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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9일 17시 06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0월 19일 17시 06분 KST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제정하라

뉴스1
2016년 4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형제복지원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이 피켓을 든 채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고 있다.
huffpost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이하 위원회)는 2018년 10월 10일 형제복지원 사건 조사 및 심의결과를 발표하고, 국가의 사과와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권고했다. 이번 권고는 입법부와 행정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조차 미루는 상황에서 사법부가 먼저 행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사건을 위원회에서 조사한 이유는 사법부의 조직적인 은폐가 있었기 때문이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 설립돼 1987년 폐쇄되기까지 3000명 이상을 동시에 수용한 격리시설이었다.(졸고 「망각된 인권, 형제복지원」, 창비주간논평 2017.9.6. 참고) 위원회에서 다룬 ‘형제복지원 사건’의 쟁점은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1986~87년에 원장 박인근 등이 경남 울주군에 있는 작업장에서 피해자들에게 강제노동을 강요하고 이에 따르지 않거나 도망가는 이들을 폭행·감금하여 일부 사망하게 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박인근의 부산시 보조금 횡령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정부, 검찰지휘부, 부산시 등이 외압을 행사해 축소된 공소사실마저 법원에서 대부분 무죄가 선고된 사건이다. 폭행, 살인, 시신유기 등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하지 못했으며, 박인근은 1989년 항소심에서 겨우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담당 검사였던 김용원 변호사는 수사를 방해하려는 압박을 전방위에서 여러차례 받았음을 증언한 바 있다.

또한 당시 대법원은 두차례에 걸쳐 대구고등법원에서 특수감금죄를 유죄 또는 일부 유죄로 인정한 판결을 파기환송시켰는데, 대구고등법원은 이례적으로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시킨 건에 대해 다시 유죄를 판결하는 등 저항했으나 결국 압력에 굴복하고 특수감금죄가 무죄라고 판결했다. 김재완 교수(방송대)는 2015년 본인의 논문에서 “대법원이 형제복지원이라는 국가범죄의 최종적 완결자”였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다. 이 사건에서 사법부의 잘못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에 이미 지난 9월 13일 검찰개혁위원회에서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비상상고 신청을 권고하기도 했다.

위헌적인 훈령에 근거한 강제격리

한편 이번 위원회 조사결과에서 중요한 내용은 ‘내무부 훈령 제410호’가 유신헌법 및 1980년 헌법에 비추어보더라도 명백히 위헌이었으며, 그 실행 과정에도 문제가 많았다는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내무부 훈령 제410호’를 근거로 피해자들의 감금이 정당하다고 판단하고 박인근 등의 특수감금 행위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1975년 마련된 이 훈령은 “건전한 사회 및 도시질서를 저해하는 모든 부랑인”을 단속하고 이들을 수용할 시설을 운영할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단순히 당시 대법원의 판결이 위헌적인 훈령에 근거했기 때문에 부당하다는 의미뿐 아니라, 이 훈령에 근거해 도시하층민 등을 부랑인으로 낙인찍어 강제격리한 행위 자체가 위헌임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이같은 강제격리 시설이 운영되도록 지원하고 관리감독의 의무를 저버린 중앙과 지방 정부, 그리고 도시하층민을 단속해 시설에 보낸 경찰 모두 이 불법행위에 가담한 주체라는 것이 이번 위원회의 결정으로 확인됐다. 위원회의 이번 판단은 그동안 밝혀진 사실을 재확인하고 공식화한 것이지만, 이 문제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하고 중차대한 일임을 국가기구가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위원회는 밝혀진 사실에 근거해 국가의 사과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추가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권고했다.

30여년간 눈감아온 입법부의 책임

형제복지원 특별법(내무부 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 규명 법률안)은 2014년 19대 국회에서 진선미 의원이 대표발의했으나 임기종료로 폐기됐다가 2016년 20대 국회에서 진의원에 의해 재발의됐다. 이 법은 현재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으나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에 필요한 재정문제 때문에 답보상태에 있다고 한다. 형제복지원 사건에는 행정부, 사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의 책임도 있다. 1987년 야당이었던 신민당은 형제복지원을 중심으로 전국 복지시설의 실태를 조사하고 진상조사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이 문제의 심각성과 피해자들의 상황에 대해 알게 됐지만 어떠한 추가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입법부의 부작위는 2014년 진선미 의원이 특별법을 발의하기 전까지 거의 30년 동안 이어졌다. 입법부가 책임을 방기한 결과 형제복지원에서 삶이 파괴된 피해자와 그 가족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또한 이들은 2014년 이후로도 특별법이 통과되기를 기대하면서 희망고문에 시달리고 있다. 입법부는 이러한 자신의 부작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의 일처럼 시혜적으로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예산보다는 피해자의 고통을 먼저 고려해야

사법부는 이번 위원회 조사 및 심의결과와 권고를 통하여 책임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또다른 당사인 행정부와 입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차례이다. 그래서 현재 특별법을 지연시키고 있는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묻고 싶다. 국가의 명백한 잘못에 의해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된 수천명에 달하는 국민과 이들의 가족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달린 고통에 대해 국가의 사과와 피해보상 그리고 진상규명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닌지를. 이들의 고통을 단순히 재정 문제로 치환해 문제 해결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더욱 키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미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밝혀진 지 31년,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가 2012년 국회 앞 1인시위를 한 지 6년, 2014년 19대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발의된 지 4년, 2016년 20대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재발의된 지 2년, 2017년 7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도보행진을 한 지 1년, 그리고 국회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 지 오늘로 345일째이다. 지금은 이 긴 논의를 정리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진심어린 사과 그리고 진상규명과 피해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으로 마무리 지어야 할 때다. 피해생존자와 가족은 오늘 저녁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망령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