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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01일 14시 2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0월 01일 14시 24분 KST

내 사전에 아버지는 없다

아이가 없어도 괜찮다. 덕분에 인생의 규격이 명확해졌다.

Meihui Liao / EyeEm via Getty Images
자료사진
huffpost

결혼한 지 5년이 넘었지만 아이가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뭔가 거창한 이유라도 들어야 할까 싶지만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말하는 전지적 장금이 시점으로 빙의해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될 거 같아서 낳지 않아도 될 거 같다고 말하는데 왜 낳지 않느냐고 물어보신다면 사실 그리 할 말은 없을 거 같습니다만”으로 끝낼 얘기였다면 애초에 이 글을 쓰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본다. 일단 특별한 의무감은 없다. 딱히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할 의무를 짊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 해도 짊어질 의무감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 유전자를 물려주고 싶다는 욕망도 없다. 나와 닮은 아이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 데다가 어차피 이번 생은 망한 거 같은데 그런 생의 감각을 공유하는 게 그리 좋은 일은 아닐 거 같다. 애나 나나 서로 민폐겠지.

사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이렇게 마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주변에 아이를 낳으라고 종용하는 어른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 아이가 없을 때 가장 크게 눈치를 보게 되는 건 의외로 가까운 가족 혹은 친지들이다. 다행히도 내 주변에는 아이를 낳으라 종용하는 가족도, 친척도 없다. 물론 방심해서도 안 된다. 고양이를 데리고 부산의 처가에 내려가 며칠 지낸 적이 있었다. 장모님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야도 이렇게 예쁜데 너그 아가 있으면 정말 을마나 이쁘것노?”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날씨에 대해 이야기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생각보다 효과적이었다.

아이가 고양이보다 예쁠 순 있다. 하지만 아이는 고양이처럼 알아서 먹고, 자고, 싸지 않는다. 당연하다.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다. 단지 그것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거냐고 묻는다면, 맞다. 나는 그럴 의무감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그렇게 희생해서 아이를 키워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없다. 부모님께서 나를 그렇게 고생해서 키우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굳이 나까지 그렇게 고생해서 아이를 키울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 고생담을 내 대에서 끊을 것이다. 그것이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겠다. 확실한 건 아이가 없다는 것이 내 인생을 가로막거나 비관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가 있다면 더 행복해질 수도 있겠지만, 더 불행해질 수도 있다. 너무 부정적인 생각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그리 부정적인 생각이라 여기지 않는다. 혹자는 아이가 없으면 부부 사이가 점점 소원해진다고 했는데,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아이가 없어서 소원해질 사이라면 아이가 있다 한들 이미 소원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아이가 소원해진 두 사람이 서로의 거리감을 착각하게 만드는 착시 효과를 주는 것이겠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건 아이를 키우기엔 내가 이기적인 거 같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아이는 알아서 먹고, 자고, 싸지 않는다. 먹여주고, 재우고, 싸면 치워줘야 한다. 나는 자신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아내도 하기 싫을 것이다. 고양이는 관심도 없을 것이고.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된다는 것도, 하게 만드는 것도 싫다. 그래서 아내가 아이를 꼭 낳고 싶다고 주장하지 않는 이상 나는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를 꼭 낳고 싶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결혼하기 전 여자 친구에게 언젠가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그때 여자 친구는 “누구랑 결혼할지 몰라도 알아서 해”라고 말했다. 그 여자 친구가 바로 그 ‘누구’, 즉 지금의 아내가 됐다. 업보 같은 말이었다.

다 떠나서 아내와 나는 아이가 없어도 별 탈 없이 산다. 결혼한 지 5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진 괜찮다. 깨 볶는 사이는 아니지만 밥상 엎는 사이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없으니 2인 이상의 삶을 대비하거나 예비할 필요가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2인 가구가 살면 딱 떨어지는 집이고, 예상 밖의 변수는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했다는 것 정도다. 아이가 자라는 삶을 생각하지 않으니 삶의 규모가 확실해졌다. 아이는 미지의 세계다. 나는 그 미지를 경험하고 싶지 않다. 달이 아름답다고 해서 달에 발을 딛고 싶은 게 아닌 것처럼. 나는 그냥 나 혼자만의 중력을 감당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혹자는 나 같은 사람이 늘어날수록 사회적인 불안이 가중될 것이라 일갈하기도 했다. 동의한다. 아이가 없는 사회는 미래가 없는 사회이므로. 그렇다면 지금 이 사회는 나 같은 사람을 어떻게 설득하고 있나. 이 사회는 과연 나 같은 사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그런 노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결국 나처럼 아이를 낳지 않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아이를 낳아도 될 거 같다는 희망을 주지 못하는, 사회적 실력이 형편없는 사회라는 의미니까. 그런 사회라면 차라리 망해버리는 게 낫지 않겠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차피 나는 망해도 나 혼자 망하는 삶을 선택했으므로 크게 잃을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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