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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와 에이즈

ⓒspukkato via Getty Images
ⓒhuffpost

우리나라는 결핵의 경우엔 현재 치료비를 국가가 전액 지원한다. 그렇다고 ‘귀족 환자’라고 할 수 있을까. 어차피 내 돈으로 치료하지 않으니 결핵에 걸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면 그 말을 누가 믿을까. 국가에 등록된 희귀난치성 질환의 경우엔 치료비의 90%를 건강보험에서 지원받는다. 이를 두고 혈세를 희귀질환자들에게 낭비한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오히려 국민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여주는 훌륭한 복지 시스템이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다. 같은 희귀난치성 질환인데도 에이즈(AIDS)만 유독 치료비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귀족 환자라거나 세금 도둑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가령 이런 식이다. 에이즈 전문가를 자처하는 어느 의사는 강연을 하거나 글을 쓸 때마다 에이즈로 인해 대한민국이 감당한 사회적 비용이 2013년엔 4조원, 2016년에 5조원이라며 마치 숨겨진 진실을 폭로하듯이 발언한다. 약값이 한달에 수백만원인데 전액 지원받는다는 말과 연결하면 누가 들어도 에이즈 치료비로 매년 수조원이 쓰이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 이 충격적인 소식은 유튜브와 블로그 등으로 전문가의 발언이라는 권위를 업고 다시 확산된다. 나도 처음엔 믿을 뻔했다. 다행히 그가 근거로 내세운 논문이 내 책장에도 꽂혀 있어서 직접 찾아볼 수 있었다. 확인한 사실 관계는 이러하다.

그가 인용한 자료는 2004년에 질병관리본부와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주최한 국제 에이즈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한국에서 HIV/AIDS 감염의 경제적 영향’이란 제목의 논문이었다. 이 연구에서 말하는 사회적 비용이란 감염 사실을 알게 된 때부터 증상이 나타나 사망에 이르기까지 발생하는 감염인의 생애 비용을 뜻한다. 치료비와 약값, 장례비용 등의 직접비와 만약 죽지 않고 계속 경제활동에 참여했다면 벌었을 미래의 수입 등의 간접비를 합산한 것이다.

2003년의 사회상을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감염인 1인당 평균 3억8600만원 정도의 생애 비용이 나온다고 추정되었다. 이 논문의 목표는 에이치아이브이/에이즈 예방 정책을 세울 때 어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타당할지를 추정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연구 결과는 열명의 감염을 예방하는 데 설사 10억원의 비용을 쓴다고 해도 약 29억원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셈이므로 정부로서는 더 경제적이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된 수조원에 달한다는 사회적 비용은 2003년도 평균 생애 비용에 현재의 누적 감염인의 수를 단순히 곱해서 총액을 낸 것이다. 사회적 비용은 당장 실제로 지출되는 돈이 아닌데도 마치 매년 수조원의 혈세가 지출되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설마 사회적 비용의 개념을 모르는 것일까? 논문을 끝까지 읽지 않은 것일까? 이것이 아니라면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일까?

동성애자의 인권을 억압하고 에이즈 혐오를 부추기는 이들이 흔히 주장하는 동성애자의 에이즈 감염률이 이성애자보다 108배가 더 높다거나 동성애자 열명 중 한명이 감염인이라는 등의 주장 등도 정확한 근거 없이 여기저기서 통계 수치만 가져와 엉터리로 해석한 경우다. 그들은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이 지면을 통해 누차 강조했듯이 에이즈는 에이치아이브이 바이러스 감염 질환이므로 예방의 포인트는 바이러스에 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누가 누구와 성관계를 하는지가 아니라 바이러스를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있다. 감염성 질병 관리는 감염 당사자가 자신의 질병을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제 세계적인 에이즈 예방의 추세는 ‘U=U 캠페인’이다. ‘U=U’란 ‘바이러스 미검출(Undetectable)은 곧 감염불가(Untransmittable)’라는 의미다. 감염이 되었다고 해도 6개월 정도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혈액 내 바이러스의 수가 일정 기준 이하로 내려가는데, 이때는 타인을 감염시킬 가능성도 0%가 된다는 것이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감염인이 건강하게 잘 산다면 전염이 될 우려도 사라진다.

이보다 더 확실한 에이즈 예방책이 또 있을까. 한국은 세계적으로 HIV 감염인의 수가 적은 국가이므로 지금부터 이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멈추라.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이 있는데도 그 길을 망쳐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이제는 제발 멈추라.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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