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미국에서 금주법이 실패한 이유

우리가 생각했던 그 이유가 아니었다

  • 한설
  • 입력 2018.09.20 16:54
ⓒhuffpost

다들 ‘금주법’이라는 단어, 한 번 정도는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보통은 사람들에게 죄악시되는 산업들(예컨대 음주, 도박, 흡연, 마약, 성매매 등)을 강력히 규제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면, 결국은 그 정책이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예시로 자주 등장하죠. 일부는 해당 규제책이 금주법과 동일하게 실패하길 바라는 모종의 기대를 섞어서 그 얘기를 꺼내곤 하는데, 정작 금주법이 왜 실패했는지 아는 사람은 잘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은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라서 실패했다’는 궁색한 답변을 내놓을 뿐이었죠. 실제로 금주법 실패에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만, 저는 그중 잘 알려지지 않은 한 가지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바로 수질입니다.

 

ⓒSabdiZ via Getty Images

 

술과 수질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잘 이해가 안 가시리라 생각합니다. 술을 빚을 때도 물을 사용하니 수질이 나쁘면 술맛이 떨어진다는 그런 얘기일까 싶으시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관점의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야 일상에서 워낙 많이 접해서 그게 소중한지도 잘 모르는 존재, 수돗물 얘기입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또래 분들이라면 수돗물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짐작해보지도 못하겠지만, 무척 당연하게 예전에는 수돗물이 없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겐 소독된 형태의 깨끗한 수돗물이라는 것이 없어, 그냥 평범한 물을 마시고도 갑자기 탈이 나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평범한 시골 동네에서야 비교적 깨끗한 우물물을 마시고 냇물을 마시는 식으로 안전한 물을 섭취할 수가 있었지만, 도시에는 사람이 많은 만큼 질병도 많았거든요. 목이 타서 마신 물에 콜레라 균이 들어있으면 50% 확률로 사망했었고, 역시나 별생각 없이 물 한잔 들이켰다가 장티푸스에 걸리면 20% 확률로 사망하곤 했습니다. 비교적 경미한 설사 같은 경우는 그냥 예삿일이었죠. 이런 도시에서 수분을 섭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었으니, 맛도 좋고 살균효과가 있는 알코올까지 포함된 맥주를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알코올 소비량 추세
미국의 알코올 소비량 추세 ⓒVINEPAIR

 

이런 필요성이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금주법이 시작되었습니다. 도표를 보면 아시겠지만, 1930년 즈음에 급격히 꺾이는 부분이 바로 금주법 시행 시기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보셔야 할 부분은 전체 주류 중 맥주가 차지하는 비율입니다. 금주법 이전인 1800년대 말엽에는 맥주가 정말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으나, 금주법 이후에는 증류주(spirits)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바뀌었단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금주법 시기에 몰래 술을 마시려다 보니 도수가 센 술을 선호하게 된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로 미국인들의 음주 취향이 무척이나 급격히 변화하였을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사실 이런 변화는 금주법 때문 만이라고 보긴 힘듭니다. 거의 금주법이 끝나가던 시기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수돗물 염소소독법이 도입되었거든요. 에이, 근데 고작 그것 때문에 맥주 소비량이 줄었을까요? 이게 미국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에 좋은 다른 지표가 있으니, 바로 영국의 술 소비량 변화 경향입니다.

 

영국의 알코올 소비량 추세
영국의 알코올 소비량 추세 ⓒGWilson

 

영국에서는 미국보다 앞선 1910년부터 1916년 사이에 수돗물의 염소소독법이 도입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다른 술 소비량도 줄어들긴 했지만, 영국에서도 급격한 맥주 소모량의 변화가 그 시기에 관찰이 되었습니다. 영국이 1910년대에 금주법을 시행한 것이 아니라면 수돗물의 수질 개선 덕분에 구태여 안전을 빙자해 맥주를 마실 필요성이 낮아지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 개연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인들은 금주법 시기에도 아직 염소소독법이 도입되지 않았으니 안전하게 수분 섭취를 하기 위해서는 예전처럼 맥주를 마셔야만 했던 거죠. 그런데 밀주업자가 과연 맥주만 팔았을까요? 구체적인 연구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저는 깨끗한 수돗물의 공급 지연이 금주법 실패에 나름대로 악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금주법의 실패는 ‘본능 때문’이라기 보단 ‘공중위생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맥주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음주가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던 셈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과거 금주법과 비슷한 정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8년 9월 14일부터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시행되면서, 전국의 모든 초중고 교내에서 커피음료 판매가 금지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취지야 무척이나 좋은 일이고, 카페인의 과량 섭취가 청소년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저는 조금 의아합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커피를 마시는 것이 과거 수도시설이 정비되지 않았던 시기 미국인들이 맥주를 물 대신 들이키던 것과 무엇이 그리 다를까요?

10여 년 정도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면, 제가 학교에서 커피를 마셨던 이유는 커피를 보고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끓어올라서도 아니고 카페인에 의존성을 보여서도 아니었습니다. 공부에 쫓겨 수면 시간이 줄어들자 잠을 이기려고 억지로 마셔댔을 뿐이죠. 그런 학생들에게 마치 과거 미국인들처럼 술을 마시는 것이 부도덕한 행동이라고 비난하는 것보단, 수돗물에 염소소독을 하듯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바람직한 청소년 카페인 소비량 감소 방안이라 생각합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정책 #수질 #보건 #수도 #금주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