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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 부는 극우 민족주의의 바람

ⓒTT News Agency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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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정치를 관찰하는 사람들은 이번 스웨덴 총선 결과를 보고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극우 스웨덴민주당이 25% 정도의 지지로 제1당이 될 수도 있다는 사전 여론조사와는 달리 3위(17.5%)에 그쳤기 때문이다.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이 1위(28.3%), 중도우파인 중도당(Moderates, 이를 한국 언론에서 보수당이라 부르는 것은 오역이다)이 2위(19.8%)를 차지했다. 이론적으로는 스웨덴민주당이 캐스팅보트를 쥔 모양새지만 사민당과 중도당은 스웨덴민주당과의 연정은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총선과 비교했을 때 스웨덴민주당의 부상은 꾸준하다. 스웨덴민주당은 2010년 총선에서 5.7%의 득표율로 의회에 진출한 이래, 2014년에 12.9%를 득표해 제3당으로 올라섰다. 10% 포인트 이상이던 2위 중도당과의 차이는 이제 불과 3% 포인트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그만큼 집권 가능성에도 근접했다는 의미다. 게다가 사회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사상 최악의 결과를 받아들었다. 유럽에 부는 극우 민족주의의 바람이 그만큼 거세다는 뜻이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유럽 대륙에서도 극우 민족주의 세력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유럽 진보의 고향이라는 스웨덴에서조차 극우 민족주의의 흐름에서 비켜나 있지 않음을 이번 총선 결과가 확인시켜준 셈이다.

증오로 문제를 덮는 21세기 극우 민족주의

유럽에서 극우 민족주의의 전통은 뿌리 깊다.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이때는 주로 국가 간 대립에서 드러나는 극단의 적대감과 호전성의 형태였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주로 강대국이 영토 확장을 추구하며 나타났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은 바로 이런 대립의 참혹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나치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20세기 들어 극우 민족주의는 내부의 적을 지목하여 고립시키고 공격하는 희생양의 전략을 폈다. 최근 유럽 각국에서 고개를 드는 극우 민족주의는 이런 전통을 부활시킨다는 점에서 나치즘의 후예들이다.

21세기의 극우 민족주의는 반이민 또는 반난민의 정서로 표출되는데 그 중심에는 백인 또는 종족(ethnic) 정체성을 강조하는 성향이 자리 잡고 있다. 적대적 감정의 대상이 난민인지 아니면 이민자인지, 또는 국적을 가진 자국 시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사람을 적으로 지목하며 사회의 모든 불행과 문제의 원인으로 삼아 공격한다. 이런 태도는 흑인을 피부색으로 차별하고 북아프리카나 서아시아 출신을 이슬람이라는 이유로 배제하려 한다. 복잡한 정책 사안을 단순한 증오심으로 덮어버리는 전략이다.

이같은 포퓰리즘 논리가 유권자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세계경제의 장기 위기가 시작한 이후다. 유럽에서 극우 민족주의의 부상은 1980년대 프랑스에서 출발해 나라별로 선거제도나 정당구조에 따라 차이를 보였지만 꾸준히 이어졌다.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는 극우 후보 마린 르뻰이 결선투표까지 올라갔다. 이제 이탈리아에서는 극우 레가(Lega)가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M5S)과 함께 집권세력이 되었다. 독일이나 스웨덴처럼 중도세력이 굳건했던 나라에도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나 스웨덴민주당이 집권을 넘보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소외된 자들이 반유럽 정서와 극우 민족주의를 만든다

유럽연합은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1990년대 단일시장을 형성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급격한 경제 변화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와 소외 지역의 주변화를 가속했다. 이는 유럽 전역에 성장의 친(親)유럽 지역과 소외의 반(反)유럽 지역이라는 지형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런던에서는 60%가 브렉시트에 반대했지만, 성장에서 소외된 지역의 반유럽 정서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반유럽 정서는 다시 극우 민족주의의 문화적 배타주의나 이슬람 혐오로 연결된다.

스웨덴은 이런 큰 흐름에서 대체로 예외였다. 스웨덴이 유럽연합에 가입한 것은 1995년으로 늦은 편이다. 세계화나 유럽화의 광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정치와 사회의 균형을 유지했지만, 고립의 위험이 높아지면서 이를 계속 거부할 수는 없었다. 스웨덴은 이민이나 난민 정책에 있어서도 매우 관대한 기조를 고수하면서 개방성을 유지했다. 2006년 이후 매년 스웨덴에 이주하는 외국인의 수가 평균 10만명에 달했는데, 특히 2015년에는 시리아 난민 사태로 한해에 15만명 이상이 들어왔다. 인구 5천만의 우리나라로 치자면 한해에 75만 명의 난민을 갑자기 끌어안은 셈이다.

스웨덴 총선결과,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당시 발생한 난민들은 유럽 국가 가운데 특히 독일, 영국, 스웨덴으로 이주하기를 바랐다. 정착조건이 좋고 일자리를 찾기가 가장 수월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강력하게 국경의 문을 닫아걸었지만 독일과 스웨덴은 대부분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난민을 받아들인 나라가 바로 스웨덴이다. 현재 인구 1천만명 남짓한 스웨덴은 외국 출신(본인 또는 부모가 모두 외국 출생인 사람) 거주자가 인구의 24%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게다가 외국인이 집중된 지역에서는 다양한 사건사고나 폭동이 일어나 스웨덴의 이민자 수용능력이 한계에 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놀라운 점은 극우의 부상이 아니라 이런 비상상황에서도 스웨덴 정치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사민당은 여전히 제1당이고, 반이민 극우세력은 득표율 20%도 넘지 못했다. 추가 이민이나 난민의 유입을 막으며 속도조절에 들어갔지만, 기존 이민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대한 복지 혜택을 주고 있다. 그리고 스웨덴 정부는 이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계속 고민 중이다. 2015년 11월 난민 수용 조건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발표하면서 아사 롬손 부총리는 눈물을 흘렸다. 인간적 정부의 딜레마와 안타까움을 솔직하게 보여준 이 장면이야말로 스웨덴 정치를 반영한다. 한줌의 피난민조차 이슬람 혐오의 거대한 유령으로 과대포장하여 공격하는 한국사회에서 바라볼 때 스웨덴은 여전히 개방적 진보의 등대다.

*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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