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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를 신어도 구두를 신어도, 발이 부서질 듯 아프다

"어떨 땐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대전화를 보고 있기만 해도 뭐라고 해. 여기 앉아 있지 말라고."

* 이 기사는 기자가 직접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점의 한 화장품 매장에서 일주일간 파견직 아르바이트로 근무한 후 작성한 것입니다. (관련 시리즈 보러 가기)

면세점과 백화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발을 찍은 사진들이다. 매일 구두를 신고 서서 일하다 보니 노동자들의 발 모양이 기형적으로 변했고 각종 질환을 앓게 된다. <a h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6297.html?_fr=mt1#csidx8161c55aa41063ebf7759259a1b1adb'></div></a>
면세점과 백화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발을 찍은 사진들이다. 매일 구두를 신고 서서 일하다 보니 노동자들의 발 모양이 기형적으로 변했고 각종 질환을 앓게 된다.  ⓒ전국서비스노조연맹 제공

구두를 신고 타일 바닥에 쪼그려 앉아 곤돌라(상품 진열대) 맨 아래쪽 스탁(새 상품을 넣어두는 서랍)에 쌓여 있는 재고를 20분 동안 확인하고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악~” 외마디 비명이 면세점의 건조한 공기를 갈랐다. 위쪽에 진열된 제품을 세려고 일어서려던 순간 허리가 찌릿했다. 그저께는 발바닥, 어제는 발목이 아프더니 이번엔 허리였다. 비명을 들은 선배님과 옆 매장 직원들은 대수롭지 않게 “조심하라”는 한마디를 건네고 일을 묵묵히 이어갔다. 면세점 출근 첫날, 휴게시간에 “여기서 일하면 발부터 척추를 지나 목까지 아픔이 타고 올라온다”던 선배님의 말이 이해됐다. 아픔이 발바닥에서 허리까지 오는 데 5일이 걸렸다.

언제나 바른 자세로 손님을 맞는 임직원, 하얗고 반짝이는 대리석 타일이 깔린 바닥, 비행기 탑승 직전까지 쾌적하게 쉴 수 있는 등받이 달린 깨끗한 의자들. 일주일 동안 판매직 노동자로 생활한 인천국제공항과 내부 면세점은 모든 게 이용객들에게 최적화된 화려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 공간은 그곳에서 훨씬 더 오랜 시간 머물며 노동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앉지 못하고, 편히 쉬지 못한 채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들은 그래서 많이 아팠다.

 

‘3㎝ 구두’ 신고 1시간…발바닥이 부서질 듯 아파왔다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기’ ‘허리 숙이기’ ‘발꿈치 들기’. 면세점 판매직원으로 일하며 종일 무한반복했던 동작들이다. 딱딱한 타일 바닥 위에서 구두를 신은 채 다리와 허리에 부하가 걸리며 일하다 보면, 일한 지 몇시간 만에 하체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출근하고 한시간쯤 지나면 어김없이 발바닥이 아팠다. 같은 매장 선배님에게 물려받은 ‘유니화’(유니폼처럼 일할 때 신어야 하는 신발)는 굽이 3㎝였다. 이 신발을 신고 종일 타일 바닥을 딛고 있으면 26개의 뼈로 구성됐다는 발이 온통 마비된 느낌이었다. 굽 때문에 앞쪽으로 체중이 실리다 보니 발가락뼈 마디마디가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손님이 오면 대여섯번씩 앉았다 일어나며 허리를 굽혀야 했다. 4단으로 진열된 곤돌라 진열대에 1~2단은 허리를 굽혀 물건을 집어 들어 설명해야 했고, 3~4단은 쪼그려 앉아 제품을 들어 보이며 설명해야 했다. 계산할 때도 계산대 위치에 맞춰 허리를 굽힌다. 손님이 매장을 떠나면 다시 허리 굽혀 인사하고, 또다시 쪼그려 앉아 재고가 쌓여 있는 스탁을 들여다봤다. 물건이 팔려 나간 빈자리에 새 상품을 채운 뒤에 무릎을 붙잡고 일어섰다. 손님이 올 때마다 이 과정을 반복했다.

세가지 동작은 손님이 없을 때도 반복됐다. 어떤 제품을 더 주문해야 하는지, 매장에 깔린 물건 개수와 전산에 뜨는 숫자가 맞는지 수십차례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집계했다. 돌아서면 먼지가 쌓이는 매장 구석을 청소포로 닦으려면 까치발을 들어야 했다. 발목이 욱신거렸다. 재고 체크나 청소를 하며 상품을 실수로 깨뜨리기라도 하면 직원이 물어내야 했다. 상품을 만질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한번 손이 닿았던 상품은 다시 제자리에 두면서 칼같이 줄을 맞춰야 했고, 쪼그려 앉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청소와 재고 확인이 끝나면 두 손을 앞으로 포개고 정면을 응시하며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대기자세’를 취해야 했다. 손님이 뜸해도 한시도 편하지 않았다.

아픔을 견딜 수 없는 순간, 잠깐씩 구두를 벗었다. 아무도 못 본 줄 알았는데 맨발로 서 있던 모습을 옆 매장 선배님에게 들켰다. 퇴근하면서 그는 “나도 종종 그래. 괜찮아”라며 웃었다. 면세점 판매직 4년차라는 그 선배님은 “너무 발이 아프면 계산대 뒤에 숨어서 맨발로 있는다”고 했다. “혼자서 일할 때는 종종 구두를 벗고 맨발로 재고를 체크하기도 해. 손님이나 본사 직원한테 맨발인 것을 안 들키도록 몰래몰래 잠깐씩이지만.” 그 선배님과 ‘비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된 느낌이었다.

이들의 아픔은 ‘숫자’로 입증된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보건과학) 연구팀(김승섭·최보경·김지환·윤재홍·유정훈)과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2806명을 상대로 진행한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조사(판매직 건강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판매직 노동자 대부분이 근골격계 통증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허리가 아프다’는 사람이 76.6%에 달했고, 양쪽 다리의 통증(하지통)을 호소하는 사람(82.0%)이 10명 중 8명을 넘었다. 아픈 발은 일을 마칠 때쯤 퉁퉁 붓게 마련이다. 응답자 가운데 72.2%는 ‘자신의 사이즈보다 유니화를 크게 신청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오래 견딘 고통은 질환으로 남는다. 백화점, 면세점 노동자들이 장시간 서서 일한 것이 원인으로 보이는 질환을 의료기관에서 진단받은 비율은 일반인의 20~60배에 이른다. 발바닥에 오랜 시간 체중이 실리면서 발바닥 근육이 손상되는 ‘족저근막염’을 진단받았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7.9%로 비슷한 연령대의 일반인 여성이 같은 질병을 진단받은 비율(0.5%)보다 15.8배가량 높았다. 하지정맥류를 진단받았다고 답한 백화점, 면세점 노동자는 15.3%로 일반인(0.5%)보다 25.5배 높았고, 척추측만증은 11.1%로 일반인(0.2%)보다 55.5배 높았다.

조사에 참여한 이들 72.2%가 ‘원래 사이즈보다 유니화를 크게 신청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게 어쩌면 당연한 셈이다. 함께 일했던 화장품 코너 선배님들도 그랬다. 기자가 일했던 매장의 선배님도, 등을 대고 일하는 색조화장품 매장 팀장님도, 다들 자신의 발 크기보다 5~10㎜씩 크게 유니화를 신청해서 신었다. 얼마 전까지는 ‘굽 높이’도 선택할 수 있었다고 했다. “3㎝와 5㎝ 굽, 두가지 중에 선택하라는 매장이 대부분이었어요. 근데 이렇게 종일 서서 일하는데 누가 5㎝를 선택하겠어. 다들 3㎝를 신청하니까 어느 날엔가 우리 브랜드는 아예 5㎝가 없어졌더라고.” 보호구역을 빠져나와 공항 3층 출국장 14번 출구 셔틀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선배님은 말을 이어갔다. “발 많이 아프지? 나도 너무 아파서 매일 밤 울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근데 하루하루 참고 다니다 보니 어느새 10년이더라.” 

내년에 설치될 예정인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 면세점 예정 부지의 모습. <a h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6297.html?_fr=mt1#csidx0e059b331049d2b91280ac4567622e8'></div></a>
내년에 설치될 예정인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 면세점 예정 부지의 모습.  ⓒ한겨레

얄밉게 반짝거렸던 하얀 타일 바닥 

 

유니화가 구두였던 기자는 구두가 통증의 주범인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운동화를 신고 일하는 면세점 판매직원들도 고통을 호소했다. 딱딱한 타일 바닥에 종일 서 있으면 어떤 신발을 신어도 아플 수밖에 없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될 무렵 “구두를 신어서 그런지 발부터 허리까지 너무 아프다”고 말했더니, 운동화를 신는 옆 매장 선배님이 “운동화 신으면 좀 나을 것 같아? 어차피 발이 부서질 듯 아픈 건 다 똑같아”라고 했다. ‘발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은 근처 매장의 다른 선배님도 “유니화를 신다가 도저히 안 돼서 비슷하게 생긴 굽 낮고 쿠션이 들어간 임산부용 단화를 따로 사서 신었지만 소용이 없더라”고 거들었다.

면세점 근무 둘째 날, 연이어 몰려온 손님에게 스킨 몇병을 팔고 먼지를 닦으며 청소를 하다가 휴식시간이 됐다. 생수와 ‘수정 화장’용 파우치가 들어 있는 소지품 가방을 왼손에 들고 탑승구로 향했다. 딱딱한 바닥을 한걸음 한걸음 디딜 때마다 허리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왔다. 오른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절뚝절뚝 걸음을 옮기며 매장에서 가장 가까운 탑승구로 향했다. 면세점보다 한층 아래에 있는 탑승구 앞에는 보라색 카펫이 넓게 깔려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카펫 위에 한 발을 올려놓았다. 두꺼운 이불을 밟은 것처럼 푹신했다. 발에 닿는 충격도 훨씬 덜했다.

안전보건공단이 펴낸 ‘서서 일하는 근로자를 위한 건강 가이드’를 보면, “딱딱한 바닥에 장시간 서 있거나 걷는 작업장의 경우, 바닥재를 탄성 있는 재질을 사용하거나 바닥에 양탄자나 피로예방 매트 등을 깔아 발의 피로를 줄이는 쪽으로 작업환경을 개선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면세점의 바닥은 반짝거리는 흰색 타일만 깔려 있었다.

한 대형마트 판매 노동자들이 좁은 휴게실에 누워 쉬고 있다.  <br /></div><a h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6297.html?_fr=mt1#csidxab19d1d9b5415e0b67d4c2b168cba99'></a>
한 대형마트 판매 노동자들이 좁은 휴게실에 누워 쉬고 있다.  
ⓒ전국서비스노조연맹 제공

휴게시간에는 탑승구의 메뚜기가 된다 

 

기자가 일했던 매장은 하루 8시간 근무에 식사시간을 더해 40분의 휴식시간을 보장해줬다. 기자는 보통 출근해서 5시간이 지난 뒤 공항 탑승구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쉬었다. 선배님은 쉬면서 지킬 주의사항도 친절히 알려줬다. “탑승구 쪽에서 쉴 때는 바른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해. 신발을 벗거나 다리를 뻗거나 눕거나 하면 안 돼. 공항공사 직원들이 수시로 돌거든. 어떨 땐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대전화를 보고 있기만 해도 와서 뭐라고 해. 여기 앉아 있지 말라고. 그러면서 어느 면세점 소속인지, 이름이 뭔지 다 적어 가. 그다음은 뭐, 말 안 해줘도 알겠지? 면세점 본사, 우리 브랜드 본사를 거쳐 지시사항이 쭉쭉 내려오는 거야.” ‘보는 눈’이 많은 면세점 판매직원들은 쉬는 시간에도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물론 면세점 정산소 옆쪽에 마련된 ‘상주직원 전용 쉼터’에 가면 이런 눈치를 안 봐도 된다. 하지만 선배님은 “상주직원 쉼터는 그냥 못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선배님은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여객동에는 상주직원을 위한 휴식 공간이 동쪽과 서쪽에 한곳씩 있다고 했다. 이곳에는 종일 서서 일하는 직원들이 다리를 펴고 쉴 수 있는 의자가 휴게실마다 20개씩 마련돼 있다.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기자와 같은 판매직, 환경미화, 보안과, 공항운영 등 줄잡아 수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 휴게실을 이용한다. 자리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면세점은 비행기가 많이 뜨고 내려 이용객이 폭주하는 시간대에 업무가 몰린다. 이 시간을 제외하고 휴식시간을 활용할 수밖에 없어서 의자 경쟁률은 더 높다. 적어도 공항 안에 판매직원을 위한 쉼터는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판매직 건강실태 조사’를 보면 면세점 판매직원의 58.1%가 ‘지난 한달 동안 휴게실을 이용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휴게실의 의자 수가 부족해서’(65.7%)가 가장 많았다. 그나마 있는 쉼터도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공항은 승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곳이다. 직원들을 위한 시설은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쉼터에서 쉴 수 없는 직원들도 공항 이곳저곳으로 밀려난다. 가장 많이 쉬는 곳은 탑승구(44.1%)다. 공항공사 직원들의 지적을 받으면 다른 탑승구로 이동하거나, 목이 마르지 않아도 공항 내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신다(43.4%). 이럴 여유마저 없는 사람들은 화장실로 간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여객동에서 6년째 일하는 한 판매직원은 “공항은 화장실이 넉넉한 편이다. 마땅히 쉴 공간이 없으면 쉬는 시간 20~30분 동안 변기 뚜껑을 닫아놓고 멍하니 앉아 있는다”고 했다.

선배님은 “매장에서 멀지 않은 탑승구에서 쉬어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면세점은 기본적으로 ‘1인 매장’으로 운영된다. 오픈조와 마감조가 교대하는 30분 정도를 제외하면 판매직원은 종일 혼자 일한다. 직원의 휴식시간에도 매장은 운영된다는 뜻이다. 판매직원들은 돌아가며 ‘품앗이’로 서로의 휴식시간을 지켜준다. “옆 매장 직원이 봐주기는 해도 우리 브랜드에 어떤 할인 행사가 있는지 자세히 모르니까. 복잡한 계산을 하는 손님이 오면 전화 받고 다시 매장으로 가야 하거든. 쉬러 가기 전에 옆 매장 직원한테 기본적인 내용은 알려주고,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너무 멀리 가지는 마요.” 휴게실은 너무 멀었고, 휴식시간은 짧았으며, 몰려드는 손님은 직원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전국서비스산업노조연맹 관계자들이 앉을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a h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6297.html?_fr=mt1#csidx28a93e5e1a8a1458daefa74da923332'></div></a>
전국서비스산업노조연맹 관계자들이 앉을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서비스 노동자 의자 앉기 10년’, 그런데 여전히 

 

그래서 직원을 위한 ‘의자’가 절실했다. 발이 아파 견딜 수 없는데 종일 서 있으려면 잠시 앉아 업무를 볼 수 있는 의자가 있어야 했다. 대형마트 계산원 등 서비스 노동자들은 10년 전 ‘의자에 앉아 일하기’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고용노동부는 2008년 대형마트에 의자를 두도록 했고, 2011년 ‘휴게시설과 의자 설치 의무화’를 규정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만들었다. 하지만 판매직원들은 여전히 대부분 서서 일한다.

기자가 일주일 동안 일했던 면세점 매장에는 다행히 직원을 위한 의자가 있었다. 선배님은 “노조가 오랫동안 싸워서 얻어낸 의자”라며 “노조가 없거나 본사가 움직이지 않는 브랜드들은 여전히 의자가 없다”고 설명했다. 같은 면세점 화장품 코너에 어떤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지 익히고자 매장 전체를 한바퀴 돌면서 관찰했다. 어림잡아 70~80개 브랜드가 들어차 있는 화장품 코너에서 의자가 있는 곳은 절반에도 한참 못 미쳤다. 종일 마주 보고 일했던 기초화장품 브랜드 ㄹ사 매장에도 의자가 없었다. 업무시간 내내 서 있어야 하는 이 매장 직원들은 다리가 아프면 잠깐씩 계산대 뒤에 쪼그려 앉았다.

의자가 배치된 매장이라고 마음 편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앉아서도 항상 ‘대기자세’를 취해야 했다. “의자가 배치된 게 한달밖에 안 돼서 어떤 대기자세로 앉아야 하는지 아직 지시사항은 없어요. 일종의 사각지대가 생겼지. 근데 아마 허리 세우고 앉아야 할 거고, 고개 숙이고 휴대전화를 보는 건 안 될 거야. 물 마시는 것도 안 되고.” 매장에 있는 등받이 없는 검은색 접이식 의자를 가리키며 선배님이 설명했다. “그래도 우리는 혼자 근무하니까 손님 없을 때 앉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두세명씩 같이 근무하는 명품 부티크 매장(개별 브랜드가 단독으로 별도 공간을 가지고 있는 매장)은 의자가 하나뿐이라 제일 선임만 앉을 수 있어.” 이런 경우는 보통 팀장이 계산대 앞 의자에 앉아 서류 작업을 하는 동안 나머지 직원들은 매장 문 앞에 서서 ‘대기자세’를 취한다.

의자 사용에는 옆 매장과 관계된 규칙도 있었다. 옆 매장 직원이 자리를 비울 때는 의자에 앉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선배님은 “이 규칙은 옆 매장이랑 우리 매장이랑 둘이 지키는 규칙”이라고 했다. 면세점에 입점한 매장은 ‘1인 매장’으로 운영되는 게 대부분이다. 누군가 화장실에 가거나 밥을 먹으러 가려면 가까운 매장끼리 서로 손님을 봐준다. 상품이 진열된 곤돌라의 높이는 130㎝. 의자에 앉아 있으면 옆 매장에 손님이 오는지 알 수 없어서다. “서로의 매장을 봐주는 조건으로 쉬는 거니까. 옆 매장이 비어 있을 땐 앉으면 안 되겠지?” 선배님의 설명은 씁쓸하고도 명쾌했다.

 

운동화에 안경 쓰고 곯아떨어져…셔틀버스는 ‘무장해제’의 공간 

 

지난 3일 저녁 마감조(C조) 근무 다음날 아침 오픈조(A조)로 일하는 시에이(CA) 근무를 마치고 인천공항에서 오후 4시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탔다. 정류장에서 4시 셔틀을 기다리던 면세점 직원들은 대부분 기자와 같은 ‘오픈조’ 근무자들이었다. 이들의 차림새는 공항 안과 크게 달랐다. 신발은 단화나 구두가 아닌 운동화가 대다수였고, 면세점 안에서 착용이 금지됐던 안경을 쓴 사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기 전부터 가장 아프고 불편한 것들을 던져버린 것이다.

‘판매직 건강실태 조사’를 보면 오픈조(A조) 근무일 때 평균 수면시간이 2~3시간이라고 답한 비율은 20.9%였고, 41.9%는 수면시간이 평균 4시간 이하라고 답했다. 이런 스케줄을 3~4일마다 반복하는 면세점 판매직원들은 45인승 셔틀버스가 출발하자마자 깊이 잠들었다. 한시간이 지난 뒤 셔틀버스가 신도림역에 도착하자 이들은 각자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축 처진 어깨로 지하철에 오른 이들을 다음날 아침 출근용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쳤다. 나도 그들도 아직은 잠에서 덜 깬 듯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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