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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생애 다시는 동물원에 가지 않을 것이다

뽀롱이 몫의 고민은 얼마나 진행되고 있을까

  • 이서영
  • 입력 2018.09.20 15:45
  • 수정 2018.09.20 15:46
ⓒhuffpost

어젯밤에는 술에 좀 취해서 들어왔다. 그러다보니 몸이 굼떠졌고, 평소보다 느리게 현관문을 열었다. 고양이들이 늘 그렇듯이 현관 앞까지 나와 있었다.

평소에는 ”들어가-” 하면 쫄래쫄래 들어가는 애들인데, 오늘따라 잘 안 그런다 싶더니만, 란포가 내 다리사이로 몸을 부비면서 쓰윽 빠져나가 버렸다. 당황해서 란포를 불렀지만, 란포는 쫄래쫄래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기겁을 해서 가방을 던져놓고 란마가 못 나오게 현관문을 닫은 다음 란포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란포란마 아카이브

 

란포는 5초만에 쉽게 포획되었다. 현관 아래에서 풀냄새를 맡는 란포를 불렀더니, 냐아? 하면서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그대로 고양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짧은 사이에 너무 긴장해서 현관문 닫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울면서 밥을 마구 퍼주었다. ‘왜 나가냐, 나랑 같이 살기 싫냐’고 란포에게 투정을 부리다 잠들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온 애인은 내가 밥을 너무 많이 퍼줬다고 혀를 차며 도로 좀 집어넣었다고 한다.

란포 입장에서야 ‘그냥 집 밖에 잠깐 구경 좀 나갔다 온 건데 엄마는 울고불고 난리람’ 같은 느낌일 것이다. 원체 아빠가 하네스 묶고 여기저기 산책 다녀 놓은 터라 집 밖으로 나가는 게 영 무섭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리고 란포는 원래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기도 하다.

그 뿐인가. 예전에 한 번 멍청한 아빠가 집 문을 열어놓고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도 신이 나서 실컷 집 밖을 탐색하다가 돌아와서 문 열어달라고 앵앵 울어댄 똑똑한 고양이다. 솔직히 문을 환히 열어놓고 고양이가 안 나가기를 기대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고양이 탐정한테 전화를 걸고 난리를 치다가, 바깥에서 란포 목소리를 듣고 화급히 문을 열었다. 그때도 란포가 무사히 돌아온 게 너무 다행이고 긴장이 한꺼번에 풀려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출근길에 어젯밤 란포가 냄새맡던 풀을 다시 보았다. 그 5초 간의 탈출을 가슴 떨려하면서 생각하다가, 사살된 퓨마 생각이 났다. 문이 열려있으면 고양이는 나간다. 큰 고양이인 뽀롱이도 문이 열려있어서 나갔을 것이다. 우리 란포는 고양이라서 열린 현관문으로 그냥 나가도 아무도 총으로 쏘지 않았다. 큰 고양이인 뽀롱이의 경우는 달랐다. 하지만 뽀롱이가 숨어있던 곳은 낡은 상자 안이라고 했다. 고양이가 다 그렇지, 뭐.

란포가 집 밖에 나갔다가 사살되어 돌아왔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뽀롱이도 누군가에게는 우리 뽀롱이었겠겠지.

 

 

란포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살게 하는 것이 란포에게 가장 행복할지 고민을 한다. 내 애인은 고양이들이 높은 데에 올라가는 걸 좋아하니 책꽂이 윗칸을 비워주었다. 내 친구는 고양이가 좁은 집에서 갑갑해 하는 것 같다며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세상 모든 뽀롱이들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뽀롱이 몫의 고민은 얼마나 진행되고 있을까. 슬프다. 나는 남은 생애 다시는 동물원에 가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이서영 작가의 반려묘 페이지 ‘란포란마 아카이브’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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