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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천천히 성장해온 인도네시아의 도시가 쓰나미로 인해 한 세대 전으로 되돌아갔다

  • 김도훈
  • 입력 2018.10.16 10:32
  • 수정 2018.10.16 10:36

나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중부의 팔루라는 도시를 38년 동안 찾아가며 인류학 현장 연구를 해왔다.

그래서 9월 28일에 진도 7.7의 지진과 쓰나미가 팔루를 휩쓸었다는 뉴스는 내게 정말 끔찍하게 다가왔다.

ⓒMOHD RASFAN

참사의 규모가 정확히 파악된 것은 아니지만, 집을 잃거나, 죽거나 실종된 사람 수만 해도 수천 명이다.

이 지역의 중심 도시인 팔루의 재건에 여러 해가 걸릴 것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외부의 눈에 가장 잘 띄는 것은 팔루의 피해겠지만, 가장 고통받게 되는 곳은 이 지역의 시골들일 것이다.

 

술라웨시의 허브

1만 30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2억 6300만 명이다. 34개 주에 300개 이상의 민족이 살고 있다.

한때 셀레베스라고 불렸던 술라웨시 섬은 미국 플로리다 주 정도의 크기다. 여섯 주로 나뉘어 있으며 1800만 명이 살고 있다.

여러 방향으로 가느다란 다리를 뻗고 있는 거미처럼 생긴 술라웨시 섬의 독특한 모양 때문에 섬에는 방문하기 힘든 지역들이 여럿 있으며, 고립된 곳도 많다.

1980년에 내가 처음으로 갔을 때 팔루는 인구 3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였다. 주민들의 집 주위엔 흰 말뚝 울타리가 서있었고, 중심가에는 식민지 시절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팔루만의 물은 어른거리는 에메랄드 빛이었다. U자 모양의 가파른 산이 팔루를 둘러쌌다.

정말 아름다웠다.

연구 지역을 찾다보니 이 지역에서 포장 도로, 수도, 전기를 갖춘 도시는 팔루를 비롯한 몇 곳뿐이라는 걸 곧 알 수 있었다. 개발 대부분은 연방 정부가 팔루를 1978년에 새로 생긴 센트럴 술라웨시 주의 행정 센터로 지정한 뒤에 이루어졌다. 연방 정부는 세계은행 대출금으로 길을 닦고 정부 청사를 짓고, 전기와 통신망을 넓혀갔다.

나는 센트럴 술라웨시의 32개 민족 중 라우제족을 연구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라우제족은 팔루에서 차로 7시간 거리인 티놈보 지역의 깊은 산속에서 대나무로 집을 짜놓고 살았다. 그뒤로 2년 동안 나는 대나무 집에서 살며 라우제족의 언어를 공부하고 현장 연구를 진행했다.

당시 나는 ‘현대적인’ 팔루에 서너 번 다녀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때부터도 팔루는 이 지역 내 외딴 마을들의 일상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팔루 행정가들은 병원과 학교를 세울 위치, 자금과 인력 운영을 결정했다. 또한 해안가의 엘리트들이 수익성 좋은 흑단, 대나무, 정향, 커피, 초콜릿을 고지대의 농부들로부터 날라오는데 쓰는 중요한 길과 다리를 만들고 관리했다.

 

꾸준했지만 취약했던 성장

여러 해에 걸쳐 나는 팔루의 성장을 지켜보았다. 작고 조용한, 서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 행정수도였던 팔루는 2016년에는 37만 5000명이 사는 붐비는 도시가 되었다.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들어섰고, 교통 정체가 생겼고, 록 콘서트가 열리고 쇼핑몰도 생겼다.

센트럴 술라웨시의 수도 팔루는 팔루 주민 뿐 아니라 지역 전체에 걸쳐 기능한다.

시골에 사는 중산층들은 자녀들을 팔루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시킨다. 컴퓨터, 자동차를 살 때면 팔루에 간다. 위중한 의료 시술도 팔루에서 받는다. 먼 지역의 공무원들은 팔루로 와서 워크숍에 참가하고, 정부 보고서를 제출하고, 지역 프로젝트 자금을 요청한다.

31년에 걸친 수하르토 전 대통령 집권 동안 팔루가 번영하긴 했지만, 라우제족을 비롯한 이 지역 다른 민족들은 자급 농업에 기대 빈곤한 삶을 살았다.

1998년에 수하르토 대통령이 물러나고 민주주의 정부가 정권을 잡자 변화가 일어났다.

수십 년에 걸쳐 수하르토 가문은 커피, 정향, 초콜릿 등 수익 작물의 가격을 불공정하게 통제하며, 정부가 강요한 비용과 수수료를 자신들이 챙겼다.

비용과 가격이 보다 공정해지자, 농부들은 노동을 통해 더 높은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자녀들을 중학교, 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한 교과서와 교복 비용을 댈 수 있게 되었다.

연방 자원이 보다 공평하게 배분되자, 시골 지역에 새로 학교와 병원이 생겼다. 팔루 정부는 강을 지나가는 오토바이 길을 만들어서, 농부들이 작물을 시장에 가져오기 보다 쉽게 만들었다.

2017년에 센트럴 술라웨시의 경제 성장률은 7.14%였다. 대부분은 팔루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다른 지역들도 서서히 빈곤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SOPA Images via Getty Images

삶이 멈추다

이러한 위태위태한 경제 성장이 이제 완전히 뒤집혔다. 이 지역의 인프라는 폐허가 되었다.

“팔루의 공기에서는 썩은 시체 냄새가 난다. 건강에 좋지 않고, 여진이 아직도 느껴지고, 어디에서나 약탈이 일어난다.” 최근 내 친구가 페이스북을 통해 전했다.

팔루의 관료, 사업가, 교사들이 대피한 지금, 이 지역 정부가 어떻게 기능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도시 사람들의 삶만 멈춘 게 아니다. 이 지역 전체의 모든 것이 얼어붙은 듯하다.

센트럴 술라웨시 여러 지역에 있는 내 친구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병에 든 생수는 귀하지만 아직도 지진의 잔해로 뿌옇게 흐려진 강물을 끓여마시기는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조산사, 약사, 의료기사를 양성하는 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자녀를 보낸 시골 가족들이 많다. 학교가 문을 닫았거나 파괴된 지금, 그 학교 학생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의사나 조산사가 전부 팔루로 가버린 외딴 지역의 임신부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예전에는 팔루 항을 통해 들어온 물자를 트럭으로 센트럴 술라웨시 산악 지방에 나르곤 했다. 그건 어떻게 될 것인가?

자연 재해 이후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시골의 빈곤층인 경우가 많다.

센트럴 술라웨시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 같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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