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8년 10월 15일 18시 36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0월 15일 19시 56분 KST

젊은 개혁가? 잔혹한 독재자?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의 두 얼굴

굳이 계기를 찾자면, 그건 단 하나의 트윗이었다.

8월5일, 주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 대사관 공식 트위터 계정에 짧은 글 하나가 올라왔다.

″캐나다는 (여성인권운동가) 사마르 바다위를 비롯한 사우디 시민사회 활동가와 여성운동가들의 추가 체포에 깊이 우려한다. 우리는 사우디 당국이 즉각 그들을 석방하고 평화적 활동가들을 보호할 것을 촉구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이를 ‘내정 간섭’으로 규정하며 발끈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사우디는 곧바로 국교 단절 수준의 보복조치를 단행했다.

불과 며칠 만에 사우디는 캐나다 대사를 추방시켰고, 캐나다에 머물던 자국 대사를 귀국시켰다. 캐나다와의 투자 및 무역 거래를 동결했고, 학술 교류를 전면 중단했다. 캐나다에 머물고 있는 사우디 유학생 전원을 철수시켰으며, 국영 항공사는 캐나다로 가는 항공편 운항을 중단해버렸다.  

ASSOCIATED PRESS

 

″심지어 정중하고 세련되게 ‘아니오’라고 말하려 했던 사람들조차 대가를 치렀다.” 14일 영국 가디언 주말판 신문 옵서버(The Observer)가 전한 한 사우디 소식통의 말이다. 이 신문은 ”중세시대”나 다름 없는 전제왕정 권력을 쥐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MBS) 사우디 왕세자가 자신에 대한 손톱 만큼의 비판도 용납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고 소개했다.

″학문적으로 성공했고, 참을성 없는, 하루에 18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는 워커홀릭으로 알려진 그는 자신의 지성과 (왕위 계승 경쟁을 뚫고) 자신을 권력에 이르게 해준 판단력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건 국제적 외교문제로까지 번진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쇼기 실종 사태를 이해하는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사우디 엘리트 출신인 카쇼기는 미국으로 ‘자발적 망명’을 떠난 이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면서 빈 살만 왕세자의 외교 정책과 폭압정치를 비판해왔다. 

카쇼기는 10월2일 결혼 관련 서류 때문에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갔다. 바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약혼자는 물론, 그 이후로 그를 본 사람은 없다. 그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은 있는데, 나온 장면은 없다.

터키 정부는 그가 총영사관 안에서 살해됐다고 밝혔다. 빈 살만 왕세자가 그의 납치를 지시했다는 미국 정보기관 도청 자료를 인용한 보도가 나왔고, ‘작전’을 위해 15명의 사우디 군사 요원들이 사건을 전후해 터키에 입국했다가 출국한 사실도 드러났다. 사우디 정부는 모든 의혹을 부인하는 중이다.

JIM WATSON via Getty Images

 

모두의 예상을 깨고 왕위 계승자로 낙점된 빈 살만 왕세자는 ‘젊은 개혁가’ 이미지를 전 세계에 퍼뜨렸다. 왕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운전 금지를 해제했고, ‘온건 이슬람’으로의 개혁을 천명했으며, 엄청난 규모의 미래도시 건설로 대표되는 경제 개혁·개방을 약속했다.

물론 논란이 없었던 건 아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유례없는 규모의 숙청을 단행했고, 여성인권운동가들에게는 사형이 구형됐으며, 이란과의 갈등고조됐다

이런 와중에 느닷없이 터진 카쇼기 기자 살해 의혹 사건은 사우디 경제에도 타격을 입히고 있다. 전제 왕정국가라는 사우디의 면모가 새삼 부각된 탓이다. 대규모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이를 안정적인 경제 개발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는 합리적 법체계 같은 ‘정상국가’의 요소가 필수적이다. 

ASSOCIATED PRESS

 

그러나 빈 살만 왕세자에게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글로벌 마인드’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아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옵서버에 따르면, ”유명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며” 최소 몇 년은 해외에서 머무는 동안 사우디와는 ”완전히 다른 정치적, 사회적 시스템”에 노출됐던 대다수의 사우디 엘리트 및 왕자들과는 달리, 빈 살만 왕세자는 줄곧 사우디에 머물렀다. 

2016년 초, 아직 왕위 계승이 공식화되기 전이었던 빈 살만의 요청으로 리야드를 방문해 그를 만났다는 한 영국 정부 관계자는 그가 ”자국에서 자신이 가진 전제 권력이 해외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란 것처럼 보인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국내 중동전문가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15일 조선일보 칼럼에서 ”비판 세력을 단호히 제거함으로써 왕국 내 공포정치를 실현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국제사회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라며 ”왕세자가 지시했다면 최악의 폭군인 셈이고, 몰랐다면 무능함을 방증한다”고 지적했다.   

1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막의 투자 허브가 되겠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꿈이 흔들리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이번 사건 이후 미국 기업 고위 임원들 사이에서 사우디와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보도했다. 

개방적이고, 조금은 더 자유로우며, 석유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번영하는 ‘새로운 사우디아라비아’를 이끌 지도자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빈 살만 왕세자는 과연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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