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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거 워닝’이 정답일까

ⓒ넥플릭스
ⓒhuffpost

나는 넷플릭스 중독자다. 이 스트리밍 서비스는 많은 부분에서 대단하다. 당신은 월 1만 원의 가격으로 어떠한 광고도 없이 수 많은 컨텐츠를 즐길 수 있다. 나는 집에 도착해서 TV를 트는 순간 넷플릭스를 튼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만들어낸 수많은 오리지널 시리즈를 시청하기 시작한다. 이제 넷플릭스를 보는 건 다양한 채널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TV를 트는 가장 주요한 이유가 됐다. 전 세계 수천만의 넷플릭스 시청자도 나와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는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다. 2007년 출간된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여고생이 성폭력이나 왕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자살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당연히 이 드라마는 미국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좋은 화제만은 아니었다. 지난 4월 목을 매 사망한 15세 소녀 두 명의 학부모는 딸들이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보고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 학생의 부모는 폭스뉴스에 출연해 “이 프로그램이 딸의 자살에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수많은 학부모들의 비슷한 항의가 줄을 이었다.

넷플릭스는 올해 5월 “이 드라마는 자살을 미화하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한 뒤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오프닝에 트리거 워닝(Trigger warning)을 넣었다. 트리거 워닝은 어떤 소재나 주제에 대해 심리적 외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미리 경고를 삽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는 최근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굉장한 인기를 얻고 성공을 거두었다. 논쟁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그걸 반드시 봐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방어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 발언은 또 한 번 논란이 됐다.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세기 미디어 종사자들은 미디어가 개별 시청자나 관객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정부 기관의 검열과 맞서왔다. 언론은 살인과 자살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해당 사건의 이유가 폭력적인 게임이나 영화 등에 있다는 분석에 맞서 미디어의 자유를 지키자고 역설해왔다. 가히 2018년적 움직임이라 할 수 있는 트리거 워닝은 이같은 오래된 가치와 정면, 혹은 측면으로 부딪힌다. 미디어가 한 개인의 폭력과 자살에 충분한 영향을 끼친다고 해석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최근 허프포스트 미국판은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도 “어느 드라마나 영화가 도덕적이냐 비도덕적이냐를 정하려는 건 헛수고이며, 넷플릭스의 목표가 무해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기사를 발행했다. 그러나 트리거 워닝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단어 앞에 아직 정답은 없다. 21세기 미디어는 ‘누구의 기분도 해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까? 아니면 자의적인 검열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여전히 가장 큰 목표로 삼아야 할까? 혹시 이 칼럼 역시 트리거 워닝이 새로운 시대의 필수적 가치라고 여기는 세대에게는 일종의 트리거가 될까? 질문은 계속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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