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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고릴라 하람베는 동물원에서 10분만에 사살당했다

우리에게 동물원이란 무엇일까?

  • 백승호
  • 입력 2018.09.19 15:58
  • 수정 2018.09.20 09:34
ⓒhuffpost

 2016년이었다. 5월 어느 날, 미국 오하이오주(州)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만 4세 남자아이가 고릴라 우리에 떨어졌다. 아이가 호기심에 울타리를 기어 넘어가다 사고가 났다.

이 고릴라 우리에는 3마리의 고릴라가 있었다. 다른 고릴라는 떨어진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17살짜리 수컷 고릴라 ‘하람베’만은 아이에게 다가갔다.

 

 

 하람베는 아이를 10여분 동안 붙잡고 끌어당겼다. 영상만 보고서는 아이를 ‘괴롭히는’ 것인지 같이 놀고 있는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적어도 ‘위험하거나’ ‘위험할 수 있는’ 상황임에는 분명했다.

″영상을 본 동물행동학자들은 명백한 공격 행동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새끼가 어른 몸에 붙어 있으려고 할 때, 어른 고릴라는 이렇게 새끼를 들고 다닌다고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 마크 베코프가 당시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인간에겐 위협적으로 보이지만, 고릴라에게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이다(어미 개가 새끼를 입으로 물고 다니는 걸 떠올려보라).

위험한 동물원

하람베를 사살하기로 결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이었다. 하람베는 자신의 17번째 생일 다음 날인 5월 28일에 사살당했다. 이 동물원의 책임자는 ”힘든 결정을 내렸지만 어린아이의 목숨을 구했기 때문에 옳은 결정이었다”며 ”(상황이) 아주 나빠졌을 수 있었다” 말했다.

당시 이 문제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위급한 순간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말들과 부모의 부주의 때문에 고릴라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말들이 대립했다.

하지만 ‘하람베’의 죽음에 모두가 슬퍼했던 것은 분명했던 것 같다. 하람베가 세상을 떠나고,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하람베 해시태그를 단 추모게시물이 이어졌다.

 

 

2년이 지난 2018년,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동물원 측의 부주의로 우리를 탈출한 퓨마 ‘뽀롱이’(호롱이는 잘못 전해진 이름이다)는 탈출한 지 4시간 30분 만에 사살됐다. 생포 작전에 실패했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퓨마가 재빨리 움직이는 데다 사람을 보기만 하면 도망가는 바람에 생포가 쉽지 않았다”며 ”퓨마가 마취총을 맞았지만, 마취가 깨 다시 활동함에 따라 부득이하게 사살했다”고 말했다.

관계자들이 설명한 뽀롱이의 마지막 발견 장소는 대전동물원 내 배수로 종이박스 안이었다.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고 몸 뉘일 곳을 찾아 종이박스 안에 들어가있었던 뽀롱이었지만 “제때 생포하지 않을 경우 시민에게 피해를 줄 우려가 있어 숙의 끝에 사살”할수 밖에 없았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가슴이 아픈 일이다. 소셜미디어에도 애도의 글이 이어졌다.

″퓨마가 사살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느낀 감정이 공포가 아니라 자유를 찾은 행복이었으면 좋겠다”

″탈출해서 한다는 게 기껏 커다란 상자에 들어가 있었던 것뿐이라 더 마음이 안좋다”

마음이 아프단 이야기가 주를 이룬 가운데 ‘인명피해라도 나면 더 큰일이기에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며 관계 당국의 결정을 이해하는 이야기도 많이 언급되었다. 둘 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더 큰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이 모든 문제는 뽀롱이가 ‘동물원’ 안에 있었기에 발생한 일이다. 야생에서 살아야 할 뽀롱이는 붙잡혀 동물원으로 끌려왔으며 동물원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에 위치했기에 사람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 사살됐다.

이같은 고민은 청와대 청원으로도 이어졌다. 현재 2만8천여명이 참여한 이 청원의 작성자는 “1평짜리 유리방에 갇혀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인데 문이 열리면 당연히 탈출하지 그게 어떻게 동물 잘못입니까? 동물도 우리와 같은 생명체입니다. 제발 인간의 실수를 동물의 탓으로 돌리지말아주세요. 이번 퓨마는 자신의 본능대로 움직인 것 이지 절대 총살당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동물원을 폐지해달라”고 청원했다.

더욱이 이번에 뽀롱이가 탈출한 그곳, 대전 오월드에서는 작년 1월 ‘남극이’라는 북극곰이 죽은 곳이다. 한국의 여름이 너무 더워서 남극이가 너무 힘들어했다는 수의사의 증언도 있었다. 뜨거운 동물사 안에서 정형행동(동물의 목적 없는 반복행동으로 스트레스가 극심함을 보여줌)을 보이기도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남극이의 사인을 단언할 수 없지만 남극이가 동물원의 환경을 엄청 힘들어했다는 사실은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동물원이 ‘동물을 위한 공간’이 아니란 증거는 뽀롱이와 남극이의 사례에만 있지도 않다.

 

 

″강원도의 유일한 동물원에 사는 곰은 자기가 먹은 걸 토하고 또 그걸 먹는 행동을 반복한다. 염소는 우리에 몸을 하도 박아서 페인트가 뿔에 묻어날 정도다. 동물 특성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좁고 더러운 시설 속에서 동물들이 정형행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이 운영하는 동물원이건 지자체가 운영하는 동물원이건 상황은 마찬가지다.”

-열악한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이 미쳐가고 있다(동영상)

 

(동물원에 갇힌 동물에게 나타나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자신의 분변을 먹거나, 음식물을 계속해서 게워내고 다시 먹는 행동(regurgitation), 혹은 의미 없는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상동증(stereotypy)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실제로 동물원에 가보면 아무리 규모가 큰 동물원이라 하더라도 이상행동을 보이는 동물이 없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곰이 얼굴 털이 닳아 빠지도록 쇠창살에 얼굴을 비비며 고개를 끊임없이 흔드는 모습을 보고도, 사람들은 ‘곰이 테크노 춤을 춘다’며 손뼉을 친다.

-철창 안에서 미쳐가는 동물들

세심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우리는 동물원이 동물에게 썩 좋지 않은 환경이란 걸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동물원이 ‘필요악‘이라는 주장에 쉽게 납득한다. 동물원이 ‘동물의 연구와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보존‘에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것.

하지만 이 글을 읽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것 같다. 몇 단락을 인용하자면 이렇다.

″미국 서부에 있는 네 개의 동물원을 토대로 동물원 방문객에 대해 연구가 시행됐다. 수중 전시를 구경하러 온 사람 중 86%가 ‘재미를 위해서 또는 누구와 함께’ 동물원에 오게 되었다고 했지만 고작 6%가 동물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또 시카고 링컨 동물원에서 실시한 방문객 행동 연구에선 어른이건 어린이건 ”원숭이를 구경하는 시간이 원숭이에 대한 설명을 읽고 보는 시간보다 훨씬 높았다”고 한다. 연구에는 또 사람이 동물을 얼마나 괴롭히는 지도 규명했는데 350명의 대상자 중 78명이 우리를 두드리거나 다른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

“30년 경력의 전 동물원장 데이빗 헨콕스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말하기를 보존에 이용되는 예산은 전체 동물원 예산의 3%도 안 된다고 한다. 나머지는 ”최첨단의 전시와 더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한 마케팅 비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이렇게 동물 보존에 재정을 터무니없이 적게 잡은 곳이 많지만, 보존에 정말로 애쓴다고 해도 동물에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그런 노력이 무산될 때가 많다. 2013년 시애틀 타임스는 50년에 걸친 미국의 390개 시설의 코끼리 번식과 보존 결과를 조사했다. 조사에 따르면 ”코끼리가 사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감금된 생활에서 오는 부상과 질병”이라고 한다. 콘크리트 바닥을 계속 밟고 있어 생긴 발 부상, 불충분한 운동량으로 생기는 근골격 질병이 그 예다. 더 암울한 결과는 동물원에서 코끼리 새끼의 사망률이 40%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AZA는 코끼리의 실태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전체적인 개체 수의 보존 성과를 선전한다.”

-동물원에 가기 전 꼭 알아야 할 11가지

 

 

신기한 동물들을 가둬놓고 전시하는 것은 수천 년 전부터 부와 지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동물들의 삶이 진정 어떤지는 거의 알지 못했다. 동물들을 가둬놓는 것은 ‘동물은 ‘타자‘다‘, ‘동물은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다‘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과학과 윤리학이 진화했다. 발전하고 있는 행동학은 이 ‘타자’인 동물들의 놀라움과 복잡함을 보여준다.

고화질 비디오 시대에, 새끼 이구아나가 뱀들이 득실거리는 해안에서 도망가는 모습을 드론이 찍는 시대에, 어린이가 가짜 배경에서 잠자고 있는 동물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게 대체 있을까?

-이 사진들을 보면 동물원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당장 모든 동물원을 폐지하고 동물을 자연으로 내보내자’ 같은 결론만 남는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우리가 원래 ‘동물원’이라는 시설에 기대했던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보자는 거다. 이미 실행하고 있는 곳도 있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우드랜드파크 동물원에는 면적 26만㎡가 넘는 시설에서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300여종의 야생동물 1000여마리가 살고 있다.

기존 동물원과 이 동물원의 차이점은 몇 가지 있는데 가장 먼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동물원의 ‘구조’다. 동물들이 우리에 갇힌 게 아니라 이를 보러오는 사람들이 격리돼있다.

″콘크리트 바닥과 인공구조물로 이뤄진 방사장에서 관람객에게 둘러싸여 ‘구경거리’로 취급받던 동물들은 숲, 초지, 언덕, 냇물 등 실제 서식지와 흡사하게 조성된 환경에서 비로소 ‘몸을 숨길 권리’를 찾게 된다. ‘사자가 있으니 보러 오라’고 광고하던 동물원에서 오직 ‘사자를 보기 위해’ 입장료를 낸 관람객은 사자를 보지 못하면 실망했다. 그러나 사자의 서식지를 모방하는 데 초점을 맞춘 동물원에서는 야생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자가 보일 수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였다. 이런 몰입형 전시방법은 미국과 유럽에 전파돼 현대적인 동물원인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됐고, 관람객은 동물원에서 동물을 보지 못하는 것을 점점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동물을 ‘구경거리’로 취급하지 않은 동물원을 가보았다(사진)

이 동물원은 진짜 동물원이 제공할 수 있는 ‘교육’에도 초점을 맞추었다. 전시장 주위에는 동물 자체에 대한 설명보다는 아프리카에서 인구 증가로 인한 농장화가 동물 서식지를 침범하고, 밀렵과 트로피 사냥이 야생동물을 멸종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설명하는 표지판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 우드랜드파크도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다. 최저온도가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일 년에 절반이 넘는 시애틀에서 코끼리들은 좁은 내실에 갇혀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세 마리 모두 족부 질병과 만성적 관절염을 앓았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정형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동물보호단체는 ‘철책과 콘크리트를 숨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새롭게 등장한 개념은 ‘언주(Unzoo)’다. 우드랜드파크를 설계한 데이비드 행콕스는 자신이 설계한 동물원도 결국 동물과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눈속임일 뿐 동물복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회의적인 입장을 언론과 저서를 통해 여러차례 밝혔다.

그래서 행콕스와 함께 우드랜드파크 동물원을 디자인한 동물원 디자이너 존 코는 동물원의 역발상인 ‘언주’(Unzoo)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가 설계한 오스트레일리아의 태즈메이니아 데빌 언주에서는 야생동물을 사람이 사는 곳으로 데려와 전시하는 대신 관람객이 동물의 서식지로 찾아가 생태계를 관찰한다.

 

ⓒJames Warwick via Getty Images

 

″행동반경이 넓은 대동물 대신 지역에 분포하는 소동물의 생태구조를 중심으로 전시하고 이들을 보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늘고 있다. 미래의 동물원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혹은 계속 존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사회는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전시하는 동물원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한국에서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뽀롱이‘의 죽음은 우리에게 ‘구시대적 형태의 동물원’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 것 같다. 이제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동물원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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