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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 파괴는 패션계의 더러운 비밀이다. 우리도 공범이다

의류 브랜드는 왜 제품을 소각할까?

  • 김도훈
  • 입력 2018.10.01 16:15
  • 수정 2018.10.01 16:27
ⓒMary Turner / Reuters

럭셔리 패션 레이블 버버리가 3800만 달러 어치의 재고를 아무렇게나 파느니 불태워 버리기로 한 결정을 후회한다는 걸 당신도 느꼈을 것이다.

소셜 미디어에서 #burnberry 로 퍼진 이 일은 7월에 알려져 많은 비난을 받았다. 버버리가 패션에서 낭비를 줄이고 자원을 순환시키자는 운동인 ‘Making Fashion Circular’에 헌신하겠다고 밝힌 것이 불과 2개월 전이었다. 결코 옷을 불태워서 이룰 수는 없는 일이다. 옷감을 버리는 행위다. 순환경제와는 정반대의 행동이다.

버버리는 맹렬한 비난에 반응했다. 옷을 불태우는 관행을 즉각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버버리에 대해 일었던 반발로 인해 패션계의 파괴 관행이 주목을 받았다. 버버리는 2017/2018년 연례 보고에 ‘올해 안에 완제품을 물리적으로 파괴한다’고 밝히는 등, 이제까지 제품 소각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브랜드는 제품 소각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으며, 밝혀야 할 의무도 없다.

의류 브랜드는 왜 제품을 소각할까? 브랜드 가치 하락을 피하려는 것이 가장 흔한 이유다. 할인은 브랜드의 명망을 깎아내린다. 샤넬 등의 브랜드는 절대 할인을 하지 않는다. 희소성을 지키면 소비자 개인만의 브랜드가 된다는 논리다.

ⓒPierre Albouy / Reuters

 

예를 들어 지난 2년 동안 까르띠에를 소유한 리치몬트 그룹은 공인되지 않은 판매자들이 회색시장에서 시계를 팔지 못하도록 소매 파트너들로부터 약 5억 7500만 달러 어치의 시계를 되사들였다. 대부분은 파괴되었고, 부품은 재사용되었다.

자사 제품을 파괴하는 건 하이엔드 브랜드만이 아니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도 한다. 컨셔스 컬렉션을 내세우며 매장에서 리사이클링 포인트와 그린 어젠다를 시행하던 H&M이 철지난 옷 19톤 정도(청바지로 치면 5만 벌 정도다)를 스웨덴의 거대 에너지 기업 말라르에네르기의 폐기물 에너지 전환 시설에서 불태웠음이 2017년에 밝혀졌다.

H&M은 안전 문제 때문에 팔 수 없는 옷들이라고 밝혔다. 화학 물질 기준에 맞지 않거나 곰팡이가 슬었다는 이유다. 독일에서 진행 중인 ‘프론털 21’ 프로그램에서 H&M이 여러 시즌에 걸쳐 독일에서 팔리지 않은 옷 10만 점을 파괴했다고 이번 달에 밝혔을 때도 H&M은 똑같은 이유를 댔다.

2017년에 뉴욕 타임스는 나이키가 제품 폐기 전 입을 수 없게 만들기 위해 옷과 신발을 베었다는 기사를 냈다.

설문 조사가 이루어진 적은 없으나, 패션 재고에 대한 대중의 규탄을 보면 대중은 이러한 관행에 전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처한 생태적 긴급 상황을 보면 자원을 투입하고 공해를 일으키며 만든 옷들을 폐기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폐기물과 패션은 긴밀한 관계다. 패션업계는 재고를 쏟아낸다. 매년 새 섬유로 만든 새 옷 1천억 점이 시장에 쏟아진다. 3월에 H&M이 보고한 재고만도 43억 달러 어치였다.

ⓒJENNIFER SZYMASZEK / Reuters

패션업계의 에너지 소비도 엄청나다. 특히 개발도상국에 생산을 맡기는 패스트 패션은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에서 수출용 의류를 만드는 공장은 다림질과 염색에 전력을 필요로 한다. 프랑스 환경 단체 게레(Geres)의 추정에 따르면 프놈펜의 의류 공장은 매달 650만 세제곱미터 이상의 나무를 불태운다. 나무를 태우는 보일러를 돌리기 위해 공장들은 오래된 숲의 나무들을 벤다.

그리고 탄소가 배출된다. 2017년 엘렌 맥아더 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패션업계는 국제 항공과 해운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패션 재고 파괴 관행을 바꾸려는 움직임들이 있긴 하나, 체계적 접근은 드물다. 익명을 요청한 럭셔리 제품 부문의 내부자에 따르면 럭셔리 디자인 하우스가 팔리지 않은 제품을 불태우는 시절은 아마 지났을 것이라 한다. “이젠 재고는 폭포처럼 떠밀려 간다. 팔리지 않은 재고는 아웃렛으로 밀려나거나, 옷과 악세사리를 해체해서 다른 식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지퍼와 단추 등의 하드웨어는 제거할 수 있다. 소각은 최후의 방편이다.”

럭셔리 브랜드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에 비해 이러한 떠밀림에서 다양한 선택지와 힘을 갖는다. 제품을 되가져와 공급망에 다시 넣을 기회가 더 많다. 그러나 애초에 저가로 대량 생산을 하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는 디스카운트 럭셔리 아웃렛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패스트 패션은 보통 옷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구매와 폐기가 빠르기 때문에, 패션 소비와 폐기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패스트 패션에 대한 것이라 봐도 좋다.

의류 재활용이 패션 폐기물 관리에 대처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시각이 있다. 재활용에는 분명 잠재력이 있지만, 마구잡이로 소비하고 자원을 사용하는 것을 기본값으로 생각할 때의 이야기다. 우리가 패션 재활용을 통해 기적적으로 과잉생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망상에 가깝다.

섬유 재활용에는 진전이 일어나고 있다. 폐기 어망을 재활용해서 만들었다는 제품이 패션시장에 늘어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아직 작은 변화에 불과하다. 멋진 이노베이션을 통해 소매업자, 생산자, 유통업자에 재미없는 법적 규제를 가하고 재활용을 하게 만들 수 있다는 오해를 버려야 한다. 프랑스가 선도적으로 나섰다.

프랑스에서는 패션 생산자가 시장에 내놓은 의류가 생명을 다할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 보통은 수거와 재활용 프로그램을 통한다. 또한 프랑스 시장에 내놓는 다양한 종류의 섬유 양을 제한하려 한다. 재활용품의 재질이 다양할수록 재활용은 어려워진다.

그러나 프랑스의 이러한 혁명은 이례적이다.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는 브랜드들의 지속 불가능한 습관을 견제하고 책임을 지게 하려는 시도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글로벌 패션 재고가 이토록 크다면, 좋은 아이디어와 이노베이션이 들어간다 해도 재활용의 승리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소비자인 우리들에겐 힘든 결론이 나온다. 우리는 소각과 파괴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저비용 대량 생산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2000년의 추정에 의하면 우리는 매년 필요한 것보다 60% 더 많은 의류를 구입했고, 산 옷을 많이 입지 않고 버린다. 미국인들은 매년 인당 30kg 이상의 의류를 버리고, 이는 매립지로 간다. 우리는 대체 언제 우리의 소비 습관을 살펴보고, 패션 브랜드에게 생산을 줄일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인가?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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