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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 미약 감형' 조항은 꼭 없애야 하는 '악법'일까?

교과서 같은 이야길 해보자

ⓒhuffpost

망상에 빠진 환자가 있다. 기록된 병명은 정신분열증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조현병. 교회에 다니던 이 환자는 어느날 계시를 받았다. 큰 사람이 돼야만 천당에 갈 수 있다는 계시였다. 그는 설교 중이던 목사를 죽였다. 목사가 사탄이고 큰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죽여야 했다고 범행의 이유를 밝혔다. 항소심은 이 환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나 상고심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할 만한 다른 동기가 전혀 없고, 오직 피해자를 ”사탄”이라고 생각하고 피해자를 죽여야만 피고인. 자신이 천당에 갈 수 있다고 믿어 살해하기에 이른 것이라면, 피고인은 범행 당시 정신분열증에 의한 망상에 지배되어 사물의 선악과 시비를 구별할 만한 판단능력이 결여된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없지 않다”며 파기환송했다. (90도1328)

다른 사례를 보자. 피고인은 정상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까지 다녀왔다. 그러다 절도죄로 붙잡혔다. 피고인은 자신이 도서관만 들어가면 도벽이 생긴다며 이를 심신미약으로 처리해달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 주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여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현상은 정상인에게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일로서 이는 정도의 문제에 불과하고, 따라서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위와 같은 성격적 결함을 가진 자에 대하여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고 법을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기대할 수 없는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므로 원칙적으로는 충동조절장애와 같은 성격적 결함은 형의 감면사유인 심신장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봄이 상당하고, 다만 그러한 성격적 결함이 매우 심각하여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을 가진 사람과 동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든지, 또는 다른 심신장애사유와 경합된 경우에는 심신장애를 인정할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94도3163)

형법은 어떤 한 개인에게 처벌을 내릴 때 세 단계를 거친다. 첫번째 그의 행동 자체가 범죄행위인지. 두번째 그의 행동에 위법성이 있는지(가령 군인이 적에게 총을 쏴 죽이는 행위는 행위 자체는 살인에 해당하지만 위법성이 없다. 위법성조각사유가 여기서 등장한다) 세번째 그가 저지른 행위에 대해 그가 처벌받을만한 책임이 있는지. 심신미약이나 심신상실(형법 제10조)이 고려되는 단계는 바로 세번째다.

 

ⓒAndreyPopov via Getty Images

 

벌을 하기 위해서는 그가 자신의 행위가 법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인지(통찰능력)하고 또 자신을 조종(조종능력)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 이런 여지가 없다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케이스는 다르지만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최면에 걸린 상태에서 타인을 살해한 사람에게 살인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미성년자의 행위가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벌인 행동이 범죄일지라도, 게다가 고의로 저지른 일일지라도 우리 사회는 일정 연령 이하의 인간에게 ‘자신의 행위를 제대로 인지할 수 없고 조종할 수 없다’고 정해둔다. 물론 개중에는 자신의 정확한 행동을 인지할 수 있는 자가 있을 것이나 모두가 그렇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연령을 나누어 일괄적으로 판단한다.

심신미약이나 장애도 마찬가지다. 정신적인 결함으로 인해 자신의 행동이 무엇인지 인지할 수 없는 사람, 혹은 현저히 곤란한 사람,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행동한 사람에게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은 형법의 근간이다.

형법은 그냥 ‘심신상실에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면해주지도 않는다. 가령 해를 가하고 싶단 마음으로 약을 먹거나 본인을 심신미약 상태로 빠트린 경우에는 이 행위 자체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청와대에 올라온 청원에는 정확히 ”나쁜 마음먹으면 우울증 약 처방받고 함부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란 표현이 있으나 이는 형법 제10조 제3항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자의 행위는 심신미약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에 의해 부정된다). 또 평소에 심신미약의 증세가 있다 하더라도 범행 당시에 그런 증세가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는 한 심신미약 조항을 적용하지도 않는다(83도1897)

게다가 최근에는 심신미약 조항 적용이 강화되는 추세다. 특히 술을 먹고 벌인 범행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법무부 산하에는 양형위원회가 있다. 양형위원회는 법관의 양형에 대해 객관적인 기준을 설정하거나 변경하고, 이와 관련된 양형정책을 연구·심의한다. 양형위원회는 2010년부터 심신미약 상태를 일부로 야기해 성범죄를 일으킨 경우에 이를 강화해서 처벌하도록 했다. 일부로 야기하지 않았다 해도 이를 ‘감형’으로 반영하지 않는다. 상해와 폭행, 강간살인 등에도 같은 조항이 적용된다.

이런 가이드라인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만약 심신미약 조항을 적절하게 적용하지 않는다 싶으면, 혹은 조금 더 강화된 조건의 심신미약 조건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입법적 요청이나 견제 혹은 비판을 통해 보충해나가거나 건설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대해 법원은 아직 아무 판단도 내리지 않았다. 그가 실제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는지조차 확인이 안된다. 우울증이 맞는지, 우울증이 맞다면 그것이 심신미약인지 엄밀한 판단을 거쳐야 한다. 정황상 그에게 자신의 행위를 조종할 수 없을 정도의 심신미약 상태가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다른 쪽에서 판단은 끝난 것 같다. 청와대 청원 사상 역대 최고를 찍었다. 90만이 심신미약 감형에 대한 반대를 보여줬다. 

예외를 엄격하게 적용하자는 말과 예외를 없애자는 말은 아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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