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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0일 15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0월 10일 16시 11분 KST

쇼메는 유럽의 역사와 함께 한 하이퍼 주얼리 브랜드다

세계의 하이퍼 주얼리 하우스를 찾아서 ①

Louvre Museum
자크-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중 일부. 프랑스 역사상 두 번째 황제가 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에는 수많은 예물이 필요했는데, 이는 모두 쇼메의 창업자, 니토의 손길을 거친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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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는 언제나 인간을 매혹시킨다. 그러나 금은보화란 이유만으로 그 매력이 늘 동등하진 않다.

세상에는 고도로 연마된 나석이 세련된 디자인과 만나 섬세한 장인 정신을 통해 놀라운 아름다움으로 현실에 구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통 유구한 역사를 지닌 주얼리 브랜드가 스스로 쌓아 올린 명성과 유산을 적절히 활용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럭셔리(luxury)라는 말이 흔해진 21세기에 럭셔리 그 이상을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이들 브랜드는 ‘하이퍼(hyper)’란 수식어를 쓰기에 그 자격이 충분하다.

이제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하이퍼 주얼리 하우스 (hyper jewelry house)’를 하나하나 살펴볼까 한다. 탄생과 성공 스토리, 시그니처 컬렉션, 그리고 그들의 장인 정신과 대외 활동까지 브랜드의 다양한 일면을 살펴보는 시도는 주얼리 산업에 큰 획을 그은 유산을 살펴보는 것과 비슷하다. 각자 지닌 고유의 이야기와 창의성, 장인 혼이 결합하며 탄생한 미려한 존재의 생명력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첫 번째 주인공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퍼 주얼리 하우스로 역사의 파고를 직접 겪으며 성장한 프랑스의 ‘쇼메(Chaumet)’다.

Chaumet
디아뎀을 닮은 쇼메의 로고.

1780년 작은 보석상으로 시작한 쇼메는 영화 같은 사건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창업자인 마리-에트엔느 니토(Marie-Étienne Nitot)가 한 남자를 만나면서 그의 미래는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여러 버전이 있으나 가장 극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상점 앞에 쓰러져 있던 청년 장교를 발견한 니토는 상점 안으로 그를 인도해 따뜻한 수프를 대접하며 몸을 추릴 수 있게 도와주었다.

니토 덕분에 기운을 차린 장교는 훗날 꼭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 청년의 이름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훗날 프랑스 역사에서 샤를마뉴 대제 이후 유일하게 황제 자리에 오른 프랑스 제1제국의 나폴레옹 1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 쇼메 본사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래와 같다.

전투에서 승리한 보나파르트가 파리 시가를 행진하던 중 그가 타고 있던 말이 갑자기 앞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있던 시민과 군인 중 어느 누구도 흥분한 말에 다가가기 쉽지 않았는데, 이를 지켜보던 젊은 니토가 용기있게 나서 말을 저지하였다. 이에 생명을 건진 보나파트르는 후일 보답을 약속한다.

보나파르트는 조제핀 드 보아르에(Joséphine de Beauharnais)와의 러브 스토리로도 유명한데, 1792년 6살 연상인 그녀에게 청혼하며 건넨 반지를 니토에게 부탁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열린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에 필요한 왕관과 보검, 수많은 예물 또한 니토가 만들었지만 단순히 나폴레옹 1세에게 일방적인 특권을 받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니토는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왕비의 전속 보석 세공사의 제1견습생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제1후계자로서 이미 황실의 권위에 걸맞는 충분한 미감과 기술을 갖춘 상태였다.

Chaumet
‘교황 비오 7세의 교황관’(1804-1805년). 1804년 거행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에 참여한 교황 비오 7세를 위해 만든 초호화 교황관으로 역사적인 외교 선물이다.
Chaumet
교황관 최상단에는 ‘율리우스 2세’라 불리는 교황청 소유의 414캐럿짜리 에메랄드를 세팅했다.

대관식에 참여한 교황 비오 7세에게 외교 선물로 건낸 교황관 제작도 니토가 맡았는데, 이미 약혼 반지와 여러 예물을 통해 니토의 실력을 알고 있던 조제핀 황후는 교황관을 보는 순간 니토의 예술 세계와 장인 정신에 흠뻑 빠져들며 강한 확신감으로 그 자리에서 니토를 보나파르트 황실의 전속 보석 세공사로 임명한다. 이후 조제핀의 막강한 총애를 발판 삼아 수많은 황실 주얼리를 주문받게 되었다.

제국의 보석을 다루는 쇼메가 유럽 전역의 왕족과 귀족, 신흥 부유층을 사로잡으며 당대 유럽 상류사회의 유행을 선도하는 전설적인 보석상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The Eye of Jewelry
나폴레옹 1세의 프러포즈 반지인 ‘너와 나(toi et moi)’.
Chaumet
나폴레옹 1세의 보검 손잡이에는 ‘4대 저주 다이아몬드’인 리젠트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

유럽의 주얼리 역사에서 쇼메의 명성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아이템은 바로 ‘디아뎀(diadem)’이다. ‘둘러서 묶다’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다이아데인(diadein)’에서 유래한 디아뎀은 천이나 금속을 재료 삼아 머리에 두르는 장신구를 총칭하는데, 특히 공적인 행사에 참가하는 상류층 여성이 머리 앞 쪽에 쓰는 반원형의 보석 장신구인 티아라(tiara)와 동일한 의미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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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봉-팜므’(1919년)는 쇼메의 디아뎀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쇼메는 한 마디로 디아뎀의 지존이었다. 19세기 왕족, 귀족이 모여 하하 호호 담소를 나누던 파티와 결혼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성의 필수품이 바로 디아뎀이었다. 착용자의 신분과 부를 암시하는 상징물인 까닭에 디아뎀은 곧 그녀의 자존심이었고, 최고의 디아뎀을 위해서라면 결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쇼메는 지금까지 3000여 점에 달하는 디아뎀을 주문 제작했다. 즉 유럽 상류 사회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주얼리 브랜드였다는 말이다. 이에 대한 자부심은 디아뎀을 닮은 브랜드 심벌과 방돔 광장(Place Vendôme) 12번지에 위치한 본사 2층의 쇼메 박물관에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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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 때 해군 재무 장관을 위해 지었던 건물을 쇼메 본사로 사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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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메 박물관이 자리 잡은 ‘그랑 살롱’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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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곡가, 쇼팽은 그랑 살롱에서 말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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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메 박물관은 2500여 점의 디아뎀과 각종 주얼리 스케치 원본을 소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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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메 박물관 소장 디아뎀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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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아슈(gouache)로 칠한 다이아몬드 디아뎀 스케치.
Chaumet
최근 선보인 디아뎀 ‘아폴로의 창공’.

유럽의 역사와 함께 한 쇼메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컬렉션을 꼽자면 ‘조세핀(Joséphine)’이 빠질 수 없다. 조세핀은 앞서 말한 나폴레옹 1세의 부인으로 프랑스 황실, 더 나아가 유럽의 유행을 이끌던 조제핀 황후를 뮤즈 삼아 탄생한 컬렉션이다. (외국어 표기법에 따르면 ‘조제핀’이지만, 브랜드 고유어의 경우 기존 예를 존중해 ‘조세핀’이라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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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핀 황후의 초상화.

쇼메는 나폴레옹의 프러포즈 반지였던 ‘너와 나’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반지를 만드는 등 조제핀 황후를 브랜드의 핵심 인물로 상정해 역사와 상상력을 섬세하게 결합하고 있다.

백로 깃털을 활용한 머리 장신구인 아그레뜨(Aigrette) 디아뎀에서 영감을 받은 ‘조세핀 아그레뜨’ 라인은 주얼리에 대한 조제핀 황후의 안목을 ‘손가락 위의 왕관’이란 콘셉트로 풀어냄으로써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쇼메의 시그니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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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레뜨 디아뎀 ‘떠오르는 태양’(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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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핀 아그레뜨 임페리얼 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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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핀 몽타주 아그레뜨 가넷 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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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핀 아그레뜨 아콰마린 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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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핀 아그레뜨 시트린 링.

프랑스어로 수국을 뜻하는 ‘호텐시아(Hortensia)’는 쇼메가 헤리티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컬렉션이다. (외국어 표기법은 ‘오르탕지아’지만 브랜드 고유어의 경우 기존 예를 존중해 ‘호텐시아’라고 표기한다) 조제핀 황후는 수국을 무척이나 좋아해 나폴레옹 1세와 재혼하기 전 낳은 딸의 이름을 ‘오르탕스(Hortense)’라고 지을 정도였다.

Chaumet
‘오르탕스 여왕의 수국 브로치’(1807년).

나폴레옹 1세의 양녀가 된 오르탕스는 훗날 네덜란드 여왕이 되었는데 그 또한 자신의 이름이 유래한 수국을 사랑하며 본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로 삼았다. 특히 스위스 아인지델른 수도원에 들려 고해성사를 하며 예물로 바친 수국 형상의 브로치는 이후 현대 호텐시아 컬렉션의 모티브가 되었다.

고귀한 여인과의 일화가 얽힌 호텐시아 컬렉션은 적절한 환경과 전문가의 손길이 세심하게 필요한 수국의 특성에 걸맞도록 다양한 모양과 색조를 절묘하게 배치한 덕에 그 생생함과 섬세함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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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텐시아 오브 로제(Aube Rosée)’ 브로치(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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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텐시아 에덴(Eden)’ 펜던트.(왼쪽부터 말라카이트, 핑크 오팔, 카넬리안, 라피스 라줄리)

쇼메의 또 다른 시그니처 컬렉션은 ‘리앙(Liens)’이다. 프랑스어로 ‘인연’을 의미하는 리앙 컬렉션은 ‘끊기지 않는 아름다운 인연’을 주제로 리본과 매듭, 크로스를 이용한 시각적인 특징이 뚜렷하다.

쇼메는 창업자 니토 때부터 리본 형상의 모티브에 굉장히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위한 주얼리를 만들던 그는 화려한 곡선과 양감을 좋아하던 그녀가 아끼던 리본 모티브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극적인 양감과 곡선, 사실적이며 세련된 리본 디자인의 탄생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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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티시 매듭 브로치’(1907년).

또한 니토는 살아가면서 맺는 ‘인연’을 매우 중시했는데 리본의 매듭은 사람과 사람을 맺어주고 공고히 하는 상징으로 완벽하다고 믿었고 서로 엮이는 크로스 모티브를 소중히 다뤘다.

창업자 시절부터 강조하던 ‘변치 않는 사랑과 끊을 수 없는 진정한 인연’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리앙 컬렉션은 다양한 버전으로 해석되어 연인과 친구를 위한 컬렉션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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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하게 움직이는 나비매듭 브로치’(19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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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앙 세뒥시옹(Liens Séduction)’ 컬렉션.

역사가 오래된 쇼메에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세계 최초’의 타이틀을 가진 제품이 있다. 바로 ‘주얼리 워치’다. 쇼메의 창업자 니토의 아들과 시계 역사에서 혁신적인 발명가이자 럭셔리 시계 브랜드 브레게(Breguet)의 창업자, 아브라함-루이 브레게(Abraham-Louis Breguet)가 협업해 1811년 완성한 주얼리 워치는 조제핀 황후가 자신의 며느리를 위해 의뢰한 것이었다. 지금 시계 부문은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며 쇼메의 매력을 발산하는 또 다른 창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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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주얼리 워치는 쇼메에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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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미술에 오마주를 바치는 ‘쇼메의 기록(Écritures de Chaumet)’ 컬렉션 중 르누아르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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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미술에 오마주를 바치는 ‘쇼메의 기록(Écritures de Chaumet)’ 컬렉션 중 르누아르 모델.

모든 하이퍼 주얼리 브랜드가 그렇듯, 쇼메도 매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한정판 ‘하이 주얼리(high jewelry)’를 제작한다. 최고의 원석, 남다른 디자인 콘셉트, 장인 정신을 융합한 ‘작품’으로 분류되는 하이 주얼리는 하우스의 철학과 감각을 섬세하게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보통 7월에 발표하는 업계의 관례와는 다르게 쇼메는 올해 ‘쇼메의 세계(Les Mondes de Chaumet)’를 주제로 삼아 총 3번에 걸쳐 하이 주얼리를 발표했다. 러시아, 일본, 아프리카에서 영감받은 하이 주얼리를 보노라면 이 작은 예술품에 응축된 빛의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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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영감받은 하이 주얼리 ‘황실의 산책’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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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영감받은 하이 주얼리 ‘황실의 산책’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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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영감받은 하이 주얼리 ‘봄의 노래’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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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영감받은 하이 주얼리 ‘아프리카의 보물’ 시리즈. 케냐의 젊은 아티스트 에반스 엠부구아(Evans Mbugua)와 협업한 우화 속 동물들의 모습에서 아프리카 대륙만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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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영감받은 하이 주얼리 ‘아프리카의 보물’ 시리즈. 케냐의 젊은 아티스트 에반스 엠부구아(Evans Mbugua)와 협업한 우화 속 동물들의 모습에서 아프리카 대륙만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작년과 올해, 쇼메에게는 중요한 행사가 있었다. 바로 메종의 역사와 문화, 기술의 발자취를 담은 ‘헤리티지 전시회’다. 2017년에는 중국 베이징 자금성의 고궁박물관에서 <황실의 장엄함 Imperial Splendours>이란 이름으로 개최했고, 올해는 지난 6월 28일부터 9월 17일까지 일본 도쿄의 미츠비시 이치고칸 미술관에서 <쇼메의 세계 The Worlds of Chaumet>를 열며 큰 이목을 끌었다. 앞서 소개한 ‘비오 7세의 교황관’을 비롯해 쇼메가 관여한 여러 역사적인 주얼리를 세계 곳곳에서 공수해 공개하는 귀한 자리였다.

Chaumet
에르메스, 디올, 루이 비통, 펜디 등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와 함께 일한 뷰로 베탁(Bureau Betak)이 도쿄 전시의 시노그래피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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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루이즈 황후의 아크로스틱 브레이슬릿’(1810년). 나폴레옹 1세가 마리 루이즈 황후와의 약혼을 축하하기 위해 주문한 것으로 예물에 세팅한 유색석의 앞글자를 조합해 나폴레옹 1세의 생일, 마리 루이즈 황후의 생일, 그리고 그들의 약혼식 날짜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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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의 여왕, 카롤린 뮤라의 디아뎀’(1810년).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마노에 음각하고 진주로 정교하게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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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던트 워치와 화살표 모티브 핀’(1910년). 기요세 패턴 위에 에나멜로 채색한 다이얼은 플래티넘 소재의 우아한 레이스 프레임 안에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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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모티브 아그레뜨’(18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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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이삭 디아뎀’(18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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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천둥의 신, 라이진을 묘사한 일본 스타일 브로치’(1900년). 유럽을 휩쓸었던 자포니즘(Japonism)의 영향을 받은 아르 누보 양식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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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히텐베르크 디아뎀’(1830-40년). 작은 움직임에도 섬세하게 떨리는 세팅을 통해 자연주의 양식을 더욱 풍요롭게 표현했다.

요 몇 년 간 하이퍼 주얼리 브랜드의 전시회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는 자신의 헤리티지를 정리하고 이를 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브랜드 가치와 이미지를 증강시키고, 더 큰 도약을 위해 스스로를 다잡는 마음이 결연히 서있는 것 같아 흥미롭다. 각 브랜드의 아카이브가 더욱더 많이, 자주 우리를 찾아온다면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올해로 창립 238년을 맞은 쇼메. 시작부터 극적이었고 성장은 장대했으며 후일 여러 전설적인 주얼리 하우스의 등장에도 위축되지 않고 왕족과 귀족, 신흥 부유층에게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며 현대적인 하이퍼 주얼리 하우스로 남은 비결은 하나로 귀결된다. 곧 독보적인 헤리티지다.

‘유럽의 역사와 함께 한 주얼리 하우스’란 별칭에 걸맞게 쇼메는 수많은 역사적 주얼리를 남겼고, 이에 바탕을 둔 시그니처 컬렉션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과거의 이야기와 엮어 시공을 초월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참된 명품을 분별하는 기준에 ‘오직 그 브랜드만 가질 수 있는 이야기’를 포함시킨다면, 쇼메의 존재감이 바래는 순간은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