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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지옥'을 통과할 자신 있는가

ⓒ주민들이 돌봐오던 유기견 '상암이'는 포획팀이 쏜 마취총을 맞고 사망했다.
ⓒhuffpost

“저, 동물지옥에서 심판받을 인간들!”

지난 15일 경북 경산의 영남대학교 안에서 고양이 머리만 남은 사체가 발견됐다. 사체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보란 듯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사람이, 누군가 의도적으로 저지른 행동임이 분명하다.

영화 <신과 함께>를 본 뒤부터 사람이 동물에게 저지른 잔혹한 짓들을 볼 때마다 ‘동물지옥’이란 말을 입에 담게 됐다. 동물지옥은 이생에서 동물에게 저지른 죄를 심판하는 곳이다. 영화 속 ‘저승법’에 따르면 인간은 죽어서 49일 동안 일곱번의 재판을 거쳐야 한다.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이라는 일곱개 지옥에서 일곱번의 재판을 통과한 사람만이 환생한다는 게 저승법 내용이다. 반려인구 1000만명 시대를 사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적용될 저승법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살인지옥의 앞이나 뒤에, 동물지옥이 추가됐을 가능성이 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지는 잔혹한 뉴스들을 보면 그 동물지옥이 얼마나 많은 피고인들로 북적댈지 눈에 선하다.

멀쩡한 길고양이들을 유인해 괴롭히거나 죽이고, 유기견을 납치해 개고기 시장에 팔아버린 사람들은 별다른 변론 없이 동물지옥의 공판 첫날 유죄를 선고받을 것이다. 물론 이들은 이승에서도 심판받아야 한다. 우리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거나 유기 동물을 팔거나 죽일 목적으로 포획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무죄와 유죄, 오로지 두가지 결론뿐인 일곱개 지옥과 달리 동물지옥의 형벌 체계는 좀 더 복잡할지도 모른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동물원 우리 밖으로 나간 퓨마를 사살한 사람에겐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할까. 민원이 많다는 이유로 유기견 ‘상암이’를 마취총으로 포획하려다 죽인 공무원과 엽사들은? 한쌍이던 토끼가 88마리가 될 때까지, 서울 몽마르뜨공원에 토끼를 내다버린 사람들에게 납치나 살생에 버금가는 형벌이 내려지면 ‘형평성’ 논란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불구덩이에 떨어지거나 수백년 동안 얼음에 갇혀야 하는 다른 지옥들과 달리 동물지옥에선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같은 감형이 이뤄졌으면 하는 ‘범인류애적’ 바람이 있다.

멸종위기종인 고래상어를 1년 새 두번이나 풀어준 선장 이종범씨를 <한겨레> 애니멀피플이 지난 17일 인터뷰했다. 그는 “보호 대상이었으니, 살아 있었기 때문에, 풀어줬다”고 덤덤히 말했다. 그는 강원도 고성 바다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어민이다. 매일같이 수많은 물고기의 생명을 빼앗았으니 동물지옥에선 ‘중범죄자’이겠지만 생명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정상참작’ 사유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다른 생명을 존중함으로써 보여준 셈이니까.
공장식 축산으로 희생된 수많은 돼지와 닭, 소들에 의지해 살아가는 이생의 인간들 대부분은 미래의 피고인들이다. “닭고기, 돼지고기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역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하면 동물지옥 재판장은 정상참작을 해줄까. 이 선장과 같은 ‘면죄부’를 얻기 위해 현대인들은 어떤 선행을 베풀어야 할까.

어릴 적 줄지어 걸어가는 개미 떼를 일회용 라이터로 괴롭히던 기억이 났다. 지난봄 지리산 둘레길 100㎞를 밤새 걸으며 섬진강 둑길에 산책 나온 수많은 달팽이를, 그게 달팽이인 줄도 모르고 밟았던 ‘죄’는 또 어쩌나. <신과 함께> 속 살인지옥에선 ‘미필적 고의범’도 처벌하던데…. 동물지옥의 사건과 형벌 체계는 다른 지옥보다 복잡할 테니, 전문 변호사가 필요할지 모른다. 이생에서 인연을 맺었던 동물이 적합하지 않을까.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들이 딱한 반려인의 변호를 맡아줄지도 몹시 궁금하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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