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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차별 논란이 가린 현실

  • 권김현영
  • 입력 2018.10.17 14:09
  • 수정 2018.10.17 14:10
ⓒPavel1964 via Getty Images
ⓒhuffpost

2018년 서울시는 14개 시립청소년수련관 부설 수영장에서 운영하던 여성전용 수영반을 폐지하기로 했다. 역차별이라는 민원에 따라 양성평등 취지를 살리겠다는 설명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여성전용 정책이 역차별이라는 주장이 나온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2008년 경기도 일부 시외버스에서는 여성전용 좌석을 운영했지만 역차별이라는 민원으로 없어졌고, 2011년 일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여성전용 흡연구역을 설치했다가 유야무야된 바 있다. 2009년부터 서울시에 도입되어 전국으로 확산된 여성우선 주차장도 역차별 논란의 단골 소재다. 부산 지하철에서는 2016년 9월 출퇴근 시간에 특정 칸을 여성전용으로 운영하겠다고 했으나 시행 직후부터 역차별 논란이 있었다.

이들 정책은 역차별일까? 역차별의 개념 정의부터 살펴보자. 역차별이란 연령, 인종, 젠더 등에 있어서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라고 간주되는 다수 그룹에 속했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역차별이 성립하려면 선행조건으로 차별이 금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는 차별을 금지할 수 있는 법·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역차별을 주장하려면 차별금지 정책으로 개인이 구체적인 손해를 입어야 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차별금지법이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산발적인 차별금지 정책은 대부분 유명무실하다.

일부 고속도로 휴게소에 설치되었던 여성전용 흡연구역은 오히려 이목이 집중될 것을 저어한 여성 흡연자들이 이용하지 않아서 없어졌고, 지하철 여성전용칸 역시 운영상 어려움으로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여성우선 주차장에 남성 운전자가 주차한다고 해서 제재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즉, 차별금지법이 없는 상황에서 개인에게 구체적인 손해가 발생할 정도의 강제성 있는 차별금지 정책은 사실상 대단히 존재하기 어렵다. 차별을 금지하는 법조차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인데도, 역차별 담론은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 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대한 이해를 불가능하게 하고 정치적 상상력을 닫아버린다.

하지만 해당 정책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성차별은 이미 사라졌다는 단언과 함께 역차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법·제도적 기반 없이 급조된 여성전용 혹은 여성친화를 내세운 정책들은 역차별을 발생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성차별을 강화한다. 고정관념과 편견에 기반하거나 성별분업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현상 중심의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만들어진 정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여성우선 주차장의 도입 취지는 여성 운전자의 운전 미숙, 주차장 안전문제 등 더 넉넉한 주차공간의 필요 등이었다. 여성 운전자의 운전 실력에 대한 편견을 가중했다는 점에서도, 주차장의 안전관리와 시설개선 전반에 대한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도 성평등 정책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정책 입안자와 담당자들은 역차별 담론 자체가 성차별 문제를 가릴 수 있다는 점을 사려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일례로 역차별이라는 민원에 대해 별다른 논평 없이 전격 수용한 서울시와는 달리 인권조례가 있는 수원시의 접근방식은 달랐다.

수원시 시민인권보호관은 여성주부반 운영은 성평등 정책이나 여성친화 정책의 일환이 아니라 수영장 쪽의 영업이익 추구가 목적이었다는 점을 짚고, 해당 시간대의 남성 전업주부 비율이 점차 높아지는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점은 오히려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요지의 결정문을 냈다. 결과는 동일하다 해도 과정이 달라지면 공론장의 수준이 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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