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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왕실은 어떻게 자말 카쇼기 사건에 대처하고 있나

그들은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한 동맹국들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

  • 허완
  • 입력 2018.10.26 14:25
  • 수정 2018.10.26 14:26
ⓒBANDAR AL-JALOUD via Getty Images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MBS)는 24일 리야드에서 열린 국제 경제회의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행사에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참석했다. 자신이 레바논 총리를 납치한 적이 있다고 농담했고, 언론인 자말 카쇼기 피살이 안타깝다고 정색하고 말했다. 직접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가장 큰 메시지는 ‘나는 지금도 여기 있다’였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 밖에서는 사우디 왕가와 영향력 있는 다른 국가들은 왕세자의 미래를 조용히 점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사우디가 맞은 가장 큰 국제적 위기에서, MBS가 사우디 아라비아의 가장 강력한 실력자 자리를 지키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카쇼기가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된 것이 3주 전이다. 그럼에도 사실상 사우디의 지배자인 MBS의 위치는 확고해 보이며, 예정대로 왕위 계승도 이뤄질 것 같다. MBS 측근들이 이 잔혹한 피살에 책임이 있다는 정보가 계속 새어나오고 있으며 이에 대한 국제적 압박도 강해지고 있지만, 사우디의 살만 국왕이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축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MBS의 영향력을 어떤 식으로든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호응을 얻고 있다. 거의 100년 동안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알-사우드 왕조는 석유를 팔고 서방의 강적들에 대한 방어벽 역할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들에게는 정치적 감각이 있으며, 강력한 우방국들이 MBS의 정책에 점점 더 실망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 행하고 있는 예멘의 군사 작전, 해외 투자자들을 겁먹게 만드는 국내 탄압, 카타르와 캐나다, 독일과의 마찰에 대한 비판적 기사들을 그들은 다 보고 있다. 

ⓒ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중동 인사들은 MBS에 대한 우려를 명확히 밝혔지만 사우디 체제가 스스로 균형을 찾을 것이라 보고 있다. “전세계 사람들은 국왕을 믿으려 하며, 국왕이 (이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분명히 처벌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씽크 탱크 아랍 센터의 칼릴 자샨은 말했다.

주요 서방 동맹국들은 아직까지 카쇼기 사건에 대한 사우디의 설명에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미국의 여러 고위급 인사들은 MBS가 권력을 얻는 과정에서 밀려난 무함마드 빈 나예프 전 왕세자 등의 왕족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빈 나예프 전 내무장관은 “지금도 백악관을 제외한 워싱턴이 가장 좋아하는 사우디 왕족”이라고 수십 년간 사우디를 연구한 그레고리 고스 텍사스 A&M 대학교 교수는 말한다. MBS는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의 사위이자 백악관 고문인 재러드 쿠슈너와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한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왕세자에 대한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터키는 왕세자가 권력을 얻기 시작했을 때 이를 ‘재앙’으로 여겼다고 친 정부 성향 신문 ‘데일리 사바’ 소속이었던 언론인 유수프 셀만 이난크가 허프포스트에 말했다. 에르도안은 지난 23일 살만 국왕을 직접 언급하며, MBS가 카쇼기 피살에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며 대답을 낼 것을 촉구했다. 터키는 지나 하스펠 CIA 국장에게 사건 당시의 녹음 자료를 들려주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4일 보도했다. MBS를 비판하는 세력들이 이 이슈를 미국에서 계속 끌고 가기 쉬워진 것이다.

자신들이 직접 고른 왕세자의 운명을 외국이 결정하도록 사우디 왕실이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변화를 원하는 추세를 이해한다. MBS의 지위를 지키기 위한 면피책을 통해(국왕이 사우디 정보부 재조직을 MBS에게 맡긴다거나, 원로 정치인 투르키 알 파이살 왕자가 왕가와 사우디 대중은 MBS 편이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하는 등이다) 극적이거나 급격하지 않아보이는 방식으로 조용히 조정에 나섰다. 

ⓒJIM WATSON via Getty Images

 

MBS는 자신만만한 접근 방법을 택했지만, 왕가의 전략은 사우디가 전통적으로 선호해온 조심스러운 뒷거래 방식에 가깝다.

국왕은 경험이 많은 왕족을 내세워 균형을 잡고, MBS가 모든 결정을 혼자 내리는 게 아니라는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고 고스는 말한다.

카쇼기를 외국 영토에서 살해하고, 예멘을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로 몰아넣는 등 MBS가 사우디 바깥에서 연루된 행동들은 엄청난 반발을 낳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교 정책 조정은 사우디 왕실의 분명한 선택지처럼 보인다.

“사우디 측에 MBS를 견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미국인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조차 그런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가장 공개적으로 그를 견제하는 방법은 왕가의 원로를 외교부 장관에 앉히는 것이다.” 고스의 말이다. 그는 칼리드 알 파이살 왕자가 유력하다고 보았다. 왕가에서 MBS와는 다른 파 소속이며, 카쇼기 사건 후 터키 방문 특사로 국왕이 선택한 인물이다.

MBS를 지지하는 사우디 국가주의자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왕가 원로들은 모든 변화는 사우디의 안정과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울 수 있다. MBS의 친 이스라엘 행보 후 국왕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을 때처럼 말이다. 또한 MBS를 버리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사우디 내 주요 세력들과도 협상해야 한다. MBS는 전반적으로 경직된 사우디의 서열에서 가장 젊은 세대의 성인 왕족들을 얼마 되지 않는 요직으로 승진시켰다고 고스는 지적한다. 또한 그는 국방 장관으로서 사우디 군의 엘리트들에게 힘을 실어준 덕분에 MBS가 지지를 얻고 있다는 카네기 중동 센터의 애널리스트 예지드 사이그의 분석을 상기시켰다.

카쇼기 스캔들이 MBS와 사우디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계속되는 비난과 지정학적 정세, 사우디의 말바꿈을 보면 사태가 가라앉으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에 대해 더 믿을 만한 얘기가 나와야 한다.” 한 서구 외교관이 익명을 조건으로 허프포스트에 밝혔다. “내 생각에 지금 우리는 사우디 측이 어떤 말을 내놓을지 기다리면서 동시에 물밑에서 이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그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 이 글은 허프포스트US의 Here’s How The Saudi Royal Family Is Quietly Playing Defens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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