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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말 카쇼기 사건이 빈 살만과 트럼프에 대해 말해주는 것들

국제사회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 허완
  • 입력 2018.10.19 14:26
  • 수정 2018.10.19 14:34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 앞에서 열린 시위에서 참석자들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가면을 쓰고 있다. 2018년 10월8일.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 앞에서 열린 시위에서 참석자들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가면을 쓰고 있다. 2018년 10월8일. ⓒJIM WATSON via Getty Images

자말 카쇼기가 실종되기 훨씬 전부터도 사우디아라비아는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해왔다. 사우디는 정부에 맞서는 운동이나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다. 체제 비판자들은 해외에서조차도 안전하지 않다. 정권에 비판적인 사우디 왕자들은 유럽에 살다가도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카쇼기는 평범한 반체제 인사가 아니었다. 그는 아랍 세계를 위한 민주주의(Democracy for the Arab World Now)라는 단체를 만들어, 개혁적 지식인과 정치적 이슬람교도들을 결집해 아랍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추구하려 했다. 또한 카쇼기는 아랍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나 사우디에 의해 이 지역의 위협이며 테러리스트 단체라고 규정된 초국가적 이슬람 운동 단체인 ‘무슬림 형제단’과도 관계가 있었다.

카쇼기가 한때는 사우디 왕가와 아주 가까웠고 사우디 국내 사정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국내 각계각층에 인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의 정치적 활동은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에게 아주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카쇼기가 ‘반체제 인사’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MBS가 불안해 할 정도로 큰 야심을 갖고 활동했다. MBS는 카쇼기를 미국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데려오려 했으나 실패했다. 카쇼기는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사우디 정부의 제안에 대한 불신을 밝혔고, 미국에 남아 활동을 계속했다.

이에 따라 MBS는 그를 고문하고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사우디 정권에 도전하고 대안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은 가장 가혹한 방식으로 처벌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해외 거주 반체제 사우디인들과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냉혹한 경고다.

카쇼기 사건은 인권이나 반체제 인사 억압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것은 카쇼기의 정치적 전향을 MBS가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는 신호다. 이 사건이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MBS가 메시지를 전할 때 어떤 후폭풍이 있더라도 개의치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우디 지배층은 공식적으로 진상을 확인하기 어려운, 우연을 가장한 ‘사고’로 반체제 인사를 죽일 수단을 분명 가지고 있다. MBS는 그 대신 더 무시무시한 방법을 택했다. 

한 보안요원이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 출입문 바깥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 2018년 10월12일.
한 보안요원이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 출입문 바깥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 2018년 10월12일. ⓒASSOCIATED PRESS

 

이번 사건의 노골적 면모는 미국 및 국제 정책 분야의 많은 이들을 놀라게 만든 것 같다. 그러나 사우디 지배층으로서는 자국 국민을 납치해 살해하고도 별 문제 없이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러시아는 2016년에 런던에서 알렉산더 리트비넨코를 죽였고, 세르게이 스크리팔을 독살하려고 시도함으로써 한 국가가 해외의 ‘배신자’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북한 김정은의 형 김정남은 말레이시아에서 대량 살상 무기로 분류되는 VX 신경독으로 살해당했다. 이 사건의 배후에 북한이 있음은 명백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몇 달 뒤 김정은을 만나 악수했다.

이번 사건에 쏠린 관심과 다가온 몇 개월 동안 고조될 수 있는 긴장에도 불구하고, 카쇼기 사건 때문에 장기적으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에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의 전말이 처음 밝혀졌을 때 사우디는 국제적 예의와 규범을 무시했지만, 트럼프는 사우디가 “군사 장비와 미국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들에 1100억 달러를 쓴다”며 개의치 않는듯했다(발표는 됐지만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무기 계약을 가리킨다).

또한 트럼프는 사우디 영사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든, “이 일은 터키에서 일어났고 우리가 아는 한 카쇼기는 미국 시민이 아니다”며 무시하려는 듯했다.

트럼프가 계약과 돈을 중요시하는 걸 MBS가 계산에 넣지 않았을리가 없다. 또한 트럼프가 미디어를 업신여기고, 과거 미국 정부들과는 달리 러시아와 북한 등 독재국가와 가까이 지내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MBS는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도 가깝다. 쿠슈너는 1100억 달러 규모의 사우디-미국 군사 계약을 주선했으며,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계획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기려 한다. MBS는 사우디의 석유 수출이 세계 경제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고, 미국 정부의 중동 정책에 있어 사우디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 모든 것들로 인해 그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도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갖는 파트너십은 가치가 아닌 이익에 기반한 것이다. 카쇼기 살해 사건에 미국 정계와 재계는 분노하고 있고 공화당도 예외가 아니지만, 트럼프의 반응은 ‘우리가 알 바 아니다’에서 ‘정말 그랬다면 좋지 못하다’로 바뀌었을 뿐이다.

급히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 2018년 10월16일.
급히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 2018년 10월16일. ⓒASSOCIATED PRESS

 

트럼프는 사우디 국왕과의 통화에서 국왕이 사우디 정부는 카쇼기 사건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고 밝히며 ”독자적인 살인자들”이 카쇼기를 죽였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급히 사우디를 방문해 살만 국왕과 MBS를 만났다. 국무부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이 방문에서 양국간 이슈와 중동 지역 이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며, 폼페이오는 “자말 카쇼기 실종에 대한 철저하고 투명하며 시의적절한 수사를 지원하겠다는 국왕에게 감사했다”고 한다.

즉,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은 사우디 정권이 하는 말을 믿어줄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우디 집권자들은 이스탄불 자국 영사관에 대한 터키의 감시 능력을 과소평가했고, 미국 정·재계에서 즉각 부정적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예측하지도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사우디 정권은 이번 사건에 대해 앞으로도 미국 정권을 달랠 정도의 발언만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살해 사건임이 명백해 보이나, MBS는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주장할 것이고, 누군가를 주범으로 내세우며 처벌하는 시늉을 할 수도 있다.

카쇼기 사건으로 MBS는 외교적 예의의 기준이 빠른 속도로 낮아지고 있는 이 세계에서 외교적 면책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시험하고 있다. 그가 해외 사우디인들, 자신의 정당성에 도전할 수 있는 정치적 운동을 통제하고 억누르고 싶어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재계에서 불어닥친 역풍(카쇼기에게 가해진 폭력의 잔학상이 언론에 자세히 알려지면 더 드세질 것이다)로 인해 MBS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보다 몸을 사릴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경제인들과 정치인들은 꾸준히 공개적, 개인적으로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한 제재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들이 있다고 말이다.  그 가치들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문제가 국제사회의 과제로 남아있다.

 

* 이 글은 허프포스트US에 게재된 국제연구소 디렉터 Nukhet A. Sandal 오하이오대 정치학 교수의 글 Killing Jamal Khashoggi Was A Saudi Warning Shot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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