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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살인'의 흥행

  • 임범
  • 입력 2018.10.30 10:42
ⓒhuffpost

영화 <암수살인>을 봤다. 실화가 갖는 어떤 긴장감이 살아 있었다.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잘 안되고, 실제로 벌어진 일을 두고 이야기의 관습에 따른 상상력으로 예측을 해봤자 의미도 없고, 그래서 마음을 열어두고 보니까 사소한 디테일이 눈에 더 잘 들어오게 되는 그런 긴장감이랄까. 영화도 그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작위적이다 싶은 각색 없이 사건을 따라가면서 인상적인 디테일들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적 관습을 기대하는 관객에겐 이런 실화의 특성이 긴장감이 아니라 심심함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싶은데, 반갑게도 이 영화는 개봉 뒤 한 달이 다 되도록 쏠쏠하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벌어진 일이 충분히 극적이기란 쉽지 않을 거다. 예상치 못한 우연이 끼어들고 인과관계가 수시로 어그러지고, 악당은 충분히 악하지 못해서 이야기의 대립각이 예리해지지 못하고, 정작 해결은 엉뚱하거나 사소한 것에서 이뤄지기 일쑤다. 그래서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는 어디로 갈지 모르는 긴장과, 우리 사회를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디테일의 재미가 있지만, 막상 이야기의 중심 갈등이나 대립이 심심해질 수 있다. 다큐멘터리까지는 아니더라도 관객을 분노하고 감동하게 하는 힘이 약해지기 쉽다.

반면 완전한 픽션, 특히 장르물은 이야기의 관습을 차용하되 응용, 변형해서 관객과 예측 게임을 벌인다. ‘이런 이야기는 이렇게 갈 거야’ 관객을 예측하게 하고, 그것과 비슷하게 가면서 한발 앞서거나 뒤통수를 친다. 그리고 결국엔 예측했던 범위를 배반하지 않으면서 분노와 감동을 증폭시키는 걸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대다수 장르물은 우연이나 모호함은 배제하고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맞춰 권선징악, 인과응보 같은 가치를 살려낸다.

 

관객이 어디에 더 익숙할까. 당연히 후자일 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이야기의 관습, 장르물의 틀을 빌리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한국 영화도 그렇게 실화를 각색해 흥행에 성공하는 일이 최근에 많아졌다. 각색을 하면 사실이 왜곡되는 게 불가피하지만, 장르적 틀거리에 맞추느라 역사와 인물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잘못 전하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적지 않았다. <1987>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했지만 잘 안 알려진 인물들이 활극 같은 허구의 장치에 등장할 때 어딘가 불편했다. <택시운전사>를, 개봉되고 몇 달 지나 실제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밝혀진 뒤에 봤더니 또 조금 불편했다.

이런 불편함은 다른 이가 보기엔 아주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왜곡이 사소하고 어떤 왜곡이 심각한 것인지 알려면 먼저 어떤 부분이 사실과 다른지를 알아야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을 본 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데 저것도 어딘가 왜곡했겠지’ 궁금해 인터넷을 찾아보니 기사와 영화 사이트에 어떤 부분이 사실과 다른지 자세히 나와 있었다. 한국 영화에 대해선 그런 기사를 본 적이 드물다. 한국의 매체 혹은 관객은 실화를 다룬 영화가 실화와 얼마나 다른지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걸까? 왜? 창작의 폭을 관대하게 인정해줘서?

아무리 그래도 실제 역사나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해 관객을 불러놓고 궁금증 해소엔 도움을 주지 못한 채 익숙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던져준다면 일종의 반칙 아닐까. 하지만 그걸 무슨 기준으로 판단할까. 어려운 문제이고, 그와 관련해서도 시장에서 관객이 하는 선택은 무시하기 힘든 변수이다. <암수살인>의 흥행이 여러모로 눈에 띄는 이유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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