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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의 고민 - 거봐, 내 생각이 맞았던 거잖아

[이해받고 싶은 아주 작은 욕심①]

ⓒhuffpost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내 마음 어느 구석에 들어 있는 사연이 있다. 우리 주변 평범한 6명의 고민을 통해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방법을 찾아가는 ‘이해받고 싶은 아주 작은 욕심’. 이 책의 일부가 매주 업데이트된다.

 * 이 챕터의 주인공 ‘소희’는 28세의 여성으로 4년제 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기업 전략기획팀에 근무하고 있다. 아버지는 건설업에 종사하시고 어머니는 전업주부로 사회경험이 없다. 형제로는 5살 터울의 언니가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창 밖을 내다보니 여전히 비가 한창이다. 장마철이라 그런지 하늘도 흐리고 온몸이 으스스하니 서늘한 느낌이다. 오랜만에 외출이라 기대가 컸는데 비까지 오니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직장 생활이 퍽 고되고 힘들어도 남자친구를 만나는 그 하루를 위해 일주일을 버티는데,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운 날이다. 오늘 입으려고 미리 사놓았던 옷을 입어 보고는 다시 한 번 설레는 마음을 가지려 하지만, 마음이 선뜻 풀리지 않고 자꾸만 삐걱거린다.

‘아… 진짜!! 뭐가 이렇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거야!!!’

너무 짜증 나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요즘 회사에서 실적문제로 상사로부터 지적을 받고 있어서 신경이 더 날카로워졌다. 퇴근 후에는 긴장을 풀지 못해서 잠을 설치는 날이 허다했고 아침마다 눈 뜨는 게 지옥이었다.

그래도 이 와중에 버틸 만했던 것은 남자친구 덕분이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는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기에 그러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예쁘게 꾸미고 기분 전환하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여러 가지 조건들이 받쳐 주지 못했다. 그래서 점점 더 서러워졌던 날이다.

“아, 뭐야, 왜에!!!”

남자친구와 통화에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차를 가지고 우리집 앞으로 오는 중이었는데 비가 오니 예정시간보다 늦을 것 같다는 남자친구의 전화였다.

“지금 뭐하는 거야! 왜 늦는데! 빨리 나왔으면 되잖아! 아침부터 비왔는데 차 막힐 거라는 생각도 못 했어? 그런 것도 미리 생각하지 못하는 거야? 아! 그냥 빨리 와!”

오늘따라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옷 때문에 짜증이 났던 마음마저 더해져 짜증이 한층 더 상승한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냥 서러웠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서 서러웠다. 회사 일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남자친구까지도 어쩜 이렇게 자신의 기분을 맞춰 주지 못하는지 답답했다.

소희는 지방에 있는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 중이다. 마침 비가 오자 남자친구는 소희네 집 앞까지 데리러 가기로 한 것인데, 남자친구의 그런 배려가 소희에게는 관심 밖이다. 지금 소희는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이 중요했다. 비와 옷, 늦은 약속들이 모여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늦어진다는 남자친구를 기다리며 외출복을 입고, 화장도 곱게 한 채 거실에 앉았다. 하지만 시간은 더디게 흘러가고, 비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시간 떼울 요량으로 뭣 좀 해 보려고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손에 잡히지 않자, 점점 분노가 차올랐다.

어떻게 해서든 밖에 나가서 기분을 풀어야 했기에 혼자 우산을 쓰고 빗속을 걷기 시작했다. 나와서 마냥 걷는 데도 그냥 다 불쾌했다. 비가 오는 것도 불쾌하고, 기분 전환을 위해 샀던 옷도 뭔가 예뻐 보이지도 않아서 불쾌하고, 어느것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결국, 화 나는 일을 하나 더 보태 준 남자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다 받아 주며 미안해했던 남자친구도 이번에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짜증을 받아 주지 않는다.

“지금 뭐하는 거야! 왜 늦는데! 빨리 나왔으면 되잖아! 비 오는데 차 막힐 거라는 생각 못 했어? 그런 것도 미리 생각하지 못하는 거야? 아! 빨리 와!”

- 김소희! 너는 어떻게 너만 생각하냐!

“참네, 너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하냐!”

- 나도 상황이 있었다고!

“그게 뭔데?”

- 교수님이 갑자기 전화를 해서 뭣 좀 하느라고 늦었다 왜!

“그래, 너는 교수님이 더 중요하지?

- 야, 너는 비교할 걸 비교해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됐어, 끊어.”

- 뭐? 전화 끊으라고? 오늘 안 만날 거야?

“그냥 오지 마! 만날 기분 아니야!”

- 알았어!

남자친구에게 오지 말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오기만을…, 집 앞에 와서 아까 화낸 건 미안하니까 제발 내려와 달라고 빌어 주길 바랐다. 나를 사랑한다면 당연히 와야 한다고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비 오는 거리를 계속 걷다 보니 추워져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 집에 돌아가는 중.

“뭐? 집에 가고 있다고? 안 만날 거야?”

- 오지 말라며.

“어떻게. 너는… 그냥 그렇게… 그래, 알았어. 그냥 가라 가!”

전화를 끊자 서럽기도 하지만 춥고 배고프기도 했다. 휴대전화 시계를 봤더니 시간이 벌써 5시 45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예전보다 빨리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가 고프냐.’

한껏 꾸민 차림으로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아 자리에 털썩 앉았다. 참으로 처량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된 거지?’

한참을 멍하니 앉아서 생각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친구에게 서운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연락을 기다렸지만, 전화나 문자도 없는 남자친구에게 점점 더 화가 많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남자친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고 혼자 남겨진 듯한 느낌에 울적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비는 계속 오고 컵라면도 다 먹었으니 그냥 집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전화해서 부를 수 있는 친구도 없었다. 그래서 컵라면 하나로 배를 채운 뒤 집을 향해 다시 걸어갔다. 힘없이 걸어 가며 부정적인 생각만 되풀이 했다. ‘이제 남자친구가 나한테 싫증이 났구나….’

* 심리상담 에세이 ‘이해받고 싶은 아주 작은 욕심(세창출판사)’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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