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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1일 15시 40분 KST

그럼에도 넷플릭스가 두려운 이유

다른 콘텐츠 기업들은 불쾌함을 피하느라 도를 넘었다.

sd619 via Getty Images

나는 넷플릭스의 팬이다. 내가 작년에 좋아했던 드라마와 영화들 상당수는 넷플릭스 작품이었다. 나는 넷플릭스 서비스 사용이 직관적이고 디자인은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넷플릭스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나는 걱정스러운 경향을 알아차렸다. 거의 누구도 넷플릭스를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

전세계 유료 사용자 1억 명을 보유하고 있고 주가는 300달러를 훌쩍 넘기는 기업이 주류에서 비판을 거의 전혀 받고 있지 않다. 물론 나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은 넷플릭스가 습관처럼 간간이 형편없는 영화를 낸다고 가끔씩 불평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친구에 대한 장난스러운 말일 뿐이다.

어떤 비판도 오래가지 않는다. 논란이 일어날 때도 우리가 전부 넷플릭스를 끊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넷플릭스는 전세계의 일상적 습관이 되었다. 사용자들이 시청하는 분량은 하루에 1억 4천만 시간 정도이다. 우리는 넷플릭스를 계속 볼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넷플릭스가 우리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바뀌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그래서 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 기업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잃게 된 몇 가지 이유를 밝혀보고자 한다.

올해 넷플릭스의 공동창업자이자 사장이며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한 발언을 듣고 나는 이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는 굉장한 인기를 얻고 성공을 거두었다. 논란적이다. 하지만 그걸 반드시 봐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헤이스팅스가 주주들과의 만남에서 한 말이었다.

이 말은 넷플릭스의 정신으로 보이며, 내 우려가 커지는 원인을 잘 요약해 주었다. 문제가 있는 선택을 한다 해도 인기가 있다면(넷플릭스에 돈을 벌어다 준다면) 강행하겠다는 의미다.

쉽게 외부의 영향을 받는 십대 시청자들을 겨냥한 ‘루머의 루머의 루머’(자살과 고등학교에서의 폭력적 행동을 미화한다), ‘채울 수 없는’(Insatiable)(비만인 비하 및 모욕적인 스테레오타입들이 등장한다)들로 인해 넷플릭스를 강하게 비판한 부모와 문화 비평가들이 있었다. 넷플릭스에 대한 강한 비판은 이제까지 이게 전부였다. 이 드라마들은 강한 비난을 받았지만 시청자를 엄청나게 끌어들였고, 넷플릭스는 새 시즌을 냈고, 뉴스들은 다시 넷플릭스 칭찬 일색으로 돌아섰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 같은 드라마 때문에 자살이 증가했다는 걸 증명하기란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널리 보도된 2017년의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두려움은 근거가 없지 않다. 넷플릭스는 ‘루머의 루머의 루머’ 에피소드에 논란이 될 수 있는 콘텐츠라는 경고를 뒤늦게 더 많이 넣었다. 하지만 지금도 예전처럼 시청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런 드라마들, 이른바 ‘오리지널’들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넷플릭스는 광고를 피하기 힘들게 만든다. ‘채울 수 없는’의 트레일러 자동 재생이 특히 짜증났고 도망가기 힘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반드시 봐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은 솔직하지 못하다. 헤이스팅스의 주장과는 반대로, 넷플릭스는 보게 만들기 위한 정교한 메커니즘을 개발했다. 자동 재생 트레일러의 경우 억지로 보게 만드는 거나 마찬가지다.

최근 몇 년 동안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이 소유한 유튜브 등의 거대 테크 기업들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왔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보통은 이 기업들이 문제가 있는 콘텐츠를 올리고, 알고리즘을 통해 사상 유례가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밀어붙인다는 두려움이다.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넷플릭스의 모델과 규모도 이와 비슷하다.

페이스북이 뉴스 비즈니스에 진입했고 언론의 도덕과 기준에 기반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우리가 믿는다면, 넷플릭스에 대해서도 같은 식으로 볼 필요가 있다.

다른 플랫폼들과는 달리 개인 사용자들이 소위 가짜 뉴스나 문제 있는 콘텐츠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해서 넷플릭스가 ‘가짜 뉴스’로 간주될 수 있는 콘텐츠나 문제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넷플릭스가 매달 추가하는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다큐 시리즈들을 보라. 철저한 팩트 체크를 통과하지 못할, 수상쩍은 주장을 하는 것들이 많다. (넷플릭스는 제작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작품들에도 오리지널이라는 딱지를 붙여, 수상쩍은 저널리즘 작품들에 승인과 소유의 도장을 찍는다.)

작년에 더 링어는 넷플릭스와 경쟁사들의 여러 음모론 다큐멘터리들을 살폈다. 9/11이 미국 정부의 내부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작품들도 여럿 있었다. (그 이후 넷플릭스는 가장 우려스러운 작품들은 제거했다.) 올해 슬레이트는 넷플릭스가 올린 그보다는 덜 노골적인 음모론들을 살피는 후속 기사를 냈다. 외계인과 피라미드가 나오는 작품들, 세계를 지배하는 강력한 컬트 세력에 대한 것들이었다. 이 다큐멘터리 중 상당수는 지금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이 두 비평에서 넷플릭스가 해당 콘텐츠들을 전부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은 하지 않았다. 문제는 알고리즘, 마케팅, 분류에 있다. 그리고 공정하게 말해서, 넷플릭스는 정말 훌륭한 다큐멘터리들도 낸다. 러시아 스포츠의 도핑 프로그램에 대한 ‘이카루스’가 그 예로, 아카데미 최고 다큐멘터리 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겉보기엔 무해해 보이는 다큐멘터리 섹션에서 ‘이카루스’ 같은 작품들 바로 옆에 있는 음모론을 주장하는 다큐멘터리를 어쩌다 보게 되기 십상이다. 넷플릭스는 눈을 끄는 사진과 자동 재생 트레일러로 별 내용도 없는 이런 다큐멘터리들을 보라고 꼬드긴다.

클릭하게 되면 넷플릭스는 다른 비슷한 작품들을 추천하기 시작한다. 곧 당신의 홈페이지는 음모론 헛소리로 가득차게 되고, 넷플릭스가 컨텐츠를 마케팅하는 방식 때문에 이 모든 작품들이 다 그럴싸해 보인다.

넷플릭스의 비즈니스 모델에 녹아있는 더 교묘하게 위험한 콘텐츠를 피하는 것은 더 어렵다. 다큐멘터리들을 쉴새 없이 올리다 보니, 넷플릭스는 아마 의도는 좋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신빙성이 없다고 밝혀진 여러 프로젝트들을 잔뜩 갖게 되었다.

최근의 예는 다큐시리즈 ‘고통에 갇힌 사람들’(Afflicted)였다. 오리지널 히트작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만성 질병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작품이었다. ‘고통에 갇힌 사람들’이 나오자마자 출연자들 상당수는 제작자들이 속여서 출연하게 만든 것이며 자신들의 삶에 대한 묘사는 진실을 크게 왜곡했다고  미디엄에 밝혔다.

‘고통에 갇힌 사람들’은 고통 포르노가 되어버렸고, 출연자들을 착각에 빠진 사람들로 묘사하는 선정적인 작품이었다. 물론 언론의 취재 대상은 결과물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고, 출연자들의 불만 자체가 곧 잘못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허프포스트 등의 후속 기사들은 ‘고통에 갇힌 사람들’이 정말로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은 허프포스트 기사이다.

″시리즈물의 경우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전략은 마라톤 이어보기로 이어지기가 쉽다. 앉은 자리에서 한 시리즈를 끝까지 다 보도록 이용자들을 부추긴다. 이런 행동을 장려하기 위해 넷플릭스의 제작자들은 각 에피소드가 아슬아슬하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엔딩을 맞도록 교묘한 편집을 한다. ‘고통에 갇힌 사람들’은 이런 형식을 사용했다. 출연자가 실제로 아프긴 아픈 것인지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고 참가자들은 주장한다. [출연자들에 의하면] 이 시리즈의 근본적 질문은 결국 다음과 같은 착취적 질문이라고 한다. “이 병은 실재하는가, 아니면 출연자들의 머릿속에만 있는 것인가?” 이는 유도 질문이다.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넷플릭스는 이 질문에 답할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넷플릭스는 출연자 한 명의 잘 나왔다고는 할 수 없는 사진을 써서 ‘고통에 갇힌 사람들’을 계속 홍보한다. 클릭 수는 분명 많이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우린 이걸 불편해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한편 넷플릭스는 계속해서 전세계에서 세를 넓혀가고 있다. 2018년에만 전세계에 새로운 허브를 몇 곳 낸다고 밝혔다. 총 사용자 수는 성장 중이며, 이들은 넷플릭스에 엄청나게 만족한다고 계속해서 말한다.

페이스북 등과 규모가 비슷한 거대하고 강력한 기업으로서, 넷플릭스가 저지르는 실수는 전세계에 영향을 준다. 넷플릭스가 들려주고 홍보하기를 선택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이 기업은 우리가 어떻게 되기를 결정할지에 큰 영향을 준다.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는 삶 자체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드라마나 영화가 도덕적이냐 비도덕적이냐를 정하려는 건 헛수고이며, 넷플릭스의 목표가 완벽한 무해함이 되어서는 안된다. 다른 콘텐츠 기업들은 불쾌함을 피하느라 도를 넘었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미국의 TV는 연방통신위원회 규정 때문에 밋밋해지는 경향이 있고, 애플의 새로운 스트리밍 프로젝트는 ‘불필요한 섹스, 욕설, 폭력’을 금지한 듯하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알고리즘에 기반해 콘텐츠를 들이민다. 우리가 클릭할 것 같은 콘텐츠를 고르는 알고리즘이지, 이 콘텐츠가 우리에게 좋을지 나쁠지를 고려하지는 않는다. 자동 재생 트레일러도 있어, 넷플릭스가 우리에게 주는 것을 소비할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선택권은 더욱 약해진다.

넷플릭스는 막강한 기업이다. 그 힘으로 넷플릭스는 이미 우려스러운 실수들을 저질렀다. 그래서 이용을 끊지는 않는다 해도, 두려움을 품을 필요는 있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