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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02일 17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0월 02일 18시 03분 KST

나의 퍼스널 컬러 진단 체험기

나의 퍼스널 컬러가 고흐와 영혼의 쌍둥이인 점에 관하여

huffpost

퍼스널 컬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체색과 조화를 이루어 생기가 돌고 활기차 보이도록 하는 개개인의 컬러.”

-네이버 지식백과

 

사람마다 그런 옷 하나씩 있지 않나? 입으면 딱히 꾸미지 않아도 온 몸에서 오색광채가 나는 옷.

사실 사람 자체의 분위기가 색을 씹어먹을 정도로 매력이 있거나 이효리라면 퍼스널컬러라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치티치티뱅뱅.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스널컬러 진단을 받는 이유는 뭘까, 바로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우리 다 한정된 재화 안에서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하등한 인간이라 기왕이면 적은 돈과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리고자 함이다. 참고로 나는 이 컬러 진단을 받기 전까지 모던하고 심플한 옷 좀 입으라는 주위의 조언에 따라 카키, 카멜, 그레이 등등의 옷이 몇벌 있었는데, 이 진단을 받고 모조리 갖다 버렸다. 더이상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옷에 돈을 쓰지 않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퍼스널 컬러 진단을 하러 가면(나는 친언니가 데려갔다) 화장도 몽땅 지우고 머리카락을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마냥 하얀 천으로 틀어올리고, 사람이 가장 못생겨보인다는 미용실 의자룩(=흰천)을 둘러준다. 처연한 백색등 아래 백숙의 닭이 된 기분이 들때 즈음, 컬러리스트 선생님이 각종 톤의 색상의 천을 차곡차곡 얹기 시작한다.

 

딱 이런 느낌이다.

 

 허연 천 위에 블랙을 얹자마자 시커머죽죽하던 얼굴에 놀랍게도 형광등 1000개를 킨 아우라가 생겼다. 정말 반사판이라도 댄 것처럼 말이다. 아 이게 퍼스널 컬러라는 거구나.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 이후로 화이트까지 가는 모든 톤의 그레이-쥐색, 잿빛, 회분색까지 정말 모든 톤의 그레이가 거짓말처럼 얼굴에 안받았다. 하얀색이 조금 섞였을 뿐인데. 정말 색이란 놀랍다.

그 다음은 옐로우, 레드, 블루 삼원색을 톤별로 얹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정말 놀라울만큼 파스텔톤이 안어울리는구나!!! 내가 그렇게 감로리(아마로리)와 유메카와 패션을 입고 싶어도 입지 못한 이유는 비단 내 키(=170cm)라는 나의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당장이라도 누구 하나 죽이고 온 것 같은 낯빛이 되는 걸!

 

 

 

하얀색이 조금이라도 섞인 색은 모두 내 얼굴을 석회 반죽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안그래도 입술이 좀 핏기가 없는 편인데 나를 더욱 산송장으로 만드는 매직매직 어머어머하고 놀랄 걸.

핑크, 브라운, 퍼플 계열 역시 몽땅 안맞았다. 각종 형광색은 얹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안색이 순식간에 역광에 찍은 사진처럼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곤란하다는 듯 웃으시며 작은 명함 같은 카드에 내 퍼스널컬러를 적어주었다. 나는 가을딥. 그동안 가을 뮤트라고 셀프 진단 해왔던게 얼마나 헛소리인지 알게 되었다. 여러분, 전문가가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돈. 돈이 최고입니다.

명함 뒷면에는 작은 동그라미 여러 개가 있고 가을딥에 해당하는 컬러칩 색상이 표기 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 나에게 안 어울리는 색상에 쫙쫙 가위표를 치시는데 나는 안어울리는 색상이 유난히 많아 서른 개쯤 되는 동그라미 중 열개도 체 안남았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내 얼굴에 가장 어울리는 색이라며 몇 색을 얹어주셨는데, 어째서인지 몽땅 고흐의 톤이었다. <아몬드나무> 틸블루, <까마귀가 나는 밀밭> 레드, <자화상> 그린, <해바라기> 옐로우.

 

고흐의 작품
역시 내가 괜히 미친 자가 아니었다. 언젠가는 나도 귀를 자를지도 모르겠다.

 

반면 안어울리는 색은... 그냥 첨부된 사진을 보면 알 것이다. 아무리 각도를 감안해도 죽상이 된 얼굴을... 저 이후로 집에 있던 저 색 모두 다 갖다 버렸다.

 

 

다만 나도 안어울리는 색을 입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퍼스널 컬러인 블랙을 얼굴 바로 아래 받쳐 입는 것이다...! 나는 겨울만 되면 블랙터틀넥 광인이 되는데, 뭘 입어도, 정말 뭘 입어도 안에 블랙터틀넥을 받쳐입는다.

 

 

겨울의 나

 

 

무엇보다 내 얼굴에 받는 채도와 명도의 옷은 대부분 여름 옷들이기 때문에, 안에 검은 히트텍과 터틀넥, 기모 레깅스를 겹겹이 덧대입은 코난의 범인 룩 뒤에 여름 옷으로 포인트를 준다. 이렇게 겨울을 나다보니 좋은 점은 겨울 옷에 돈 나갈 일이 별로 없다는 거지만 반대로 안좋은 점은 하도 자주 입어서 여름에 입을 옷이 없어짐.

그럼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은 후 옷에 투자하는 금액이 줄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다. 그동안 어울리나마나 샀던 옷 대신 확실히 어울리는 색의 옷을 사게 되었을 뿐이다. 심지어 내가 원하는 디자인-시퀸과 벨벳, 자가드, 글리터의 콜라보-은 내 퍼스널 컬러로 잘 나오지도 않는다. 아니, 애초에 저 색상이 그냥 국내에 잘 안판다. (팔아도 맞지않는다, 나에겐.) 덕분에 국내 브랜드보다 비비드한 색상이 많은 외국 브랜드 직구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내 통장은 텅장이 되었고....

다만 헛돈을 쓰는 비율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한벌 쯤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샀는데 정작 왠지 모르게 손은 안가고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운, 그런 옷을 사는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퍼스널 컬러리스트 분이 조언하시길, 사실 상의만 퍼스널컬러라면 하의는 마음껏 입어도 된다고 한다. 결국 얼굴 아래 반사판을 대는 효과를 노린 것이기 때문에 퍼스널 컬러가 아니라고 마음에 드는 옷을 못사거나 안 살 이유는 없다고.

그렇다. 아 걍 내가 입겠다는데 뭐 어쩌라고. 결론은 뭐든 내가 입고 싶은게 제일이다. 잘어울리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