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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8일 12시 0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0월 18일 12시 09분 KST

기본 중 기본! ‘딕션’ 좀 어떻게 안 되겠니?

huffpost

몇해 전 대극장 뮤지컬을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주연급으로 나오는 배우의 발성이 너무 안 좋았다. 목에 뭐가 걸린 듯 억지스럽게 노래를 쥐어짜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혹시 이날만 컨디션이 안 좋았나 싶어, 두번을 더 봤다. 똑같았다. 어떻게 저렇게 기본도 안 된 배우가 주연급으로 출연할 수 있지? 의문이었다.

요즘 TV를 보면서, 그때의 충격에 다시 사로잡혔다. 최근 시작한 드라마 중 열에 여덟은 연기의 기본인 딕션(대사 전달력)조차 안 되는 배우들이 주인공을 맡았다. 한 지상파 드라마 여자 주인공은 발음이 세고, 불분명해 그가 등장할 때마다 집중이 안 된다. 한 종편 드라마 남자 주인공은 대사를 내뱉기 바빴다. 리듬감은커녕 적절한 곳에서 끊어 읽는 호흡처리조차 안 됐다. 한 케이블 드라마 여자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다. 진지한 드라마인데 그가 등장하면 감정 이입이 안 된다. 최근 시사회를 한 영화 속 여자 주인공도 발음이 너무 거슬려 내용에 집중이 안 된다.

왜 저런 배우들에게 주인공 자리를 주느냐고 관계자에게 따지듯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배우가 없어요.” 배우가 없다니? 그들이 말하는 배우라는 건 ‘연기 살짝 못해도 인지도 있는 배우’다. “연기 잘하는 이름 있는 배우들은 죄다 다른 작품이 예약되어 있어 어쩔 수 없어요.” 신인을 키우거나, 중고 신인을 발굴하면 되지 않나? 연극판만 돌아다녀도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수두룩하다.

딕션은 잘하면 좋은 게 아니라 배우의 기본이다. 타고나면 좋겠지만, 타고나지 않으면 노력해야 한다. 원래 발음 또박또박한 김명민도 초기 볼펜 물고 대본 읽기를 반복했다. 개그맨에서 뮤지컬로 성공한 정성화는 발성도 기본기부터 다시 배웠다. 그는 2011년 영국에 건너가 한달간 발성 공부를 하고 오기도 했다. “이 소리가 어디에서 어떤 메커니즘으로 나오는지 공부했다. 그걸 알아야 소리를 컨트롤할 수 있다.” 딕션 좋은 배우로 손꼽히는데도 그는 지금도 발성 레슨을 받는다. 연극연출가 박근형은 “배우의 생명은 정확한 발음과 딕션”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tvN

 

“우리나라 배우들의 기본 자질에는 발음, 발성은 포함 안되는 것 같다”는 한 네티즌의 반응처럼, 사실 기본기 없는 배우들이 주인공을 맡는 일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최근 더 못 참겠는 것은 바로 이 드라마의 후유증이다. <미스터 션샤인>의 성공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연기 구멍이 없어서 시청자를 몰입하게 한 덕도 크다. 주연인 김태리, 이병헌은 물론이고, 잠시 등장하는 ‘아무개 의병’들까지 모두 대사가 귀에 쏙쏙 박혔다. 안판석 피디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손예진이 탄 택시의 운전사까지 공들여 연극배우를 캐스팅했다. “손님, 여기 우산이요”라는 식의 단 한마디 대사였지만, 안 피디는 “모두가 주인공이고, 모든 장면은 중요하다”며 모든 배우를 허투루 캐스팅하지 않았다.

최근 끝난지도 모를 정도로 초라하게 끝난 지상파 드라마에서 ‘발연기’ 향연을 펼친 남자 배우는 회당 출연료 5000만원 넘게 받았다. 1주일에 1억 넘게 벌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연기도 엉망이었다. 그는 이 드라마가 망한 데 대해 책임감을 느낄까? 자기 연기의 부족함을 알까? 아니라고 본다. 제작진들은 제발 정신 차리고, 배우들은 제발 돈값을 해라.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