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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단을 위한 권리는 기본권이다

  • 조소담
  • 입력 2018.10.22 14:09
  • 수정 2018.10.2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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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네 문장에 ‘매우 동의’하는지 ‘전혀 동의하지 않는지’ 스스로 답해보시길 바란다. 현재 우리나라는 강간, 친인척 간 임신, 모체 건강상의 이유, 유전되는 장애 등의 사유에 대해서 제한적으로 인공임신중단을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허용 사유를 늘린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첫째, 책임지지 않는 성관계가 늘어나고 성문화가 문란해진다. 둘째, 인공임신중단이 늘어난다. 셋째,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해진다. 넷째,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다.

나는 당신이 ‘네가지가 모두 조금 이상하지 않냐’고 물어주길 바란다. 나도 딱 그런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지는 지난달 2일 <한겨레>가 입수한 보건복지부의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내용의 일부다. 세부 질문 네가지 중 세가지가 낙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그대로 읊고 있다. 여성단체와 전문가들은 문항의 편향성을 이유로 자문을 거부했다.

지난 몇달간 낙태죄 폐지와 관련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20일에 마지막 상영회를 마무리했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함께 나눠주었다. 많이들 울었지만 이 눈물은 ‘낙태를 했다는 슬픔’ 때문은 아니었다. 삶에서 선택이 필요한 순간에 자신이 책임감을 갖고 어려운 선택을 했음에도 비난받아야 했던 것,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 실제로 낙태가 죄인 나라에 사는 것에 대한 눈물이다. <유럽낙태여행>의 저자 이민경씨의 말을 빌리면 ‘어떤 시대에 태어난 여자들은 낙태를 할 수 있고’, (낙태를 종용받기도 하고), ‘어떤 시대에 태어난 여자들은 낙태하다 죽어버리고’ 제멋대로 정치적, 종교적 힘에 따라 제도가 바뀌는 중에도 여성들은 삶을 살아내야 했다.

다시 한번 묻자. 낙태죄가 폐지되고 인공임신중단에 대한 여성의 권리가 폭넓게 확보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첫째로, 자신의 사회 경제적 상황,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충분히 고려해 출산을 선택할 수 있다. 즉 ‘책임지는’ 양육자가 늘어난다. 둘째, ‘안전한’ 인공임신중단이 늘어난다. 많은 여성이 정확한 의료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ㄴㅌ’(낙태)라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검색해 병원을 찾고 있다. 임신중단의 권리가 보장되면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온전한 의료 정보를 전달받고, 의사와 상담을 통해 정신적, 신체적 부담에 대비하고, 적정한 가격으로 안전하게 임신중단을 할 수 있다.

셋째, 여성의 생명, 건강, 삶을 고민하는 풍조가 확산된다. 네덜란드 재생산 활동가이자 산부인과 의사인 레베카 곰퍼츠에 따르면 인공임신중단은 전 세계 여성의 3분의 1이 경험하는 의료 행위이다. 불법 낙태를 막는 일이 여성을 살리는 일이다. 어렵게 낙태 시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고 위생적이지 않은 환경을 감당해야만 하는 여성, 수술 후 집에 돌아와 친구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는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여성. 이들의 삶을 고민하는 관점의 이야기가 더 많아져야 한다.

넷째, 임신중단을 위한 권리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도구가 아니며, 이것은 기본권이다. 여성의 생명이, 건강이, 삶이 달린 문제다. 낙태죄가 폐지된 뒤에 우리는 이것이 대체 왜 죄였는지, 왜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는지, 여성으로서 왜 공포와 무거운 책임을 지고 이 사회에서 살아야 했었는지 모든 게 새삼스러워질 것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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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단 #낙태죄 #낙태죄 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