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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어가 없는 삶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Tara Moore via Getty Images
ⓒhuffpost

좋아했던 작가의 새 책이 곧 회사에서 나온다. 담당 팀장님은 2월 초에 작가와 함께 브레인스토밍 겸 회의를 하기로 했으니 시간이 되면 참석해달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이십 대니까 젊은 아이디어를 마구 부탁한다고도 하셨다.

회의에 참여하는 건 재미있고 기쁜 일이지만 ‘젊은’ 아이디어라는 말에 목구멍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부담을 느낀 탓이다. 좋은 아이디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참신한 의견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 내가 늘 벗어나지 못하는 단어 중 하나다.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왜 이런 일엔 꼭 ‘젊은’이 붙냐고 했다. 연륜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는 없는 거냐고, 그냥 젊은이든 전문가든 그런 수식어 다 빼고 여럿이 모여 막 던지면 더 좋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냐고. 맞는 말이다. 우리 앞엔 늘 수식어가 붙는다.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젊다는 건 바꿀 수 없고 한정적인 수식어겠지만, 내가 말하는 건 그 수식 안에 담긴 의미나 기대다. 학벌과 전공을 예로 들 수 있다. 문창과 졸업생은 모두 수준 높은 글을 쓸 것이며 영문과는 원어민 수준의 회화를 할 거라고 여기는 단순한 생각은 오히려 당사자들의 실력을 막아선다.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내가 문창과라는 걸 밝히고 싶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언니도 그런 말을 했다. 서울예대 보컬 전공자들은 잘하면 당연하게 여기고 못하면 무시당한다고. 늘 평가의 시선을 견뎌내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그래서 좋아서 택한 전공을 즐기지 못하고, 본인의 실력에 자신 없는 이들은 자꾸 쥐구멍을 찾고 숨어든다.

오늘 페이스북에 등록했던 학력과 직장을 지웠다. 내 앞에 붙은 수식어를 지우고 싶어서다. 괜찮은 학교와 직장을 전시하는 건 내게 일시적인 우월감을 가져다주었지만, 열등감 역시 가져다주었다. 전공이 문창과인데 글을 못쓰는 나 자신에 대한 비난과 직장이 출판사인데 책을 잘 모르는 자신에 대한 혐오. 하지만 이런 수식어가 일부 영향을 미칠지는 몰라도 한 개인을 전부 설명하지 못한다는 걸 안다. 회사에서 만난 이들 중 내가 가장 질투했던(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고 감성도 풍부하며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여직원은 지방대 출신이었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난 내가 느꼈던 열등감을 나보다 낮았던 그 직원의 학벌 하나로 만회하려 했다. 학벌은 생각보다 별로네 하는 못난 생각을 하며, 어떻게든 우월감을 느끼려고.

이걸 머리로는 정말 잘 알면서도, 아직도 내게 주어진 수식어들로만 나를 평가하는 다수의 시선을 느낀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질투했던 사람이 나보다 낮은 학벌일 때 느꼈던 안도감, 관심 없던 사람의 높은 학벌을 듣고 갑자기 그 사람이 다르게 보였던 일. 그리고 그 괴리감 속에서 나 자신을 자책했던 나날들. 진심으로 바뀌고 싶다. 아니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지금 회사에서 가깝게 지내는 이들의 학벌을 모른다. 그리고 딱히 궁금해하지 않는 나 자신을 느낀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바뀌지 않는 부분만 보며 괴로워하기보단 변화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며 희망을 품어야겠다. 많은 이들이 어떤 수식어 없이도 자신을 멋지고 당당하게 느끼는 날이 왔으면 하는 희망을.

*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흔 출판사)’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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