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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제와 자유한국당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huffpost

최근 자유한국당의 모습을 보면서 ‘구체제‘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리게 된다. 구체제, 앙시앵 레짐이라는 말은 원래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프랑스 사회가 넘어서야 할 옛 체제를 통칭하는 말로 출발했다. 절대군주제, 봉건제, 신과 교회를 정점으로 하는 사회질서 등이 새로운 프랑스를 건설하는 데 넘어서야 할 ‘옛것’의 내용이었다. 혁명세력들은 공화제, 봉건제 타파와 인권을 주창했다.

새 체제를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수백년 동안 자리잡아온 기존 질서의 뿌리는 깊었고, 구체제 옹호자들의 저항은 강력했다.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은 결과가 정해진 청사진을 들고 나아가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반복되었다. 새로운 시도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구체제 옹호자들은 힘을 얻었다. 혁명세력들도 선택의 순간마다 갈등했고 분열했다. 하지만 평범한 프랑스인들은 뿌연 미래 속을 공화제와 인권이라는 나침반을 들고 힘겹게, 때론 흔들리면서 나아갔다.

지금 1789년 프랑스의 경험은 ‘대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전세계 인권과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지만, 과거에 없던 것을 만들어가야 했던 그 시대 프랑스인들은 선택의 순간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구체제의 유혹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나아가게 만든 것은 ‘더이상 구체제로 이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는 분명한 현실이 앞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도 새로운 체제를 향한 시행착오를 선택 중이다. 우리 사회의 ‘구체제’가 무엇인지는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나는 박정희 경제체제와 박정희-전두환 정치체제라고 생각한다. 박정희 경제체제는 재벌과 정치권력이 결탁해 중소기업, 자영업, 노동자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성장을 추구했던 모델이다. 지난 시간 우리는 이 모델이 왜 공동체 전체를 먹여살리는 대안이 될 수 없는지를 고통스럽게 확인해왔다.

지금 정부가 제시하는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정책 패키지가 박정희 경제체제를 넘어서는 완벽한 대안은 아닐 것이며, 그럴 수도 없다. 과거에 없던 새것이 완벽한 형태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꽤 오랜 기간 우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구체제의 유혹에 시달리며 많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정치체제로서 박정희-전두환 체제는 반공반북이념과 보수독점적 양당경쟁체제를 핵심 내용으로 했다. 이 체제에서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안보를 지키는 것이 최대 가치고, 북한을 이롭게 하는 정치세력은 존재해서는 안 되며, 북한이 있는 한 개인의 사상의 자유, 정치활동의 자유는 제한되어 마땅한 것이었다. 지난 30년의 민주주의 경험은 이 체제를 한반도 평화체제로 대체하려는 실험, 반북이념에 동의하지 않는 정당도 원내에 진출하고 집권한 경험, 더 넓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는 지난한 노력을 쌓아왔다. 그 긴 시간을 거쳐 2018년 한반도 평화체제의 새로운 전기가 잡힐 듯 말 듯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구체제를 넘어서려는 사회구성원 다수의 선택이 대의제도로 온전히 반영되게 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든 박정희 체제 이후 경제모델이든, 시민들의 선택이 곧바로 국회의 선택이 될 수 있어야 더이상 촛불을 들지 않고도 정부의 정책을 바꾸고 국회의 입법을 해나갈 수 있다. 이것이 지금 자유한국당을 보며 구체제를 떠올리는 이유다. 반공반북체제, 박정희 경제체제, 양당경쟁체제를 보장하는 선거제도라는 구체제 핵심요소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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