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2018년 11월 30일 16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2월 03일 12시 29분 KST

[RISE 4회] 대통령의 구두, 시민의 구두가 되다. 사회적협동조합 '아지오' ①

‘대통령은 불을 지르고, 유시민 작가는 기름을 끼얹었다.’

HUFFPOST KOREA/SELLEV
RISE BY HUFFXSELLEV
신발을 직접소개하는 유석영 아지오 대표. 성남에 위치한 아지오에서는 발 사이즈 측정부터 맞춤 구두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오래전 문을 닫은 청각장애인 기업에서 구두를 샀던 이가 대통령이 됐고, 그의 낡은 신발 사진이 SNS로 퍼져 온 세상이 구두 브랜드를 알게 된다는 뻔하지만 일어나기 어려운 이야기. 구두 만드는 풍경의 브랜드 ‘아지오’가 그 꿈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아지오’는 창업 3년 만인 지난 2013년에 폐업했다. 대통령의 구두로 연일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릴 때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업이었다. 유석영 ‘아지오’ 대표는 휴대폰을 꺼뒀었다. 실패였던 자신의 아픈 손가락이 온 나라에 까발려진 순간이었으니까. 유시민 작가가 ‘해보라’는 조언을 하기 전까지 재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일련의 일을 두고 유 대표는 자신의 마음에 ‘대통령이 불을 지르고, 유시민 작가가 기름을 끼얹었다’고 회고했다. 한 번의 실패와 사람들의 주목 속에서 어렵사리 제2의 도약을 시작한 ‘아지오’. 대통령의 버프가 끝나고 난 후 시민의 구두를 만드느라 분주했던 성남의 아지오 사업장을 찾았다.

아지오의 창업 스토리는 유석영 대표가 라디오 방송사에서 근무하던 198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년 시절 이미 시각장애인의 운명을 진단받았던 유 대표는 사회복지와 관련된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었다. 그러다 유명 구두 회사에 근무하는 청각장애인 취재 기회를 얻었다. 그들의 구두 기술력은 인상 깊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잊혔던 기억이 되살아난 건 20년도 지난 2000년 즈음 그가 파주시 장애인 종합 복지관장을 맡았을 때였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운전면허, 꽃꽂이 등 생활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지원자가 없었어요. 알고 보니 생계가 어려워 프로그램에 참여할 겨를도 없었던 거죠.  당장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겠더라고요. 그때 문뜩 20년 전 취재하면서 봤던 ‘청각장애인 구두장인’이 떠올랐죠. 구두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아지오’의 시작이었습니다.”

무작정 뛰어들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구두장인을 찾는 일부터 요원했다. 비즈니스 마인드가 부족했던 유 대표는 단순 ‘잘 만들면 잘 살 것’ 이라 생각했다.

“아는 사람들마저 거절하더라고요. 구두 보따리를 들고 사람들을 찾아가면 장애인이라 마치 얻어먹고 다니는 사람처럼 인식하는 분들도 참 많았고요. 천 원짜리 한 장을 주며 그냥 가라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었죠. 그래도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국회도 가고, 서울역에 자리를 빌려달라 해서 판매한 적도 있었죠. 그 와중에 팔았던 거예요. 문재인 대통령께.”

유 대표는 2012년 9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구두를 판매하게 됐다. 지역구가 파주인 윤후덕 의원이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를 소개했다. 그때 판매했던 한 켤레가 대통령의 구두가 됐다. 하지만 마케팅 없이는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유 대표는 팔고 나면 직원들의 월급을 주고, 또 팔고 나서 집세를 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기억했다. 결국 문을 닫았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5·18 민주묘지를 참배했을 당시 신었던 아지오 구두(왼쪽)

“폐업 후 구두 수선을 문의하는 분들의 연락이 가장 괴로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평생 a/s를 보장했던 결과였죠. 기술자들도 뿔뿔이 흩어진 상태고 공장도 없으니 고쳐드릴 수가 없었죠. 다만 우리가 ‘좋은 구두’를 만들고자 했던 정신과 정성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구나 싶었어요.”

청와대로부터 전화도 받았다. 문 대통령이 신발을 다시 사고 싶어 한다는 연락이었다. 유 대표는 ‘취임한 지 일주일이 못 된 5월 14일 일요일이었다’고 정확히 날짜를 기억했다.

″비서관에게 전화가 왔어요. 공장이 문을 닫았다고 하니 구두만이라도 다시 만들 수 없겠냐고 묻더라고요. ‘이미 4년 전에 문을 닫아 기술자도 없고 구두를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전하면서 며칠을 가슴앓이했을 정도로 슬펐습니다. ‘오늘까지만 버텼더라도’하는 아쉬움도 있었죠.” 

그렇게 끝난 줄만 알았던 ‘아지오’의 역사는 5.18묘역에서 살아났다. 여기서부터는 이미 당신이 아는 이야기와 같다. 누군가가 낡은 구두를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문템(문재인 아이템)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의 연락이 쏟아진 것이다.

 
유석영 대표
지난 2013년 문을 닫기 전 아지오 시즌 1기의 모습

″헤어지던 날이 잊히지 않아요. 2013년 8월 마지막 날, 직원들과 함께 울면서 문을 닫았어요.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겁 없이 제 생각만으로도 시작한 일이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줬구나 싶어 가슴에 한처럼 남았죠. 그렇게 문을 닫은 아지오를 다시 시작하자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고요. 빨리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지오를 다시 시작하자는 사람들의 원성 속에서 그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 아지오를 꾸려갔던 사람들과 어떻게 헤어졌었는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민 끝에 찾은 이가 바로, 유시민 작가였다.

″경제학을 전공하신 분이잖아요. 유 작가님이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는 게 맞다 생각했죠. 당연히 하지 말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왜 안 하냐’고 하시는 거예요. ‘대통령이 영업을 해주셨는데 같이 살립시다’ 아주 쉽게 말하는 거예요. 하고 싶은 마음이 확 솟구치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고민했던 이유가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울고 싶은데 유 작가님이 한 대 때린 거나 마찬가지였죠.”

이에 유시민 작가는 ‘쉽게 말한 것이 아녔다.’고 말했다.

RISE BY HUFFXSELLEV
유시민 작가

“너무 쉽게 하라고는 안 했는데(웃음). 대통령의 인기가 항구적으로 좋다 보장할 수 없고, 세월 지나면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리는데 이슈만 가지고 회사를 재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었죠. 제 판단으로는 그럼에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회사가 사라지면 소비자나 일할 수 있는 의지나 능력을 갖춘 장애인들이 아주 아쉬울 것 같더라고요.”

유시민 작가가 유 대표를 처음 만났던 것은 그가 라디오 방송사에 근무했을 80년 후반 무렵이었다. 그 후 유 대표는 사회복지가로, 유시민 작가는 정치가로 서로 다른 길을 20년간 걸었다. 다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아지오가 문을 열고서부터였다.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했을 때 다시 인연이 닿아서 아지오의 홍보 모델이 됐었죠. 저는 인연이 쭉 이어져 오는 것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났다 헤어졌다 하는 관계를 좋아해요. 유석영 대표님은 제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느 길모퉁이에서 만났다 흩어졌다 하는 분이세요. 서로 길 갈라져 한참 소식 모르고 살다가도 만나게 되면 어제 만났던 것처럼 반가운 사이. 앞으로는 아지오가 궁금하다가도 소식이 없으면 잘 있겠지, 그럴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네요.”

유 작가는 평소엔 글을 쓰고 틈틈이 방송 촬영까지 스케줄이 빡빡하지만 ‘아지오’라면 두 발 벗고 나선다. 따뜻한 성품을 감추듯 ‘자신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지오가 성장해 연락이 안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지만, 그는 후하게도 2~3년 후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유석영 대표가 ‘성공한 CEO’가 됐으면 합니다. 청각장애인 직원을 100~200명 고용해 사회 안에서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아지오가 모델이 돼서 유사한 기업이 많아지고, 규모가 커질수록 ‘더불어 사는 맛’이 나는 세상이 될 거다. 조그만 회사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건지는 몰라도 그렇게 생각해요.” 

 

 

*[RISE 4회] “안 보이는 CEO와 안 들리는 직원들이 만드는 구두 이야기” 사회적협동조합 ‘아지오’ 유석영 대표인터뷰 ②로 이어집니다.

 

허프포스트코리아와 뉴미디어 플랫폼 셀레브(sellev.)의 공동 프로젝트 ‘라이즈(RISE by huff x sellev.)’는 혼자가 아닌, 세상과 함께 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RISE 순서

1회. 발달장애인들도 ‘남들’처럼 직장을 다닐 수 있다면?: 발달장애인 고용이 목표인 사회적기업 ‘베어베터’의 두 대표 이야기 (인터뷰 기사 보기)

2회. ”쇼핑 카테고리만 하나 만들어도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온라인쇼핑 플랫폼을 활용해 공익을 위한 연결고리를 만드는 한 이커머스 기업의 이야기(인터뷰 기사 보기)

3회. 제주도 사람들과 수십년 동안 인연을 맺고 있는 아일랜드 출신 신부(神父)들: 성이시돌법인 임피제·이어돈 신부의 이야기(인터뷰 기사 보기)

4회. 시각장애인 CEO와 청각장애인 직원들이 만드는 구두 브랜드 ‘아지오’, 대통령의 구두, 시민의 구두가 되다.

 
RISE 4회. 아지오 편
 
대담, 글/ 황혜원
 
촬영/ 강한(sellev.), 이윤섭
 
영상 구성, 편집/ 김지현(sellev.), 강한(sellev.)
 
영상 디자인 / nature(sell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