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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인간의 야만, 소싸움대회를 멈춰라!

  • 허은주
  • 입력 2018.10.29 15:04
  • 수정 2018.10.29 15:12
ⓒhuffpost

모래 위의 진검승부!

성난 황소들의 치고 받고 한판승부!

소싸움대회의 슬로건들이다. 소싸움대회는 현재 11개 지자체에서 향토 축제로 개최되고 있다. 지자체는 주로 전통문화의 계승을 표방하며 소싸움을 관광 사업으로 만들려고 한다. 정읍시는 가을 내장산 축제 관광의 일환으로 10월 25일부터 지금까지 소싸움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싸움소들은 소싸움대회가 열리는 11개 지자체에서 경기장으로 몰려온다. 소싸움경기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소들은 트럭 안에서 덜컹거리는 극심한 소음과 진동을 견뎌야한다. 고속도로에서 창문을 열고 달려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얼굴에 부딪히는 세찬 바람과 귀를 찢는 소음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느긋하게 풀을 뜯고 되새김질하며 살아야 할 소들이 사방이 개방되어 달리는 트럭에서 자기가 싼 똥과 오줌을 밟으며 몇 시간을 버티는 것은 생지옥 체험일 것이다. 소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이동 과정 중에 면역력이 떨어져 폐렴과 패혈증에 걸려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경기 시작 하루 전 경기장에 도착한 소들은 체급별로 분류된 후 추첨을 통해 대진표가 완성된다. 그리고 경기 시작 전 날, 낯선 계류장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계류장이라고 해봤자 서 있거나 앉을 수 있는 정도만 허락된 좁은 공간이다. 소들의 돌발 행동을 막기 위해 코를 뚫고 쇠걸이를 걸어 계류장의 기둥에 짧게 묶어둔다. 얼굴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1미터 남짓. 옴짝 달싹할 수 없는 그 자리에서 소들은 똥 오줌을 싸고 그 자리에 엎드려 잠을 자며 다음날 경기를 기다린다. 낯선 냄새와 옆 계류장 소의 불안한 울음 소리를 들으며.

소싸움 경기 날이 밝으면 대진표에 따라 소들이 경기장으로 입장한다. 입장하는 소들 옆에서는 조련사나 소 주인들이 함께 걸어간다. 소를 경기장으로 입장시키기 위해 소주인은 소의 코에 걸린 줄을 있는 힘껏 당긴다. 입장을 거부하고 온 몸으로 버티는 소들 때문에 실랑이가 자주 생긴다. 하지만 코에 걸린 줄을 세게 당기면 생살이 찢기는 고통으로 소들은 어쩔 수 없이 경기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입장과 동시에 시작되는 관중들의 환호 소리, 소의 승률과 주력 기술을 소개하는 해설자의 고막을 찢을 듯한 마이크 소리,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섞여 경기장의 흥분은 고조된다.

700킬로그램에서 1톤가량 되는 거대한 몸무게로 상대의 이마를 밀어붙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두 소의 이마는 피로 물든다. 전력을 다해 버티는 소들은 침을 흘리고 똥오줌을 싸며 눈은 돌출되고 충혈된다. 상대의 날카로운 뿔이 목덜미와 옆구리, 배를 찌르면 피부는 찢기고 누런 털은 피로 물들고 소들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른다.

고통과 두려움으로 뒷걸음질 치는 싸움소들 옆에서 소주인들은 소리를 지르고 콧줄을 잡아당기며 소들이 싸움을 계속하도록 강요한다. 머리를 돌려 도망가는 소가 패배하는 것이 소싸움경기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소주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소들이 머리를 돌려 달아나지 못하도록 코에 꿰어진 줄을 당긴다. 소싸움 대회에서 경기 중에 소를 직접 만지거나 때리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소 주변을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는 것, 콧줄을 잡아당기는 것은 허용된다. 두려움에 떠는 소들을 흥분시켜 공격성을 높이기 위해 술(소주)를 마시게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경기 전 소에게 술을 마시게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기에 싸움소 업자들도 도핑테스트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정도이다. 사력을 다해 버티고 피 흘리던 소들 중 하나는 결국 고통과 두려움에 머리를 돌려 도망간다. 최종 경기에서 우승한 소에게는 지자체에서 내건 상금이 돌아가고, 우권을 판매하는 소싸움 경기장에서는 우권 구매들자들에게 승률에 따라 환급금이 주어진다. 우승한 소의 몸값은 억대를 호가할 정도다.

싸움소 주인들은 생후 7개월이 되어 우시장에 나온 수송아지 중 싸움을 잘할만한 소를 골라낸다. 이 소들은 대형종의 싸움소로 육성된다. 경기가 상대 소와 머리를 맞대고 버티는 과정이기 때문에 몸집이 클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소의 품종 개량이 이루어지며 지금은 1톤이 넘는 싸움소도 육성된다. 하지만 체급별로 이루어지는 경기에서 몸집만으로는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 폐활량과 근육량을 높이기 위해 소들에게 콘크리트로 속을 채운 타이어 끌기, 산악 달리기를 시킨다. 실제 싸움에서 버틸 수 있는 지구력 향상을 위해 산 비탈에 매달아 놓고 오랜 시간을 버티게 한다. 그야말로 고문행위에 버금가는 훈련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이렇게 3-4년 육성된 싸움소들에게 대회를 앞두고 여러 보양식을 먹이는 것은 업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강장제, 십전대보탕, 미꾸라지, 낙지, 뱀탕을 먹이며 보양식 중에서는 개소주가 최고로 꼽힌다. 거친 풀을 섭취한 후 종일 되새김질을 하며 생존하도록 진화한 완전한 초식동물인 소에게 개소주와 뱀탕을 먹이는 것은 ‘사람도 먹기 어려운 비싼 보양식 먹는 호강하는 소’로 포장된다. 생후 7개월에 업자에게 발탁된 소는 3-4년간 혹독하게 훈련받은 후 평균 5년간 경기에 출전하며, 전투력이 떨어지면 대부분 도축장에서 도살된다. 운동을 많이 하여 지방이 적어 마블링이 없는 싸움소의 고기는 지방이 많은 트리플 A 한우에 비해 훨씬 저가에 팔린다.

싸움소를 키우는 사람들은 말한다. 황소의 싸움은 본능이라고.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짝짓기를 위해 황소들이 싸우는 것이 본능이라면, 소싸움대회에서 소들의 싸움은 그 싸움 본능과 무관하다. 소싸움대회에서는 소들이 싸울 이유가 전혀 없다. 경기장에서 소들이 짝짓기를 위해 싸우는 것도 아니며, 먹이를 경쟁하며 싸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집(축사)를 제공하고, 배설물을 치워주고 밥을 주었던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에 이끌려 낯선 소들과 이유도 모를 싸움을 계속해야할 뿐이다. 소들이 싸울 이유가 없기 때문에 주인들은 소들에게 술을 먹이며 억지 공격을 유도할 뿐이다.

소는 사람에게 참 고마운 동물이다. 인류 역사와 더불어 사람 곁에서 오랫동안 노동력을 제공해주었고, 먹는 고기가 되어주었고, 입을 수 있는 신발, 가방 옷이 되어주고 있다. 누군가는 사람이 이미 먹고 있는 그까짓 싸움 정도 시키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냐고 묻는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의 행복이 동물의 복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공장식 축산의 잔인함을 대체할 동물복지 농장 인증제가 제도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도박이나 유흥을 목적으로 한 동물싸움을 동물학대로 규정한 동물보호법이 엄연히 존재한다.

현재 동물보호법에서는 도박이나 유흥을 목적으로 한 동물 싸움을 동물학대로 규정하여 금지하고 있지만 소싸움만은 예외로 규정하고 있다. 개싸움, 닭싸움은 금지하지만 소싸움은 처벌할 수 없게 되어있는 황당한 현실이다. 이는 소싸움대회를 하고 있는 전국 11개 지자체의 로비와 전국 싸움소 업자들의 입김 때문이다. 소싸움 협회 관계자들과 해당 지자체들은 2003년 전통 소싸움 경기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우권을 판매하여 베팅을 하는 사행 산업으로서의 소싸움을 합법화하였다. 소싸움 대회를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으로 적극 개발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명목이었다. 2008년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면서 동물학대의 정의에 ‘도박이나 유흥을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가 포함되면서 기존에 진행되던 소싸움 대회 역시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하지만 소싸움을 해왔던 지자체와 소싸움 단체들은 동물보호법 개정 이후에도 소싸움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농림부에 유권 해석을 의뢰하였고 소싸움 단체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이에 농림부는 전통소싸움 대회가 동물보호법 개정 이후에도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2008년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농림부령과 규칙을 손질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동물보호법의 동물학대 행위에서 동물싸움을 금지하지만 소싸움만을 허용하는 현재의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소싸움장 옆 계류장에서 싸움을 기다리고 있는 소의 눈을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있는가? 시끄러운 사회자의 마이크 소리와는 대조적으로 계류장에 있는 소들의 둥근 눈은 깊고 조용하다. 소싸움이 시작되고 관중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 사회자의 마이크 소리가 하늘을 찌르면 계류장에 코가 꿰어 묶여 있는 소들은 불안하게 운다. 우-우.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그 옆에 서 있는 소들도 따라 운다. 우-우. 침을 흘리고 계류장의 쇠기둥을 들이받기도 한다.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소들의 찢어진 이마, 찢어져 피가 흐르는 배를, 헐떡이는 숨을, 길게 늘어뜨린 혓바닥에서 흐르는 거품 섞인 침을 다른 소들은 바라본다. 그 앞의 소들도 운다. 우-우. 경기를 마친 소들은 다음날의 싸움까지, 아니 평생 이 고통을 버텨야 한다. 이 소들이 고통은 승률이 떨어져 도축장으로 보내지는 날에야 비로소 끝날 수 있다. 아비규환의 소싸움장에서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것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이번 정읍 민속 소싸움경기장 옆에는 정읍 한우 할인 판매장 부스가 차려져있다. 소싸움장 바로 옆에서 사람들은 소고기를 구워 먹으며 고기의 육질과 마블링을 평가하고 있고, 소들은 소고기 굽는 냄새를 맡으며 머리를 맞대고 싸우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먹는 동물이라고 하여 그 소들에게 억지 싸움을 시킬 수 있는 권리까지 사람에게 있지 않다. 이 싸움소들의 고통을 없앨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 뿐이다. 동물보호법을 개정하여 소싸움을 동물학대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것이 이 야만적인 고문 행위 소싸움에서 소들을 해방시킬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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