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내 두 아들이 게이로 커밍아웃했을 때 나는 무너질 뻔했다. 나를 구원한 것은 이것이다

당신에게도 같은 충고를 해주고 싶다.

ⓒBIRD AND ROSE PHOTOGRAPHY

나는 사기꾼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소셜 미디어에 올린 내 게이 아들의 결혼식 사진에는 아름답게 적응한, 따뜻하고 포용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등장한다.

친구들은 나의 사랑, 수용, 투명함을 칭찬한다. 내게 고무받았다고 말한다.

지금 나는 내 두 게이 아들에 대해 그런 감정을 느끼지만, 아들들이 처음 커밍아웃했을 때의 행동을 생각하면 지금도 깊은 부끄러움이 든다.

약 십 년 전의 중대한 두 날 이후, 몇 년 동안 나는 밤잠을 못 이루고 걱정에 빠졌다.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은 밀려나고, 최악의 경우 맞거나 심지어 죽임까지 당하는 세상에서 아들들이 안전할지를 걱정했다.

공포에 빠져 잠을 못 이루던 밤들에 대해 이제까지는 공개적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뉴스 사이트에 밝힌 적은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비슷한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다른 부모와 가족들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바람으로, 내가 품었던 영혼을 잠식하는 수치를 공개할 때라고 생각했다.

내 큰아들 루크가 17살 때, 나는 루크의 방에서 우연히 일기장을 발견했다. 일부러 내가 보라고 펴둔 페이지에는 “신이시여, 동성애가 죄라면 왜 저를 이렇게 만드셨나요?”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루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네가 게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루크는 그렇다고 답했다.

나는 흐느꼈다. 내 마음은 이것이 루크의 진실, 우리의 진실임을 믿기를 거부했다.

나는 루크의 인생에 대해 상세한 총천연색 꿈을 품고 있었다. 그 꿈에서는 루크처럼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사랑스러운 손자도 등장했다. 나는 계획을 다 세워놓고 있었다. 그 후텁지근하던 6월 오후, 내 꿈은 갑자기 잔혹한 죽음을 맞았다.

ⓒBIRD AND ROSE PHOTOGRAPHY

루크가 커밍아웃하기 전에 나는 “게이가 되는 건 생물학적인 걸거야. 아무도 더 힘든 삶을 선택할리는 없지.”, “우리가 어떻게 감히 게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어?” 같은 말들을 했었다.

내 아이 이야기가 되니 달랐다.

갑자기 나는 수치, 부정, 분노를 느꼈다. 루크가 우리를 이런 길로 끌고 간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는 ‘게이를 바꾸자’ 운동을 펼치기로 하고 루크에게 변해달라고 애걸했다. 나는 신에게 루크를 바꿔달라고 애걸하기까지 했다.

루크는 달라지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려 했고, 흠씬 두들겨 맞은 기분이 되어 병원을 나섰다.

우리는 루크에 대한 진실이 다른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위험한 비밀인 것처럼 마음 속 깊이 묻었다.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이 루크를 거부할까봐 두려웠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루크를 선택하고 루크를 거부하는 이들과 거리를 둘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인간관계를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시간이 좀 지나자 우리의 침묵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거짓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마침내 주위 사람들에게 루크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동안 공연히 말없이 고통받아왔음을 배웠다.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응원해주었고, 나로선 실망스럽게도 대부분 놀라지 않았다.

비판과 비난을 선택한 가족들도 있긴 했다. 가족 모임에서 나는 감정이 너무나 조여와서, 사자 우리 위를 걷는 줄타기 곡예사가 된 기분이었다. 루크를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사람들과는 결국 거리를 두기로 했고, 그건 힘들었지만 내게 큰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가족과 친구들 대부분이 응원을 보내는데도 나는 루크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실망을 계속 느꼈다.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기 전, 우리는 막내 아들 윌에게 루크 이야기를 했다. 윌은 루크와 같은 사립 남자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1학년이었기 때문에, 루크가 학교 친구들에게 게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했다고 안심시켰다. 형이 게이라는 걸 알면 친구들이 윌을 어떻게 대할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윌은 엄청나게 속상해 했다. 루크가 게이여서가 아니라, 남편과 내가 그 사실이 추잡한 비밀인 것처럼 숨겨왔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루크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사실에도 화를 냈다. 윌은 그게 루크의 섹슈얼리티는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라는 의미라고 느꼈고 그런 시각을 거부했다. 당시 우리는 윌도 게이라는 걸 몰랐다. 우리가 동성애에 대한 우리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 무심코 윌에게 준 상처가 지금도 나는 마음 아프다.

루크의 고등학교 졸업이 다가왔고, 루크는 내가 교수로 있던 사립 대학교에 진학하기로 했다. 나는 루크의 섹슈얼리티가 내 위치를 위태롭게 하지는 않을까 하고 패닉에 빠졌다. 지금은 터무니없는 말로 들리겠지만, 당시 나는 수치와 공포에 완전히 잠겨서 빠져나올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루크가 기숙사에 들어가기 일주일 전, 루크가 겨울 옷을 챙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캠퍼스는 집에서 20분 거리였기 때문에, 루크는 겨울옷이든 뭐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몇 달 후에 언제든 가지러 올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루크가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남편이 그날 저녁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나는 “우리가 루크를 사랑하고 받아들이기를 선택하지 않으면 루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선택했다. 최소한 노력은 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었고, 나는 루크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루크의 섹슈얼리티가 루크와 나의 삶에 갖는 의미에 대해 계속 고민했다. 루크가 대학교로 떠났을 때, 나는 매일 밤 울면서 신에게 루크를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뭐든 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내 기도에 대한 신의 대답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한 순간의 모든 세세한 것까지도 뇌에 새겨지는, 그런 기억이 있지 않은가? 바로 그런 기억이었다. 차로 걸어가다 무언가가(나는 신이라고 믿는다) 내게 “너는 잘못된 기도를 하고 있다. 너는 ‘신이시여 루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알려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루크와 남편, 결혼식 날

이 일로 나는 신이 내게 나의 아이이자 신의 아이인 루크를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다는 강력한 확신을 키웠다. 나는 내 생각과 마음을 바꾸고, 아들들의 진짜 모습을 응원하는데 헌신하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이제 성경이 동성애를 비난한다는 말을 들어도 1천 년도 더 전에 인간이 만든 책보다는 신이 내게 해준 말을 믿는 쪽을 택한다.

2년 뒤 동네 레스토랑에서 가족 식사를 하던 중 윌이 커밍아웃했다. 나를 변화시키는 경험을 했고 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하다는 걸 깨달은 뒤였지만, 나는 목이 조이는 듯했다. 눈물이 흘렀다. 처음 든 생각은 ‘너까지 그러면 안돼’였다. 또 하나의 꿈을 잃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동성애에 대한 내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루크가 커밍아웃했을 때 경험했던 공포와 수치로 갑자기 다시 빠져들었다. 루크는 놀라지 않았다고 했다. 동성애는 가족 내력인 경우가 많다. 즉 게이가 왜 게이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유전적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뜻이다. 내 절망은 분노로 변했고, 이 분노는 남편 조를 향했다. “당신 정자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나는 화를 내며 물었다.

이젠 우린 그 이야기를 하며 웃지만, 당시로선 전혀 웃기지 않았다. 나는 루크가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굉장히 노력했고, 내 아들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했지만, 루크가, 그리고 이제는 윌도 섹슈얼리티 때문에 어떤 일을 겪을지 계속 걱정하고 있었다.

윌이 커밍아웃했을 때, 솔직히 말해 윌을 편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윌이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늘 알고 있었으며 이제 그걸 받아들이게 되었음을 설명하는 멋진 편지를 주어 남편과 나를 위안해주었다. 자기 자신보다는 우리가 걱정된다며, 우리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함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COURTESY OF KELLY BEISCHEL

자기 탐구 끝에 나는 내가 걱정하는 것은 루크와 윌의 섹슈얼리티가 아니라 내 아들의 안전에 대한 염려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게이라는 이유로 아들들이 폭력적인 공격을 받을까봐 걱정했다. 다른 사람에게 잔인해질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며 겪을 정신적, 감정적 안전과 위험이 걱정스러웠다. 성적 안전이 걱정스러웠다. 큰딸 베스가 다시 한 번 우리 가족이 만든 지뢰밭을 지나가야 한다는 게 걱정스러웠다.

내게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끝없는 걱정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신이 내게 주었다고 내가 믿고 있는 메시지를 다시 떠올리며 매일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불안을 덜기 위해 심호흡 운동도 했다. 더디긴 했지만 효과가 나타났고, 나는 우리의 새로운 표준 상태에 적응했다.

우리 가족이 두 게이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정상화해가는 가운데, 윌이 드랙을 해보기 시작했다. 윌의 새 취미를 알게 되자, 내가 여러 해 동안 붙잡고 씨름하던 수치가 또다시 몰려들었다.

약 1년 후 나는 드랙 퀸이라는 것이 윌의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를 비난하는 대신, 나는 공감과 호기심을 발휘하기로 했다. 나는 드랙 쇼 티켓을 사서 가족들과 함께 갔다. 그 쇼로 인해 드랙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서 윌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고, 나는 드랙의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즐기기 시작했다.

 

ⓒCOURTESY OF JOEL AUTEN (@DIGITAL_ARTS_COLLECTIVE)

 

더욱 최근에는 윌이 페이스북에 자신은 젠더플루이드(genderfuid)라고 생각한다는 포스팅을 올렸다. 이번에는 수치를 느끼는 대신, 나는 개인적으로, 또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윌을 칭찬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다는 점을 칭찬하고, 다른 이들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오래 걸렸지만 나는 마침내 사랑을 선택했다. 진정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나는 마침내 진정하게, 무조건적으로 아들들을 받아들였다. 성장이 가능하다는 증거가 바로 나다.

나는 더 이상 내 삶이 달라지기를 바라지도, 내 가족이 지금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면 안도가 찾아온다.

당신에게 LGBTQ 자녀가 있고 당신이 수치의 거미줄 안에서 살고 있다면,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달라.

11년 전에 누군가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고 내게 말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꿈이 죽는 것을 경험하고, 그걸 극복한 뒤 더 강한 사람이 된 누군가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사회가 루크와 윌 같은 아이들을 배척한다는 걸 알지만,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잘 살 수 있고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 내가 고통을 회피하게 하거나, 내 아들들이 아이를 입양할 수 있다, 게이라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니다라는 말로 넘어가는 대신 내 말을 들어주고 내가 슬퍼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

난 이제 내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잘될 것이다. 과감하게 말하자면, 당신의 삶은 예전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의 아이들이 용감한 진실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을 볼 것이며, 당신의 삶은 다차원적이 될 것이다.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좀 걸려도 괜찮다. 비통함, 수치, 공포, 혼란 등, 당신의 감정이 무엇이든간에 처리할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라. 협력 단체의 누군가가 루크에게 말했다. “부모님에게 시간을 주라. 당신이 게이라는 걸 받아들이는데 당신은 17년이 걸렸다. 당신 부모님이 15분만에 받아들이기를 바랄 수는 없다.”

당신에게도 같은 충고를 해주고 싶다.

당신의 게이 자녀가 일탈적이라는 사회의 잡음은 듣지 않아도 좋다. 당신이 자녀를 향해 품은 무한한 사랑을 사용하라. 사랑을 길잡이로 사용하자 내겐 큰 변화가 생겼으며, 당신 경우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사람들은 당신을 따라할 것이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녀에 대한 꿈을 갖고 있다. 이런 꿈의 죽음은 참담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내가 두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아이들이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내게 의지할 수 없듯이, 내가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아이들에게 의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타인이 내 꿈을 이루어 주거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길 기대하는 건 공정하지 못하다.

아이들의 꿈이 무엇이든, 내가 처음 품었던 꿈과 아무리 다르든 간에, 나는 내 아이들에게 자신의 꿈을 좇으라고 격려하는 동시에 내 꿈을 좇고 있는 지금 가장 행복하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동성애 #게이 #교육 #부모 #드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