)

대법원 판례 역시 수정헌법 제14조에 대한 이같은 해석을 재확인한다. 1898년, 법원은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인 이민자의 자녀가 시민권 자격을 갖는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수정헌법 제14조는.... 이곳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서 태어난 모든 자녀들을 포함해 영토 내의 출생에 대해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오래되고 근본적은 법칙을 확인한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 2011년 1월5일)

ⓒSean Rayford via Getty Images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논리정연한 법적 주장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스턴트에 가깝게 들린다”며 중간선거 1주 전에 나왔다는 타이밍도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과 ‘연쇄이민’을 비판해왔으며, 트럼프 정부의 이민정책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수 법학자들의 견해를 무시하고 행정명령 발동을 강행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럴 경우, 이 문제는 결국 법정 다툼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NYT는 ”대법원에 트럼프가 임명한 대법관이 2명 있고, 수십년 이래 가장 보수적”이라면서도 ”대법관 다수가 트럼프의 수정헌법 제14조 해석을 수용하려 할 것이라고 볼 이유는 거의 없다. 출생시민권의 합헌성은 이념적 성향에 따라 법률가들 사이에 이견이 갈리는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출생시민권 폐지가 헌법 개정 사항이라고 결론 내려진다면, 그 때는 헌법을 개정하는 방법 밖에 없다. 미국 헌법 개정은 그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헌법 개정안이 시행되려면 우선 상원과 하원에서 3분의2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이어 50개주 중 4분의3이 이를 비준해야 한다.

더 어려운, 단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는 다른 방법도 하나 있다. 50개주 중 3분의2가 헌법 제정회의(constitutional convention) 소집을 요구해 헌법 수정안을 제안하고, 50개주 중 4분의3의 찬성으로 이를 비준하는 것. 

트럼프 대통령은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나는 항상 (출생시민권을 폐지하려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분명 의회의 (입법) 움직임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들(법률 자문가들)은 내가 행정명령 만으로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출생시민권 폐지 논의가 ”지금 진행 중”이라며 ”행정명령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선거를 앞두고 나온, 반(反)이민 정서에 호소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도 있다. 동시에 출생시민권 폐지가 그의 오랜 지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 역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단순히 ‘선거용’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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