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8년 10월 04일 15시 31분 KST

11살 때 '헤픈 여자애'라는 낙인이 찍혔고, 그 꼬리표는 나를 평생 따라다녔다

남자아이들에게 가는 메시지는 언제나 명확했다. ‘헤픈 여자아이’는 남성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며, 거절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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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렛 캐버노 미국 대법관 지명자는 고등학교 졸업앨범에 자신이 ‘르네이트 동기’(Renate Alumnius)라고 적어놓았다. 같은 문구를 적은 다른 남학생들도 있었다. ‘르네이트 슈로더’라는 여성을 성적으로 정복했다는 의미였다.

실제 사건에 기반한 것이든 아니든, 이런 식의 마초적 자랑은 젊은 여성의 이른바 ‘평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여성에게 이런 평판을 줄 경우 괴롭힘, 학대, 평생 지속되는 감정적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캐버노 같은 십대 남자애는 아마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안다. 학교에서 ‘헤픈 여자애’로 찍혔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 아무에게나 물어보면 말해줄 것이다. 그런 평판이 얼마나 위험하고 큰 피해를 주는지, 당시의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 있었다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말해주고 싶다.

 

6학년 첫날부터 시작되었다.

뉴욕주 북부로 갔던 캠프 마지막 날에 나는 여름 내내 반해 있던 남자아이와 첫 키스를 했다. 작별 인사를 할 때였다. 메릴랜드주의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다이어리에 시시한 노래 가사를 옮겨적었다. 나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그리워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로맨스를 계속 마음에 품고 있던 나는 중학교에 처음 등교한 날 카페테리아에서 친구들에게 마법 같았던 키스 이야기를 했다.

소문이 퍼졌고, 순수했던 키스가 진한 스킨십처럼 알려졌다. 나는 키스를 처음 해본 사람, 적어도 키스를 했다고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건 내가 ‘진도가 빠르다’는 증거가 되었다. 루머는 키스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내 행동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딱히 빠른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헤픈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7학년이 되자, 모두들 내가 오럴 섹스를 해준다는 걸로 ‘알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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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들은 학교 복도에서 대놓고 나를 만졌다. 내 온라인 메시지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성행위에 대한 제안이 가득했다.

내가 헤프다는 루머가 고등학교 남자아이들에게까지 퍼져서, 위스콘신 애비뉴의 동네 극장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 그들이 내게 접근했다. 결국 나는 17세 남학생을 따라 거리 위 공원으로 갔다. 그는 오럴 섹스를 기대했다. 나는 단지 스킨십을 원했을 뿐이었으나, 결국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세 번째 학기 중에 한 남자아이가 자기 남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잠깐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는 상황이 더 심해졌다. 그 아이는 나를 더듬었고, 내가 안 된다고 하자 나를 무릎 꿇리고 자기 바지를 내렸다. 나는 교실로 달아났지만 그 날 수업에서 배웠던 내용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여러 해 동안 친구였던 남자아이가 순식간에 나를 물리적으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정신이 없었다.

당시 나와 그 아이는 겨우 8학년이었다. 어떻게 그는 내 몸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느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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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뒤 학교 무도회에서 한 남자아이가 내 셔츠에 가격표를 붙였다. 내가 창녀라는 의미였다. 여러 해가 지났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의 수치와 상처를 기억한다. 나는 그 아이를 쓰레기통으로 밀어버렸다. 그런 꼴을 당해도 쌌다. 그 아이가 말하는 루머와 농담으로 인해 그 아이의 친구가 내 얼굴에 성기를 들이밀었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11살에 헤픈 여자애라는 낙인이 찍히자, 그뒤로 학교를 다니는 7년 동안 나는 접근을 피해야 했고 강간당할 뻔할 위기를 겪었다. 이런 일들로 나는 상처를 받았지만,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내가 아는 한, 이건 그저 ‘남자아이들이 하는 행동’이었다.

내가 성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경우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리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내가 다녔던 공립학교, 이런 남자아이들 일부가 다니던 엘리트 사립학교, 그리고 미국 문화 전반에 퍼져있는 ‘남자애들이 그렇지 뭐’라는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는 루머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확산됐다. 2학년 때 같은 반 아이가 내가 찍은 포르노를 온라인에서 찾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나와 머리카락 색이 같고 가슴 크기가 비슷한 여성일 뿐이었다.) 나는 내가 졸업파티 후 파티에 함께 간 파트너를 포함한 6명의 남자와 섹스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파트너는 게이였다. 다른 아이들은 파티 후 모여서 술을 마셨지만, 나와 내 친구들은 친구 집 지하실에 가서 보드게임을 했다.)

졸업반이 되자 내가 헤프다는 소문이 동네의 사립 남자 학교인 랜든 고등학교에까지 퍼졌다(브렛 캐버노가 다닌 조지타운 고등학교의 라이벌인 학교다). 나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랜든고등학교의 남학생 한명을 만났다. 그 아이를 만난 건 그날이 유일했다. 그는 자기 차를 세우고 내게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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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나에겐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는 우리 학교 남자아이들에게 내가 오럴 섹스를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목 뒤를 꽉 잡고 머리를 자기 가랑이로 밀어 내렸다. 내가 비명을 질러 발기를 유지하기 힘들게 되자, 그는 내 머리를 세게 때렸다. 나는 그 손길에서 겨우 빠져나와 차 문을 발로 차다가 도망쳐 집으로 달려갔다.

당시 나는 친구들에게 ‘내가 오럴 섹스를 잘한다는 루머가 있다’고 말했다. 폭력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건 칭찬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답했다.

남자아이들에게 가는 메시지는 언제나 명확했다. ‘헤픈 여자아이’는 남성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며, 거절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헤픈 여자아이’는 다른 남성을 허락했기 때문에 또 다른 남성 역시 거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로 문란하거나 문란하다고 생각되는 여성은 남성의 해로운 행동의 희생양이 된다. 여름 캠프에서 키스를 한 번 했던 것 때문에 나는 나에게 동의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여러 남자아이들을 마주치게 되었다.

나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학교를 다니는 동안 대부분의 남자아이와 데이트하거나 엮이는 것을 피했다. 나를 좀 더 존중하는 것 같았던 연상의 남성들을 만났다. 나는 나이가 더 많은 남성과 데이트하는 것이 쿨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또래의 다른 여자아이들과 달리 똑똑하고 재미있고 성숙했으니까.

이러한 연상의 ‘소년’들은 성인이었다. 24~26세의 남성들이었는데, 이들은 법정 성년 나이를 막 넘긴 나와의 섹스를 원했다. 이제 나는 그들이 미성년자 강간으로 기소되는 판타지를 품는다.

고등학교 시절의 경험은 내 자존감에 지독하고 오래가는 영향을 남겼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 나를 헤프다고 할 거라면, 그냥 헤프게 굴고 말지 뭐. 어차피 남성들이 나에게 원하는 건 그것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내 학교 친구들은 어렸다. 이 딱지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깨닫지 못했던 잔인한 바보들이었다. 과연 지금은 이해할까.

브렛 캐버노와 그의 친구들은 알고 있을까. 여성을 성적으로 정복했다고 떠벌리는 것과 남자들이 여성의 몸을 학대하고 법으로 규율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의 행동이라는 걸.

나는 지금도 깨지지 않는 차의 창문과 문을 발로 차며 벗어나려고 하는 악몽을 거의 매주 꾼다. 그들이 여기에 관심이나 있을까.

 

* 허프포스트US의 을 번역,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