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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이 비핵화를 위한 '상응조치'를 미국에 요구하는 이유는 뭘까?

답은 6.12 북미공동성명에 이미 나와있다.

  • 허완
  • 입력 2018.09.21 16:28
  • 수정 2018.09.21 16:32
ⓒChung Sung-Jun via Getty Images

″김정은 위원장은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거듭 거듭 확약했습니다.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완전한 비핵화를 끝내고 경제발전에 집중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습니다.

다만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4개 합의사항이 함께 이행되어야 하므로, 미국이 그 정신에 따라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준다면 영변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를 포함한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습니다.”

 

2박3일 간의 3차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대국민 보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 부분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4개 합의사항이 함께 이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그 정신에 따라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남북 정상이 이번에 서명한 ‘평양공동선언’에도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할 경우 북한이 비핵화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미국의 행동이 비핵화 진전을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이란 대체 무엇일까? 남북 정상은 왜 미국의 ‘상응조치’를 요구하는 걸까?

사실 답은 6.12 북미공동성명에 이미 나와있다.

ⓒSAUL LOEB via Getty Images

 

관계 정상화가 먼저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요구한 반면, 미국은 ‘핵 시설 리스트 제출’ 같은 구체적인 비핵화 이행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맞섰다.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충분한 진전이 없다”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북한 방문을 전격 취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이 볼 때, 충분한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건 미국 탓이 크다. 6.12 북미공동성명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왜 그럴까?

유신모 경향신문 외교전문기자는 지난달 칼럼에서 6.12 북미공동성명의 핵심은 ‘선(先) 비핵화-후(後) 보상’이라는 기존 비핵화 합의 구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국내외 많은 언론들을 비롯해 특히 지금까지의 남북·북미 대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해 온 이들이 간과해 온 부분이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 공동선언을 역사적 의미나 상징성을 제외한 ‘북핵 협상’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논의해야 할 의제의 순서를 바꾸기로 합의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싱가포르 공동선언은 신뢰구축을 통해 북·미 간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고,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노력하면서 그 결과물로 비핵화에 이르게 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진전시키면 이에 상응하는 경제·정치적 조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왔던 그동안의 ‘선(先) 비핵화’ 논의 구조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경향신문 칼럼 8월17일)

ⓒSAUL LOEB via Getty Images

 

실제로 6.12 북미공동성명에는 새로운 북미관계 구축과 그로 인한 ”상호 신뢰 구축이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관계 정상화와 상호 신뢰구축이 먼저라는 얘기다. 북한이 ‘선(先) 종전선언’을 요구해 온 배경이다.

합의사항에도 북한과 미국이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했다(1조)는 내용이 제일 먼저 등장한다. 그 다음은 두 나라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 체제를 한반도에 구축”한다(2조)는 내용이다.

북한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은 그 뒤(3조)에서야 등장한다. 유 기자는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비핵화 조치를 먼저 취하라는) 미국의 이 같은 태도는 약속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합의를 할 때 북한의 요구를 ‘통 크게’ 수용하고 새로운 협상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보기로 결정했다가 나중에 생각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협상 방식의 변화가 갖는 의미를 간과한 채 합의를 한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함으로써 북한이 비난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칼럼 8월17일)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직후 미국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며 북한이 강하게 반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북 정상이 미국의 ‘상응조치’를 언급한 것도, 문 대통령이 북미 합의의 이행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SAUL LOEB via Getty Images

 

종전선언이 먼저다

그렇다면 미국의 ‘상응조치’가 무엇이 되어야 할 지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국민보고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이렇게 설명했다.

″일단 싱가포르선언에서 북미 간의 합의가 있었습니다.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조치를 취하는 것이고 그리고 또 미군 유해를 송환하는 것이고, 그에 대해서 미국 측에서는 이른바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북한에 대한 안정을 보장하면서 북미관계를 새롭게 그렇게 수립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평화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조치들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 서로 균형이 있게 취해 나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조치들을 취해 나가면서 그에 맞게 미국 측에서도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또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새로운 북미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그런 조치들을 취해 준다면 북한도 더 추가적으로 비핵화 조치를 빠르게 취해 나갈 용의가 있다 그런 뜻을 밝힌 것입니다.” 

문 대통령이 ‘적대관계 종식‘과 ‘북한 체제 안전 보장’이라고만 언급하자 재차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종전선언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이 적대관계 종식을 위한 ”정치적 선언”이라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이제는 적대관계를 종식시키자라는 하나의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그런 식의 신뢰를 북한에게 줄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

ⓒChung Sung-Jun via Getty Images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재차 개념을 정리하기도 했다. 조금 길지만 문 대통령의 설명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사용하는 종전선언의 개념은 원래 65년 전에 정전협정을 체결할 때, 그때 그해 내에 빠른 시일 내에 하기로 했던 전쟁을 종식한다는 선언 그리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그 약속이 지금 65년 동안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출발로 우선 전쟁을 종식한다는 정치적 선언을 먼저 하고 그것을 평화협정체결을 위한 평화협상의 출발점으로 삼아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때 평화협정을 체결함과 동시에 북미관계를 정상화 한다라는 것이 우리가 종전선언을 사용할 때 생각하는 그런 개념입니다.

그 개념에 대해서 또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종전선언이 마치 평화협정 비슷하게 정전체제를 종식시키는 그런 식의 효력이 있어서, 예를 들면 유엔사의 어떤 지위를 해체하게끔 만든다거나, 주한미군을 철수를 압박받게 하는 그런 효과가 생긴다거나 이렇게 평화협정처럼 생각하는 견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런 식의 서로 개념을 달리하는 것 때문에 종전선언의 그 시기에 대해서 엇갈리는 되는 것으로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번 방북을 통해서 저는 김정은 위원장도 제가 아까 이야기한 것과 똑같은 개념으로 종전선언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면 종전선언은 이제 전쟁을 끝내고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겠다라는 정치적인 선언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평화협상이 이제 시작되는 것입니다. 평화협정은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지는 최종 단계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종전선언과 비핵화 조치의 선후관계를 딱 잘라서 나누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해나가야 미국의 신뢰도 생길 수 있기 때문. 문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의 ‘균형있는 조치’를 강조한 것도 그런 차원으로 해석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북한이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고 약속한 부분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과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과거 북측이 선제적으로 취한 비핵화 조치들이 보여주기식 폐기라는 국제사회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긴 했지만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북한이 약속한 것도 의미있는 성과다. 영변 핵시설은 ”북한 핵 개발의 심장부이자 상징”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Pool via Getty Images

 

미국은 아직...?  

다만 아직까지도 미국 정부가 ‘상응조치‘의 필요성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20일 브리핑에서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비핵화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워트 대변인은 일단 남북정상이 합의한 내용을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으로부터) 합의문 초안을 받았지만 북한에서의 협상과 대화들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면대면 대화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며 ”다음주 초에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연내에 종전선언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며 ”(다음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때 그 부분을 다시 논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핵화와 관련해 김 위원장과 나눈 대화 등을 전할 것으로 보인다. 

6.12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선(先) 신뢰구축’이라는 원칙을 재차 설명하고, 종전선언의 필요성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를 설득해야 할 필요도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협상 교착국면을 뚫어낸 협상가적 면모를 발휘한 문 대통령에게는 또 하나의 큰 과제가 놓여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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