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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여왕' 50주년 : 세계를 바꾼 보잉 747의 간략한 역사 (화보)

우리 모두가 감사해야 할, 시대의 아이콘.

  • 허완
  • 입력 2018.09.30 14:42
  • 수정 2018.09.30 15:20
1968년 9월30일, 미국 워싱턴주 에버렛에 위치한 보잉 공장에서 당대 최대 규모의 여객기인 보잉 747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날 행사에는 전 세계 언론은 물론, 보잉 747을 주문한 26개 항공사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보잉 747은 1970년 1월21일, 팬 아메리칸 항공(팬암)의 뉴욕-런던 노선에 투입돼 첫 상업운항을 개시했다.
1968년 9월30일, 미국 워싱턴주 에버렛에 위치한 보잉 공장에서 당대 최대 규모의 여객기인 보잉 747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날 행사에는 전 세계 언론은 물론, 보잉 747을 주문한 26개 항공사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보잉 747은 1970년 1월21일, 팬 아메리칸 항공(팬암)의 뉴욕-런던 노선에 투입돼 첫 상업운항을 개시했다. ⓒ- via Getty Images

50년 전, 첫 번째 보잉 747이 미국 워싱턴주 에버렛의 격납고에서 빠져나왔을 때, 구경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 앞에 등장한, 아침 햇살에 반짝이던 이 비행기는 당시 존재하던 여객기의 두 배에 달하는 크기와 무게를 뽐내고 있었다. (스미소니언 매거진 2018년 10월호)

장거리 해외여행 대중화 시대를 열었던 ‘시대의 아이콘‘, 초대형 여객기 보잉 747이 30일로 탄생 50주년을 맞는다. 에어버스 A380이 등장하기 전까지 37년 동안이나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기’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던 보잉 747은 여행 문화와 항공 산업의 역사를 완전히 새로 쓴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BBCCNN 등 해외 언론들은 일제히 보잉 747 탄생 50주년을 조명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하늘의 여왕(The Queen of the Skies)’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대접이라고 할 만하다.

 

첫 상업비행에 나선 보잉 747은 승객 361명을 태우고 뉴욕을 출발해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1970년 1월22일.
첫 상업비행에 나선 보잉 747은 승객 361명을 태우고 뉴욕을 출발해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1970년 1월22일. ⓒMirrorpix via Getty Images

 

 ‘하늘의 여왕’

간단한 기록들을 살펴보자. 보잉 747은 세계 최초의 2층 제트여객기이자 세계 최초의 광동체(wide-body) 여객기로 기록된다. 보잉 747은 수직에 가까운 측벽(sidewalls)과 높은 천장을 갖춰 승객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비행경험을 선사했다. 이렇게 널찍한(spacious) 비행기는 이전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양쪽에 두 개씩 총 4개의 엔진을 장착한 보잉 747은 500여명의 승객들을 실어나를 수 있었다. 당시 국제선 노선 주력 기종이었던 보잉 707이 고작 180~200여명을 태울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혁신적 변화였다.

본격적으로 상업비행에 투입되기 시작한 첫해, 747은 운송비용을 기존의 절반으로 낮췄다. 비행기 탑승권 가격은 급속히 낮아졌다. 비행기를 이용한 여행이 대중화됐고, 거대한 여행 붐이 일었으며, 전 세계 공항들도 폭증하는 승객 수요에 맞춰 서둘러 변해야만 했다.

1960년대는 엄청난 사회적 변화가 진행되던 시기다. 우주인들을 달에 보내려는 경쟁이 있었고, 베트남전쟁 논란과 냉전의 긴장으로 요동쳤다.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비행기를 이용한 여행이 대중화된 것도 이 시기다.

핵심적 요인은 새로운 세대의 제트 여객기들이었다. 이 여객기들은 프로펠러로 작동하던 선조들에 비해 더 크고 빨라졌으며 더 강력한 제트 엔진 덕분에 더 높이 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악천후를 뚫고 비행하는 대신, 그 위에서 비행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먼 곳까지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비행할 수 있었다. (BBC 9월27일)

보잉 747의 크기는 항공사들의 국제선 여객기 주력기종으로 쓰였던 보잉 707이나 더글라스 DC-8s에 비해 거대했다. 

수백명의 승객이 점보 제트여객기에서 타고 내리자 공항들도 탑승 라운지와 체크인 카운터, 터미널을 넓히면서 재빨리 대응해야 했다.

모든 국제 항공사들이 747을 띄우는 위세(prestige)를 원했으므로 기존 세관·이민 구역은 곧 동시에 도착한 여러대의 거대한 여객기에서 내린 승객들로 가득차게 됐다.

지상 지원 시설들도 커져야만 했다. 항공기 견인차(토잉카)는 75만파운드가 넘는 747의 거대한 무게를 감당해야 했으므로 이전보다 훨씬 더 커져야만 했다. 케이터링 트럭은 훨씬 높은 탑승구까지 닿기 위해 개조되어야 했으며, 급유차는 엄청난 크기의 날개의 밑까지 닿을 수 있어야만 했다. (CNN 9월28일

팬 아메리칸 항공에 인도될 첫 번째 보잉 747(초도기)가 워싱턴주 에버렛 공장에 대기하고 있는 모습. 바로 앞에는 그 때까지 국제노선 주력 여객기로 쓰였던 보잉 707-321B가 서 있다. 1969년 3월5일. 
팬 아메리칸 항공에 인도될 첫 번째 보잉 747(초도기)가 워싱턴주 에버렛 공장에 대기하고 있는 모습. 바로 앞에는 그 때까지 국제노선 주력 여객기로 쓰였던 보잉 707-321B가 서 있다. 1969년 3월5일.  ⓒUnderwood Archives via Getty Images

 

‘점보(jumbo) 제트여객기’라는 아이디어는 당시 팬암 항공 회장이었던 후안 트리프에게서 나왔다. 그는 공항이 점점 혼잡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항공 편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지만, 당시 여객기들이 태울 수 있는 승객 수는 많지 않았다. 그는 더 큰 비행기에 더 많은 승객을 태우면 공항도 덜 복잡해지고 운항비용도 낮출 수 있다고 봤다.

트리프는 보잉에 707보다 ‘두 배’ 큰 비행기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747의 설계에도 깊숙이 관여했던 팬암 항공은 런치 커스터머로 25대의 747을 주문한 이후 한 때 가장 많은 보잉 747을 운용했(다가 훗날 파산했)다.

누구도 본 적 없던 이 거대한 비행기를 생산하기 위해 보잉은 아예 더 큰 공장을 새로 지어야만 했다. 에버렛에 위치한 보잉 공장은 지금까지도 단일 건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공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길이 70.8미터, 날개폭 59미터에 달하는 747은 너무 커서 보잉의 기존 시설 그 어느 곳에서도 생산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완전히 새로운 조립 공장, 막 생산된 747이 출고될 수 있을 만큼 큰 규모의 공장을 지어야만 했다. 보잉 역사가 마이크 롬바디는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기만 만든 게 아니라, 조립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을 지었다”고 말한다. (BBC 9월27일)

강력한 엔진도 새로 개발되어야만 했다. 프랫&위트니(Pratt & Whitney)가 개발한 JT9D 터보팬 제트 엔진은 기존 엔진들과는 달리 전면에 거대한 팬을 달았다. 이 엔진은 이후로도 제트 엔진의 모양을 완전히 바꿔낸 것으로 평가받는다고 CNN은 전했다.  

 

팬 아메리칸 항공의 보잉 747-100.
팬 아메리칸 항공의 보잉 747-100. ⓒaviation-images.com via Getty Images

보잉 747 첫 상업운항을 개시한 팬 아메리칸 항공(팬암)의 광고. 

 

시대의 아이콘

외관 디자인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전면부 상단이 혹처럼 튀어나온 보잉 747의 디자인 덕분에 누구나 보잉 747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다른 비행기들과는 생긴 것부터가 확연히 달랐으므로,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며 보잉 747은 럭셔리 장거리 비행의 대명사가 됐다고 BBC는 소개했다.

이 대형 여객기로 승객들을 유인하기 위해 몇몇 항공사들은 747의 크기가 선사하는 장점을 활용해 이전까지 생각할 수 없었던 수준의 럭셔리를 선보였다. 1970년대 아메리칸 항공은 747의 이코노미클래스에 ‘피아노 바’를 놓았으며, 컨티넨탈 항공(현재는 유나이티드 항공에 합병)의 747에는 소파가 있는 라운지가 마련됐다. (BBC 9월27일)

조종사들에게도 보잉 747은 각별한 존재였다. 영국항공 파일럿 마크 반호네커는 747 마지막 비행을 앞두고 올해 2월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글에서 “747을 이륙시킬 때의 독특한 흥분”을 언급했다. 그건 ”어렸을 때 747 조종을 꿈꿨을 많은 조종사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년시절부터 나는 747에 대한 비이성적인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 크기, 독특한 모양새, 그리고 특히 이 유명한 세 글자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상기시켰던 경탄과 자유의 느낌 때문이다. (...) 이 제트기의 크기, 이전의 것들에 비해 두 배가 넘는 승객수송 능력이 항공여행의 경제학을 바꿨고, 그 덕분에 먼 곳의 사람 및 장소와 우리가 맺는 관계도 달라졌다. (파이낸셜타임스 2월27일)

보잉 747을 조종했던 조종사 로버트 스콧은 BBC에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회고했다. ”엄청난 크기에도 불구하고 조종은 정말 즐거웠다. (...) 훨씬 더 작은 비행기처럼 말을 잘 듣고 유쾌할 정도로 방향 조종이 쉽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신나고도 놀라운 일이었다.”

미국인들에게 보잉 747은 20세기 전 세계를 호령했던 팬암 항공을 떠올리게 만드는 문화적 아이콘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 세계 최고 항공사로 꼽혔던 팬암은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 취항할 만큼 엄청난 규모의 노선을 자랑했다. 보잉 747의 런치 커스터머이자 한때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747을 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항공산업 자유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경쟁이 격화됐고, ‘너무 많은’ 보잉 747 운용으로 인한 수익 악화, 경영실패 등이 겹치면서 팬암 항공은 화려한 역사를 뒤로한 채 쓸쓸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밖에도 보잉 747은 미국 대통령의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대한항공에서 임차)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에서 ‘1호기’로 쓰이고 있다. 

ⓒaviation-images.com via Getty Images

 

보잉 747의 황혼기

시대가 변했고, 보잉 747의 전성기도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보잉 747 못지않은 항속거리를 내면서도 더 작고 가볍고 연료효율도 높은 엔진 두 개짜리 비행기(쌍발기)가 잇따라 개발되면서 초대형 여객기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엔진이 4개씩이나 되지 않더라도 이제 더 효율적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넘나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보잉 747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트윈엔진(쌍발)을 장착한 비행기는 운항에 제약이 있었다. 엔진 2개 중 하나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비상착륙할 수 있는 공항이 60분 이내에 있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이를 고려해 항로를 짜다 보면 거대한 바다를 가로지르는 게 어려워진다.

반면 이후 등장한 보잉 777이나 보잉 787 같은 트윈엔진 항공기는 330분(5시간30분) 이내에만 가까운 공항에 도착할 수 있으면 될 만큼 성능이 개선됐다. 이제 항공사들은 운항비용이 더 저렴한 데다 보잉 747처럼 거대한 좌석을 다 채워야 하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중대형 여객기들을 중장거리 국제 노선에 투입할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항공여행 문화에도 변화가 생겼다. 보잉 747과 에어버스 A380 같은 초대형 여객기들이 등장 이후 항공사들은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초대형 허브공항을 중심으로 항로를 짰다. 거대한 여객기에 탑승한 수백명의 승객들이 거대한 허브공항에 내려서 다음 목적지, 즉 더 작은 도시로 환승하는 식(hub-and-spoke)이다. 

그러나 몸집이 더 가벼운 데다 항속거리가 늘어난 중대형 트윈엔진 항공기들이 등장하면서 항공사들은 다양한 목적지들을 직접 잇는(point-to-point) 노선을 개설하기 시작했다. 보잉 747처럼 500여석이나 되는 좌석을 채우지 않아도 되므로 적당한 수요만 있으면 노선을 만들 수 있게 된 것. 항공사 입장에서는 운항비용도 훨씬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었다. 

미국 워싱턴주 에버렛에 위치한 보잉 공장에 보잉 787 드림라이너(ANA 도장)들이 대기하고 있다. 그 뒤로는 각각 대한항공, 캐세이퍼시픽항공 도장의 747-8 화물기들이 보인다. 2010년 11월27일.
미국 워싱턴주 에버렛에 위치한 보잉 공장에 보잉 787 드림라이너(ANA 도장)들이 대기하고 있다. 그 뒤로는 각각 대한항공, 캐세이퍼시픽항공 도장의 747-8 화물기들이 보인다. 2010년 11월27일. ⓒBloomberg via Getty Images

 

보잉 747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기에 등극한 에어버스 A380의 경우, 올해 2월 에미레이트 항공으로부터 20대를 주문 받은 걸 빼면 벌써 2년째 A380 신규 고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주문을 걸어놨던 항공사들은 이를 취소하고 보잉 787이나 에어버스 350 같은 차세대 여객기로 변경하는 중이다.

보잉 747도 사정은 비슷하다. 여객기로 747을 운용해왔던 항공사들은 하나둘씩 747을 은퇴시키고 일찌감치 보잉 777으로 대체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보잉 787이나 에어버스 350 등이 장거리 국제선 노선에 투입되고 있다.

이미 1990년대 초반에 보잉 747을 버린 아메리칸 항공에 이어 델타 항공(2017), 유나이티드 항공(2017) 등 미국 3대 항공사들은 모두 보잉 747을 퇴역시켰다. 일본항공(2011), 전일본공수(2011) 캐세이퍼시픽(2016), 싱가포르 항공(2012), 에어프랑스(2016), 필리핀 항공(2014), 에어 뉴질랜드(2014), KLM 네덜란드 항공(2017) 등도 747의 상업운항을 중단했다. 호주 콴타스 항공은 2021년, 영국항공은 2024년에 747을 은퇴시킬 계획이다.

한국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이 아직 보잉 747을 운용하고 있다. 특히 대한항공은 최신형 기종인 747-8i를 10대나(!) 보유중이다. 여객기 수요는 줄어들고 있지만, 막대한 수송능력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보잉 747 화물기에 대한 수요는 아직 남아있는 상황이다.

처음 공개된 이후 50년 동안, 지금까지 모두 1568기의 보잉 747이 주문됐고, 이 중 1546기가 인도됐다. 지난해 6월, 보잉은 ”앞으로 초대형 여객기에 대한 수요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있다”며 사실상 처음으로 ‘점보 여객기’ 시대의 종말을 인정했다.

보잉 역사가 마이크 롬바디는 BBC에 보잉 747의 시절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비행기에 대한 과학을 전부 이해한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거기에 약간의 마법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Even when you understand all the science of airplanes, I still think there’s a little bit of magic there too.”

마법과도 같았던, 영원히 전설로 남을 보잉 747이 50주년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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