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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27일 12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9월 27일 12시 09분 KST

브렉시트 협상의 난맥상을 5가지 키워드로 정리한다

멀어지는 합의 이혼…상처뿐인 갈라서기로 가나

cranach via Getty Images
huffpost

고통 없는 이혼은 없다. 브렉시트(Brexit) 협상은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이혼 협상이다. 영국은 2016년 6월 국민투표를 통해 EU와 헤어지기로 결정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지난해 3월 EU에 탈퇴를 공식통보했다. EU의 헌법 격인 리스본조약 제50조에 따라 영국은 탈퇴 통보일로부터 2년이 되는 내년 3월 29일 자정(서유럽 표준시 기준)을 기해 EU 회원국 지위를 상실한다. 그 전에 브렉시트 협상을 타결해야 원만한 합의 이혼이 가능하다. 복잡한 비준 절차를 고려하면 늦어도 EU 특별정상회의가 예정된 11월 중순까지는 협상을 마무리해야 하지만 사정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협상이 공전을 거듭하면서 합의 없는 이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딜(no-deal) 브렉시트’다. 위자료와 재산 분할, 채권과 채무 상속, 자녀 양육 부담 등에 대한 아무런 합의 없이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이혼하는 것이다. 그에 따른 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 합의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우세해지면서 제2의 국민투표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메이 총리는 집권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 끼어 갈팡질팡하고 있다. 도대체 왜 이혼하려고 했는지조차 헷갈리는 판이다. 장난하듯 일을 저질러 놓고 뒷감당도 못 하고 있는 꼴이다. 영국 정치권의 무책임과 무능, 분열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브렉시트 협상의 난맥상을 5가지 키워드로 정리한다.

① 고민도, 준비도 없는 이별

브렉시트의 핵심은 영국이 EU의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빠지는 것이다. EU는 사람·상품·자본·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에 기반해 단일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28개 회원국 사이에 노동과 재화, 돈과 서비스가 자유롭게 오가게 함으로써 시너지 효과와 함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영국 내 유럽회의론자들은 EU 가입으로 영국이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많다고 주장해 왔다.

예컨대 다른 EU 회원국에 가서 일하는 영국인은 100만 명인 데 비해 영국에 들어와 일하는 EU 회원국 사람은 320만 명이라며 노동력 이동의 불균형 문제를 지적한다. EU가 제공하는 각종 보조금이나 지원금도 동유럽이나 남유럽의 상대적으로 못 사는 나라에 치우쳐 막대한 분담금 부담에 비해 영국이 돌려받는 혜택은 적다는 지적도 한다. 그럴 바엔 EU에서 탈퇴해 ‘마이 웨이’를 가는 것이 영국에 이익이란 주장이다. 그것이 국경 통제를 회복함으로써 주권을 강화하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익보다 손해가 크다는 유럽회의론자들의 주장은 거짓이다. 작년 말 끝난 EU와의 1단계 브렉시트 협상에서 영국은 탈퇴 후 400억~450억 유로를 수년 간 EU에 분할 상환하기로 합의했다. 줄 것과 받을 것을 따져 ‘이혼 합의금’을 정산한 결과 영국이 돌려줘야 할 게 훨씬 큰 거로 나타난 것이다. 노동력 이동의 불균형 문제도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 들어와 일하는 EU 회원국 인력은 주로 미숙련·저임금 노동자들이다. 반면 EU에 진출한 영국인들은 대개 고학력·고임금 노동자들이다. 깊은 생각도, 준비도 없이 덜컥 이혼을 결정해 놓고 막상 현실이 되니 우왕좌왕하고 있다.

② 국민투표라는 잘못된 선택

보수 정치권과 언론의 무책임한 선동으로 영국 내 반(反)EU 정서가 퍼지자 보수당은 2015년 5월 총선을 앞두고 ‘2017년 말 브렉시트에 관한 국민투표 실시’를 공약했다. 총선 승리로 집권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브렉시트를 둘러싼 당내 분란을 조기에 종식하고, EU에 대한 협상력을 높일 목적으로 공약보다 앞당겨 국민투표 실시를 결정했다.

EU 탈퇴와 같이 복잡하고 중차대한 결정을 국민투표에 맡기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이견이 많았다. 이성보다 감정에 이끌려 투표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였다. 차라리 공론조사가 낫다는 의견도 있었다. 외국인 탓에 일자리가 줄고, 치안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반(反)이민 정서가 들끓고, 세계화로 인해 벌어지는 계층 간 격차를 EU의 간섭과 규제 탓으로 돌리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런 우려는 현실화했다. 브렉시트에 따른 득실을 교량(較量)하는 것은 애초부터 일반 국민에겐 너무 어려운 숙제였다.

Toby Melville / Reuters

③ 정치적 리더십 부재

영국으로선 EU 탈퇴에 따른 피해와 부담을 최소화해야 하지만 EU는 가급적 영국에 큰 부담을 안겨 제2의 브렉시트를 막아야 하는 처지다. 기본적으로 협상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도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통과로 얼떨결에 총리가 된 메이는 국민의 뜻은 존중하되 브렉시트로 인한 피해는 최소화하겠다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며 국내외 여론의 눈치를 살폈다.

탈퇴 조건을 다룬 1단계 협상에서 양측은 ‘이혼 합의금’과 영국과 EU에 체류하고 상대측 시민의 권리 보호 방안에 합의했다. 영국의 탈퇴 효력 발생 시점 이전에 들어온 상대측 시민에 대해서는 자유 이동과 노동의 권리를 인정하기로 했다. 현재 진행 중인 2단계 협상의 핵심 쟁점은 탈퇴 후 영국과 EU가 무역과 경제에서 맺게 될 관계 설정이다. 이 문제에서 메이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의 완전한 탈퇴, 즉 ‘하드 브렉시트(Hard Brexit)’를 지지하는 듯하더니 피해가 너무 크다는 걸 알고는 ‘소프트 브렉시트(Soft Brexit)’로 돌아섰다. 지난 7월 총리의 여름 별장이 있는 체커스에서 작성된 ‘체커스안(案)’은 사실상의 소프트 브렉시트 안이다. 공산품과 농식품에 대해서는 기존의 EU의 룰을 적용함으로써 단일시장에 남고, 서비스와 노동력 분야는 별도 규정을 만든다는 것이다.

체커스안은 영국 내 브렉시트 강경파와 EU 양쪽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좋은 것만 빼먹는 ‘체리피킹(cherry picking)’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영국 내 브렉시트 강경파는 강경파대로 체커스안은 사실상의 관세동맹 유지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항의해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과 데이비드 데이비스 브렉시트 담당 장관은 사표를 던졌다. 체거스안을 원안대로 고집하다가는 이달 말 열릴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불신임당해 낙마할 수도 있는 상황에 몰리자 메이는 체커스안을 일부 수정하며 또 한발 물러섰다.

④ 최대 난제는 북아일랜드

1단계 협상에서 영국과 EU는 아일랜드 섬의 남북을 차지하는 EU 회원국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사이에 ‘하드 보더(hard border)’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영국이 EU에서 빠지면 북아일랜드도 당연히 EU의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빠져야 한다. 이 경우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국경 통제가 부활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맞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자유 통행과자유 통관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지만 영국의 주권과 충돌하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하드 보더’ 배제와 주권 행사라는 모순을 어떻게 푸느냐가 북아일랜드 문제의 핵심이자 협상의 최대 걸림돌이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모두 ‘하드 보더’의 부활에는 반대하고 있지만, 북아일랜드의 EU 관세동맹 잔류 문제에서는 차이가 있다. 아일랜드는 당연히 잔류를 주장하지만, 북아일랜드는 정파별로 입장이 다르다. 제1당인 민주연합당은 EU의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떠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과 EU,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내 각 정파가 얽혀 있어 타협이 쉽지 않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 후 국제적 압력에 밀려 북아일랜드 지방을 뺀 아일랜드를 분리·독립시켰다. 그러나 영국에 남은 북아일랜드에서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구교 세력과 영국 잔류를 요구하는 신교 세력의 투쟁이 극심했다. 1969년 이후 계속된 무력 충돌로 3천6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국과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내 7개 신·구교 정파가 5년간의 협상 끝에 98년 4월 벨파스트 협정을 타결하고 평화체제로 이행했다.

⑤ 현실로 떠오른 ‘노딜 브렉시트’

내년 3월 말 영국이 EU 회원국 지위를 잃더라도 2020년 말까지는 기존의 제도와 룰이 그대로 적용되는 일종의 적응기(전환 기간)를 갖기로 했지만, 이는그때까지 탈퇴 협상이 원만히 마무리될 때 얘기다. 노딜 브렉시트가 되면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캄캄한 상태에서 그대로 관계가 종료된다. 영국이나 EU 모두 피하고 싶어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미 약세를 보이는 영국 파운드화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파운드당 1.2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영국의 부동산 가격은 평균 30% 폭락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노딜 브렉시트 시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4%, 네덜란드·덴마크·벨기에 등 인접국은 1%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한다.

메이 총리는 “나쁜 딜(bad deal)보다는노딜이 낫다”며 공멸의 시나리오인 노질 브렉시트를 배수진 삼아 EU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딜 브렉시트가 벌어진다고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다”며 국민을 안심시키고 있다. 영국 정부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당장 문제가 될 80가지 항목에 대한 비상 대응지침을 마련키로 하고, 이미 40여 개 지침을 발표했다. 노딜 브렉시트를 ‘실제상황’으로 보고 이미 대비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노딜 브렉시트로 입을 피해가 양쪽 다 너무 크기 때문에 막판 타협의 가능성을 물론 배제할 수 없다. 타협이 어려운 세부 사항은 공란으로 놔둔 채 일단 협상을 봉합하고, 추가 협상은 브렉시트 이후로 미루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 경우 비준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딜’인가, ‘노딜’인가. 초읽기에 몰린 브렉시트 협상은 동전 던지기 게임이 되어버렸다.

*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