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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맥퀸이라는 영광의 그늘

다큐멘터리 '맥퀸'은 거대한 명성 아래에서 살아가는 인간 맥퀸의 삶을 응시한다.

  • 민용준
  • 입력 2018.10.29 17:25
  • 수정 2018.10.29 17:29

어떤 이들의 죽음은 이 세상에 거대한 구멍을 내버린다. 죽음을 통해 그가 이 세계에 거대한 한 점을 메우던 존재였음을 환기시킨다. 그래서 수많은 이들은 추모와 애도를 통해 거대한 상실감을 애써 메워보려 안간힘을 쓴다. 그것은 죽은 이를 위한 행위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거대한 상실감을 거듭 목격하며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을 위한 십시일반 같은 위로나 다름없다. 2010년 2월 11일에도 세상에 큰 구멍이 났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타전됐다. 패션에 관심이 있건, 없건, 그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감은 어느 때보다도 크게 다가오는 날이었다.

“알렉산더 맥퀸에 관한 최초의 다큐멘터리(The original documentary on Alexander Mcqueen).” 극초반의 목소리처럼 <맥퀸>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패션의 한 시대를 열고, 끝내 스스로 닫아버린 장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알렉산더 맥퀸의 반짝이던 시절을 조명하는 동시에 이토록 대단한 영광 속에 은신하듯 자리하고 있던 ‘리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고독한 영혼을 살피는 작품이다. 총 다섯 개의 챕터로 구획돼 있는 <맥퀸>은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재능이 어떻게 발견됐고, 어떻게 성장했고, 어떻게 지위를 차지했으며, 어떤 고뇌에 빠져야 했고, 왜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거대한 명성 내부에 존재했던 한 인간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그의 생으로 전진해 나간다. 그럼으로써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빛나는 왕관 아래 존재했던 리 맥퀸이라는 얼굴로, 관객의 시선과 관점을 이동시킨다. 

챕터의 제목들은 알렉산더 맥퀸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파격적인 선언과도 같았던 초기 컬렉션부터 그의 유작이나 다름없었던 마지막 컬렉션까지,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으로서의 경력과 자연인 리 맥퀸으로서의 인생을 관통하는 다섯 개의 컬렉션 제목으로 구성돼 있다. 흥미로운 건 모든 챕터가 ‘테이프(tape)’라는 단어로 명명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맥퀸>이 알렉산더 맥퀸과 관련된 영상이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 200여 개를 보고, 들음으로써 제작된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맥퀸 테이프(The Mcqueen Tape)’라고 일컬었던, 알렉산더 맥퀸의 최측근자였던 보조 디자이너 세바스찬 폰스가 제공한 홈비디오테이프가 지금의 <맥퀸>을 만든 두 공동감독 이안 보노트와 피터 애트귀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된 덕분이기도 했다.

<맥퀸>을 연출한 이안 보노트는 감각적인 광고 영상과 뮤직비디오 연출가로서 경력을 쌓아온 이었고, 피터 애트귀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각본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패션에 조예가 깊은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알렉산더 맥퀸의 다큐멘터리를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의 명성을 되짚는 결과물로 구상하기보단 ‘패션 디자이너가 된 특별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만들고자 했다. 물론 알렉산더 맥퀸의 다큐멘터리에서 패션이라는 장르가 배제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그것을 대단히 칭송하거나 추앙하기 위한 결과물을 만들길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두 가지 원칙을 세우게 됐다. ‘패션 전문가를 제외하는 것’ 그리고 ‘맥퀸의 목소리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알렉산더 맥퀸의 다큐멘터리는 결국 패션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얻었던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인간을 조명하는 것이었다.

<맥퀸>은 16세의 나이에 런던 셰빌 로의 테일러 숍 견습생으로 패션계에 입문하게 된 리 맥퀸이 자신의 재능과 야심을 발판 삼아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대가로 등극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는 쾌감이 상당한 반면 끝내 자신의 거대한 업적에 짓눌려 삶의 동기를 상실해가는 과정에서 전달되는 비애 역시 무겁게 전달하는 작품이다. 이는 해당 시기마다 알렉산더 맥퀸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이들의 증언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전달되는 동시에 컬렉션 영상을 비롯해 맥퀸이 등장하는 실제 영상을 편집해 넣음으로써 그 모든 서사가 사실적인 역사로서 체감되도록 이끈다.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의 목소리와 세계를 관통하는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천재의 아성은 세상을 격동하게 만드는 힘이기도 했지만 그 힘이 결국 스스로마저 갉아먹고 마는 속박과도 같은 것이 되고 만다는 아이러니를 생동감 있게 포착해낸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알렉산더 맥퀸의 주변인들이 처음부터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던 건 아니다. 두 감독은 작품에 등장하는 이들에게 다큐멘터리의 제작 의사를 밝히고 참여를 독려했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작품에 참여하길 망설이거나 꺼려했다. 그들은 알렉산더 맥퀸의 죽음이 일종의 가십처럼 여겨질까 두려워했고, 그의 생애가 다큐멘터리라는 미명 하에 상업적인 도구가 될 것을 우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세 번씩 관련 인물들을 찾아가 설득하기 위해 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몇몇 사람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각각의 인물의 집으로 찾아가 두 시간에서 네 시간 분량에 달하는 인터뷰를 확보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부분 알렉산더 맥퀸을 지칭할 때 리 맥퀸이라는 개인의 이름으로 불렀고, 두 감독은 이를 통해 자신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이 작품이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위대한 인물의 전기가 아니라 리 맥퀸이라는 개인을 발굴하는 작업임을 알게 됐다. 동시에 알렉산더 맥퀸의 주변인들이 회상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알렉산더 맥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알렉산더 맥퀸과 함께 했던 자기 자신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위대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룰 때 가장 식상해지는 방식이란 그 위대함에 대해 끊임없이 주지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거나 그 위대함을 상실한 세계의 슬픔을 웅변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맥퀸>은 알렉산더 맥퀸에 관한 이야기이되, 알렉산더 맥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알렉산더 맥퀸과 함께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건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이 다양한 이들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가장 생생하게 파악하도록 이끄는 자연의 소리 같은 것이다. 확성기를 들고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라 빗방울이 두들기는 창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마음을 이끄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로서 <맥퀸>의 성취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맥퀸>은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의 대단함을 거창하게 설명하기보단 그 위대한 삶을 주변에서 지켜본 이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얼굴을 통해 생생하게 재현한다. 위대한 재능이 존재했던 세계의 흥분과 환희 그리고 그 재능을 상실한 세계의 슬픔과 통증을 전한다. 그럼으로써 그것이 대단한 업적과 영광이기 전에 평범한 삶에서 길어 올린 비범한 가능성이었고 그것 역시도 결국 어느 누군가의 삶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아이콘이 끌어안고 있었던 오랜 고통과 짊어져야만 했던 필연적 고뇌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비교적 극 초반에 등장하는 알렉산더 맥퀸의 누나인 재닛 맥퀸은 제작진이 가장 먼저 인터뷰를 요청한 인물이었지만 모든 인물 가운데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수락한 인물이었다. 그가 영화에 참여하기로 한 건 그의 아들인 게리 제임스 맥퀸의 영향이 컸다. 알렉산더 맥퀸의 조카이기도 한 게리 제임스 맥퀸은 한때 알렉산더 맥퀸의 브랜드에서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근무했고, 그 유명한 맥퀸의 해골을 디자인한 인물이기도 했다. 유년 시절 가정폭력을 일삼던 매형에서 성폭행을 당한 전력이 있었던 알렉산더 맥퀸은 패션 디자이너로서 성공한 뒤 누나와 조카의 삶을 돌보려 애썼다. <맥퀸>에 참여한 수많은 인물들 가운데서 알렉산더 맥퀸과 혈연관계로 이어진 두 사람의 존재는 결국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인물이 품고 있었던 통증을 공감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의 삶이 어떤 동력을 통해 전진하고 있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근본과도 같다. 이는 결국 그의 컬렉션 무대가 품고 있었던 파격적인 에너지가 이 세계의 근본적인 폭력을 향한 저항이자 투쟁임을 환기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한 시대를 이끈 패션계의 아이콘이 삶을 일군 것이 지극히 사소하고 소박한 열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그만큼 아이러니한 감상을 일으키는 것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맥퀸>은 패션사에 관심이 지대한 이들에게는 당연히, 반대로 패션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이들에게도 어쩌면, 대단히 흥미롭게 여겨질 만한 작품일 것이다. <맥퀸>은 패션 디자이너라는 존재가 단순히 매혹적인 디자인을 제시하는 역할을 넘어 세상의 관점을 디자인하는 존재일 수 있음을 설득하는 작품처럼 보인다. 동시에 패션에 대한 흥미와 무관하게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한 개인이 품고 있었던 거대한 우주에 대한 경이와 지극히 개인적인 통증을 통해 자라났다는 연민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맥퀸>은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한 세계를 명민하게 관통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맥퀸>의 결말부가 감동적으로 와 닿는 것도 그런 한 세계의 곁을 지키고 바라본 이들이 되새기는 기쁨과 슬픔이 결국 알렉산더 맥퀸이 남기고 떠난 큰 구멍을 메우기 위한 안간힘처럼 느껴지는 덕분일 것이다. 대단한 재능으로 세상의 관점을 한 뼘 늘려낸 천재가 남긴 상실감을 슬퍼하면서도 그가 벌려 놓은 이 세계의 가능성을 즐겁게 떠올리는 이들의 수많은 얼굴들. <맥퀸>은 더 이상 목도할 수 없지만 여전히 형형한 그 세계 자체를 환기시키는 다큐멘터리다.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유산이자, 리 맥퀸이라는 추억이었던 한 사람의 생애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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