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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7일 16시 32분 KST

문재인 정부의 '가짜뉴스' 대처법은 박근혜 정부와 닮았다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2014년&2018년)

뉴스1

2014년 9월 검찰이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사범 엄정 대응’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대통령에 대한 허위사실유포가 너무 심각하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에 따른 조치였다. 검찰은 “개별피해자들의 권리구제 요청에 응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라고 말했다.

 

2014년 vs 2018년

2014년 검찰이 밝힌 ‘선제적 대응’은 이런 것이었다. 

△주요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시 감시

△서울중앙지검에 전담팀 설치

△허위사실 유포사범 정식 재판 회부

△최초 유포자뿐 아니라 확산·전달자까지 모두 엄벌

△고소·고발 없어도 인지 수사 착수

당시 검찰이 주최한 유관기관 대책회의에 카카오톡이 참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카카오톡이 상시 감시된다‘는 인식이 퍼졌고, ‘텔레그램’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4년이 지난 2018년 10월16일,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가 ‘알 권리 교란 허위조작정보 엄정 대처’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여러 내용이 있었지만 핵심은 법무부 장관이 ‘가짜 뉴스’로 불리는 허위 조작 정보 사건에 대해 고소·고발 이전이라도 수사에 착수하는 등 엄정하게 대처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는 내용이었다.

 

명예훼손죄 인지수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건 (적어도 한국에서는) 범죄다. 그러니 수사기관이 수사하는 것 자체를 뭐라 할 순 없다. 문제는 수사기관의 인지 수사다.

명예훼손이 범죄가 되려면,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있어야 한다. 피해자의 주장만으로 죄가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주장이 존재해야 한다. 즉, 고소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제3자가 ‘내가 보기에 저건 특정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겠는데?’라고 주장(고발)해도 수사를 한다. 

고소만으로 수사를 한다해도 남발이 우려되는데, 고발까지 허용하면 말그대로 ‘마음에 안드는 사람은 누구나’ 수사로 괴롭힐 수 있다. 이때문에 명예훼손죄를 친고죄(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온다. (*이 점에 대해서는 홍성수 교수의 페이스북 글을 참고하면 좋다.)

고발만으로 수사에 착수하는 것도 없애자고 하는 마당에, 수사기관이 자체 판단(인지)만으로 수사에 착수한다면?

수사 기관이 엄정한 잣대로 수사 착수 여부를 결정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반론도 있다. 법무부가 16일 보도자료에서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기준을 밝혔는데, 이게 아마 ‘엄정한 잣대’일 것이다.

허위조작정보는 객관적 ‘사실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허위의 사실을 의미하고, 객관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의견’ 표명이나 실수에 의한 ‘오보‘, 근거 있는 ‘의혹’ 제기 등은 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표현의 자유와 상치되지 아니하며 오히려 허위조작정보는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임.(법무부 보도자료, 2018년 10월16일)

수사를 해도 밝히기 쉽지 않은 ‘의도’를 어떻게 판단해 수사 착수의 근거로 삼겠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수사대상을 선정하게 될 우려가 있다. 정부 차원에서 명예훼손죄 인지수사를 독려하면 최악의 경우 이런 일이 벌어진다.

서울 마포구 구수동에서 가구공방을 운영하는 황아무개(44)씨는 2014년 11월14일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 포스터를 출력해 자신의 공방 창문에 붙여놓았다가 경찰 10여명의 방문을 받았다. 포스터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그 밑에 ‘독재자의 딸’이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다. 또다른 포스터에는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이대로는 못살겠다!”는 문구가 들어있다.

(중략)

경찰은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포스터를 뗄 것을 요구했다. “뭐가 사실이 아니냐”고 황씨가 재차 따져묻자, 경찰은 “‘독재자의 딸’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된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근거를 대라”고 말했다고 황씨는 전했다. (한겨레, 2015년 11월29일)

 

명예훼손죄 비범죄화

이런 우려 때문에 명예훼손죄를 비범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개인 간 다툼의 성격이 강하므로 민사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옳다는 주장이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미국은 연방법 상 명예훼손 처벌 조항이 없다. 매사추세츠주, 미네소타주, 몬태나주, 뉴햄프셔주 4개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명예훼손죄가 폐지된 상태다. 명예훼손죄를 처벌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러시아, 이탈리아, 터키, 몽골, 케냐, 미얀마, 태국, 인도네시아 등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이 대부분이다. 가나와 스리랑카, 멕시코, 그루지야 등은 2000년대 초반 명예훼손죄를 완전 폐지했다. 2015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우리나라에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했다.

박선영 변호사는 지난해 법률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과 미국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의 명예훼손(Defamation) 소송은 아주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형사사건이 되기 어렵다. 명예를 훼손당한 사람이 완전 유명인이거나 훼손에 관련된 행동이 개인을 넘어 대중을 상대로 한 공적인 의미가 없다면 검사실에서는 눈하나 꿈쩍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검사는 상당한 근거에 의해 범법적 사실이 있다고 판단될 때만 움직이고, 명예훼손으로 민원을 넣는다고 해서 반드시 사건을 조사해야 할 의무는 없다.” (법률신문, 2017년 2월20일)

 

한겨레

 

‘미네르바법’은 위헌이었다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인지수사하겠다는 태도는 2010년 위헌결정으로 사라진 이른바 ‘미네르바법’을 사실상 부활시키는 행위라는 비판도 나온다.

미네르바법은 ‘공익을 해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를 이용해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옛 전기통신법 47조1항이다. 인터넷 논객 박대성씨는 온라인에서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하다가 이 조항에 걸려 기소됐으나 헌법소원을 낸 끝에 위헌 결정을 받았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공익’의 의미가 불명확하고 추상적이어서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명확성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위헌 결정 이후 인터넷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처벌 근거가 모호해지자 검찰은 허위사실에 언급된 당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죄를 적용하는 쪽으로 논리를 바꿨다. 그 흐름이 2018년 문재인 정부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든 정보는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검증받는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이 시장에 정부가 ‘심판자’를 자처하며 뛰어들어도 될까.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중앙일보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봐도 어떤 잘못된 주장이 나왔을 때 그에 대한 반박과 재반박이 이뤄지면서 사실이 확립돼 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막아놓은 것과 그런 논박이 자유롭게 오가는 것 중에 어떤 게 민주주의를 위해 이로운 것인지 판단해 보라.” (중앙일보, 2018년 10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