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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7일 10시 5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0월 17일 10시 51분 KST

‘영업이익’과 ‘재산권’이 교육을 대신할 때

뉴스1
huffpost
박용진 더불어민주당의원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 (사립 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토론회 개최를 반대하는 사립유치원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한국은 유치원과 사립대학의 천국이다. 7억원 정부 지원금으로 명품을 사재기한 유치원 원장에 대한 학부모들의 원성이 높지만, 사실 학생 등록금 수십, 수백억원을 빼돌려온 여러 사학 재단의 비리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이는 한국 정도의 발전 수준을 가진 나라, 특히 한국과 비슷한 교육열을 가진 일본이나 대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명색이 교육기관이 이렇게 부정과 비리의 대명사가 되어도 고쳐지기는커녕 정부수립 후 70년 동안 반복되어온 나라는 아마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의 세금은 언제나 줄줄 새왔고, 해당 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의 분노는 언제나 순간의 메아리로 남았다. 감사 기관이나 교육부의 감독 부실 등을 질타하는 등 언론의 호들갑은 비리의 주범이 구속되거나 잠시 물러나는 것으로 끝났다.

왜 그런가? 한국의 사립유치원과 사립대학은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이다. 이들은 여야 정치권, 교육 관료, 언론, 종교계와 긴밀히 얽혀 있다. 그래서 선출직 국회의원들이나 시·도 교육감, 지자체장들도 이들의 비리를 건드리기를 꺼린다. 근원적으로는 사립학교법상 이들 사립 유치원과 대학은 공공성을 갖게 되어 있지만 영업이익을 추구하는 영리기관의 성격도 갖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유아교육과 대학교육의 80% 이상을 이들 영리기관이 담당하고 있어서 사립 위주의 교육체제를 유지하는 미국보다도 높다.

그런데 많은 국가예산이 지출되지만 행정적 감시나 비리에 대한 법적 처벌은 미국보다 훨씬 경미하니, 이들 기관의 비리는 그냥 허용된 것이나 다름없다. 법원은 분쟁이 일어나도 대체로 사학의 영업이익과 재산권을 지키는 쪽으로 판결을 내렸고, ‘종전 이사’라는 해괴한 개념까지 동원하여 족벌 재단을 옹호해왔다. 역대 정부와 정치권이 이를 알고도 방치한 이유는 이들의 로비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육과 학문의 백년대계, 즉 교육의 내용, 가치와 철학을 정립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출세 지향의 교육열에는 세계 최고인 한국 학부모들은 공민의 육성으로서 교육에 대한 관심은 자식 사랑의 10% 정도도 안 된다.

자율성과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사학은 분명히 존립할 필요가 있다. 민족사학의 정신을 가진 일제 강점기나 해방 후 일부 사학은 권력의 통제에 맞서면서 나름대로의 교육 철학을 실천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해방 후, 특히 군사독재와 자본주의 질서가 정착된 이후에 그런 사학은 거의 사라졌고, 사학은 반민주, 부패, 반사회성의 아이콘이 되었다. 한국에 입시학원이 아닌 ‘자율형’ 사립고가 있던가? 나름대로의 학풍과 철학이 있는 사립대학이 있나?

매년 2조원의 세금이 사립유치원에, 그리고 5조원의 세금이 사립대학에 투여된다고 한다. 이 돈이면 아마 수천개의 공립유치원을 짓거나 운영할 수 있을 것이고, 공립대학 수십개를 짓고 경제와 사회의 미래를 개척하는 기초과학자와 인문사회과학자 수천명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된다.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국공립 유치원 확대를 결사 저지하고, 정치가와 경제 관료들은 왜 대학과 학문의 공공성이 중요한지 알지 못한다.

유치원과 대학은 교육의 입구이자 출구다. 즉 그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논리와 정신이 아이들의 신선한 피와 처음 접촉하는 극히 중요한 현장이며, 대학은 청년들이 자신의 지식을 사회에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해야 할 극히 중요한 현장이다. 그런데 이 교육의 입구와 출구를 ‘영리’ 논리가 틀어막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한국의 아이들과 대학생들은 사회에서 시민, 공인, 직업인, 엘리트로 살아가는 기본 덕목과 정신을 익힐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사회인이 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 엘리트들의 일그러진 모습은 여기서 생겨났다.

신임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어디서 어디로 가겠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기존 교육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출세, 성공을 위한 사적 이익이 압도하는 교육, 가족과 국가가 막대한 예산을 지출하고도 정작 국가나 사회에 공적 책임의식을 갖는 사람, 진정으로 창의적이고 자율적 인간을 양성하지 못하는 교육이 그것이다.

유치원과 대학의 적어도 50%는 공립이 되어야 한다. 학부모와 법인의 사익을 충족시키는 반교육적인 기관들을 시민이 통제하는 공공 교육기관으로 전환하는 법,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세계 어느 나라도 교육의 입구와 출구를 영리기관이 담당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교육 선진국은 모두 공교육 선진국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