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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노동자들 울린 테크노밸리의 하이퍼 리얼리스트 '장류진'(인터뷰)

세 번 읽었다

  • 박세회
  • 입력 2018.10.10 13:00
  • 수정 2019.12.03 13:15
ⓒYang Yu Seok

요새 판교 테크노밸리는 물론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제인 한 단편 소설이 있다. 제21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인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다. 

앞 부분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그러나 이 소설의 천재성은 디테일에 있다. 온라인에 공개된 이 소설을 읽는 데는 많은 시간이 들지 않으니 일독을 권한다. (‘일의 기쁨과 슬픔’ 보러가기).

간편한 중고 상품 거래 앱 ‘우동마켓‘(’우리동네마켓‘)에는 하루에도 백 개씩 새 제품을 시중보다 살짝 낮은 가격으로 올리는 파워 셀러가 있다. 이 파워 셀러의 이름은 ‘거북이알’. 우동마켓의 사장은 거북이알이 자기네 앱을 도배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동마켓의 실질적 막내이자 화자인 안나는 ”너무 도배하지 말고 적당히 좀 올리라”는 말을 거북이알에게 전하라는 사장의 오더를 받고 거북이알을 만난다.

거북이알과 대면하기 위해 거북이알이 판매하는 캡슐커피머신을 회사 근처 판교의 커피숍에서 거래하기로 한다. 안나는 이 만남에서 거북이알이 중고 물품을 하루에 거의 백 개 씩 올리는 이유가 월급을 카드사 포인트로 받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장류진 작가와 서면 질답을 주고 받고 모자란 부분을 전화를 통한 대화로 보충했다. 

사람들은 현업인지를 가장 궁금해하더라고요.
장류진 = 스타트업에 다녀본 적은 없습니다. (웃음) 하지만 7년 동안 비슷한 분야의 회사원이었어요. 작년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쉬면서 글을 썼고, 최근 새로운 회사에 다시 취직해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인터뷰에 응하고 있답니다.

혹시 문학 관련 전공이거나 문학 수업을 여러 번 들었나요?
= 학부는 사회학과를 나왔습니다. 대학생 때는 문학 관련 수업은 거의 듣지 않았어요. 친한 사회학과 언니들이 교양 수업을 같이 듣자고 해서 우르르 몰려가서 비교문학 수업을 멋모르고 들은 적이 딱 한 번 있습니다. ‘B+’였던 걸로 기억하네요. (웃음)

어떤 과정을 거쳐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요
= 회사에 들어가고 1년 차에 한겨레 문화센터의 소설 쓰기 강좌를 들었는데 거기서 처음 소설을 쓰며 소설 쓰기의 고통과 기쁨을 다 얻었어요. 한 번 쓰고 나니 계속 쓰고 싶어져서 여러 번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씨는 꺼지지 않고 남아있었나 봐요. 아무래도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에 다니면서 2016년에 온라인 대학원으로 문창과 수업 1, 2학기를 들었고 회사를 그만두고 3, 4학기는 오프라인 대학원에 편입해 마쳤습니다. 다니면서 소설을 썼고요.

그럼 이번에는 회사에 다니면서 당선 전화를 받으신 거죠?
= 안 그래도 재취업을 해서 회사에 출근한 지 삼 일째 되는 날에 받았어요. ‘회사 적응 잘해야지, 앞으로 내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온 거죠. 이전에도 신춘문예나 문예지에 공모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모르는 전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순간 기대가 되기도 했어요. 대부분은 택배 전화였지만요. 그런데 이번에는 전화가 와서 ‘창비’라고 하는데도 기대가 안 되는 거예요. 작품을 보내고 시간이 지난 터이기도 했겠지만, 정말 1도 기대가 안 되더라고요. ‘당선됐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눈물이 났어요.

당선이 명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데, 이미 엄청난 명성을 얻으신 것 같아요. 느낌이 어때요?
= 이런 반응을 상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상상했던 것 이상이라서 얼떨떨하고 그렇습니다.

‘하이퍼 리얼리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 대학교 때 미술사 시간에 들었던 말인데 저도 오랜만에 들어봤어요.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써야지”하고 쓴 건 아니지만 회사생활의 ‘짜친’ 부분들이 자세히 적혀있다 보니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제 막 등단한 신인이기에 모든 관심이 다 정말 감사할 뿐입니다.

받았던 반응 중에 가장 재밌는 반응은 뭔가요?
= “애자일 경찰 만들어서 스크럼 15분 넘어가면 체포해야 한다”는 반응이 재밌었어요. 또 한 분은 “데이빗 X또 쓸모없는 거 화이트보드에 적고 손으로 문댈 때 왜케 리얼”이란 반응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재밌는 사람들이 제 소설이 재밌다고 해주시니까 요리사한테 맛있다고 칭찬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표는 자신의 등 뒤에 세워진 화이트보드에 '거북이알'이라고 쓰고 그 위에 동그라미를 여러번 치더니 이내 손으로 문질러 글씨를 지워버렸다.

전 이 소설도 이 소설을 택한 ‘창비’의 선택도 기존과 다르다고 느껴요.
= 그런데, 사실 저는 제 작품이 엄청 파격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소설의 형식같은 측면에서 보면 충격의 당선작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 않나 생각이 들긴 해요. 훨씬 더 파격적인 작품도 많으니까요. 세상에는 아예 줄거리가 없는 소설도 많은데 제 소설은 그래도 줄거리가 있거든요. 

단어의 선택이나 문체가 손보미 작가랑 많이 닮았어요.
= 손 작가님은 좋아해서 모든 작품을 다 읽었어요. 국문과 대학원에 다닐 때는 수업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다른 작가가 있나요?
= 권여선 작가님도 좋아해서 많이 읽었어요.

‘거북이 알’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네, 맞아요. 이 소설을 발상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술자리에서 다른 회사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월급을 포인트로 받은 사람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서였어요. 그러자 또 누군가가 “상품권으로 받은 사람도 있다” 라더군요. 그래서 그 사람은 회사를 관두었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다닌다는 거예요. 그럼 그 사람은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소설을 구상한 것은 아니고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쓰게 된 것입니다.

이야기를 단선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는 점이 흥미로워요. 월급을 포인트로 받는 사람의 이야기는 한 축일 뿐이죠. 참고로 저는 이 소설을 읽고 ‘카드 포인트로 월급을 받는 사람의 이야기’로 요약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생각보다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는 절대 아닌데 말이죠.
= 소설 속에는 여러 이야기가 들어가고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 같아요

ⓒYANG YU SEOK

등장하는 거의 모든 고유 브랜드는 실제로 있는 것들이죠?
= 글렌 굴드와 조성진, 엔씨소프트를 빼고는 다 허구로 봐주시면 됩니다. 물론 모티브가 된 것들은 있지만 소설 속 회사와 브랜드는 (당연히) 허구입니다!

피피엘(간접광고)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어요. 특히 우동마켓. (웃음)
제가 평소 중고거래 앱을 애용합니다. (웃음) 정말 잘 만들어진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 마지막에 안나와 케빈의 핸드폰에서 동시에 울린 알람은 퇴근 시간 알람인가요?
= 월급이 입금되었다는 알람입니다. (웃음)

안나와 케빈 안나와 거북이알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요.
= 판교 어딘가에서 일의 기쁨과 슬픔을 느끼면서 출근해 있지 않을까요? 휴일인 한글날을 기다리면서요.

글렌 굴드와 조성진에서 빵 터졌습니다. 제 경우 어려서는 팝&록 팬이었는데 나이가 드니 글렌 굴드와 조성진을 듣게 되더라고요. 상상도 못 했던 일인데 말이죠. 직장과 조성진 사이에 어떤 맥락 같은 게 있을까요?
= 이 이야기에는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우연히 조성진 님의 연주 영상을 본 일이 있었는데, “이걸 들으니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조성진을 좋아하면서 인생이 좋은 쪽으로 많이 바뀐 것 같다”와 같은 댓글들을 보고 갑자기 눈물이 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살려서 안나를 조성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설정했습니다.

왜 ‘쵸팽’인지에 대해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 조성진 님의 팬분들이 쇼팽과 조성진 님의 영문 성인 Cho를 합쳐서 쵸팽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자료조사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혹시 ‘당신이 평창입니다’라는 소설을 아시나요? 혹시 그 작가신가요?
= 아닙니다.(웃음) 저도 그 소설을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 역시 평창 올림픽에 1도 관심 갖지 않았는데 어느샌가 평창의 아이스링크에서 국가대표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글을 써 주신 작가님께도 감사드리고 기존의 소설 유통 방식과는 또 다른 새로운 플랫폼을 기획하고 만들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바스락거리는 새로 산 이불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축축하지 않고 포근한. 이 정도로 청승을 깔끔하게 버리기란 참 힘들 것 같아요.
= 저도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좋아합니다. 담백하게 써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쓴 것은 아니고 쓰다 보니 이렇게 되었지만요. 이 소설에는 청승이 많지 않았다고 평가해 주셨지만, 청승이 필요한 순간도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출판 편집자로부터 ‘요새는 무조건 안아줘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 이야기가 사랑받는 이유도 그런 맥락일까요?
= 위로가 필요한 시대라는 말에 저도 공감합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위로가 되었다는 평을 본 적이 있는데 무척 기뻤습니다.

많은 소설가가 위로를 위한 소설을 쓰다가 지나친 감상에 빠지거나 참여적 소설을 쓰다가 훈계나 주장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혹시 그런 밸런스를 염두에 뒀나요?
= 소설을 쓰면서 이 소설이 어떤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당연히 제 소설이 언급된 두 역할 사이에서 밸런스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쓴 것도 아닙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쓴 거라 쓰면서 나에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쓰게 되었던 것 같아요. 노동자인 나에게 위로가 되는 소설을 쓰다 보니까 저와 같은 입장에 있는 분들이 그렇게 읽어주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쓸모 없어 보이는 조형물 얘기가 흥미로워요. ‘토마손’이 떠올랐어요. 일본에서는 ‘불필요해진 건축 장치’를 ‘토마손’이라고 한다고 해요. 소설 속의 육교는 뭔가 토마손을 일부러 만든 느낌이랄까요?
= 소설 속 육교는 실제 판교에 있는 육교에서 영감을 얻어서 쓴 것입니다. 판교에 실제로 길을 건너는 기능을 하지 못하는 육교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판교의 육교는 소설 속 육교와는 약간 다릅니다. 올라가고 나서야 이상한 걸 알 만큼 크지도 않고, 무엇보다 거기 올라섰을 때 엔씨소프트의 네모난 하늘이 보이지는 않아요. 소설 속 육교가 실제보다 훨씬 크고 엔씨소프트의 네모난 하늘과 평행하게 마주 보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썼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 겨울에 문예지에 새 단편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이제 막 시작했으니 열심히 활동하고 싶어요. 소설 청탁이 많이 들어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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