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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작은 노회찬들이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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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등 행사가 열리고 있을 때 무대 밑에 한번쯤 가보라고 가끔 사람들에게 권한다. 궂은일이 얼마나 많은지… 행사가 원만하게 치러지도록 많은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무대 밑뿐 아니라 행사장 곳곳에서 현수막을 붙였다 떼고, 홍보물을 인쇄소에서 제때에 찾아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비가 내리면 우비를 챙겨 나눠주는 일 등을 누군가는 담당해야 행사가 제대로 굴러간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오래전 일찍이 결심한 바가 있으니 “나는 앞으로 어떤 직함을 갖게 되든 무대 위에 올라가 소개받는 ‘내빈’에 속하지는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그러한 결심은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라가 소개받는 ‘내빈’이 절대로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예견한 열등감의 보상일지도 모른다.

무대 아래에서 사진을 찍거나 하면서 돌아다니고 있으면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내빈 중에서 “하종강 선생, 올라오세요”라고 부르는 사람이 간혹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고 노회찬 의원이다. 마지막으로 그 음성을 들은 것은 지난해 8월 서울 상암동 YTN 사옥에서 열린 ‘해직자가 오네요. 공정방송 온에어(ON AIR)’ 행사장에서였다. YTN에서 해고된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가 9년 만에 복직하는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끝난 뒤 참석자들이 모여서 사진 촬영을 하던 중에도 가운데쯤에 앉아 있던 노회찬 의원이 “하종강 선생, 여기 와서 사진 같이 찍어요”라고 몇 번이나 불렀다. 행사가 끝난 뒤 나에게 다가와 “사진이라도 같이 찍지… 에이, 맨날 밑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라고 말해주던 그 음성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한 학기에 16개의 강의를 편성해 누구나 와서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노동아카데미’를 차질 없이 운영하는 것이 내가 학교에서 맡은 일이다. 이번 학기에는 홍보가 많이 늦어졌다. 겨우 개강 2주를 앞두고서야 수강생 모집 포스터를 인터넷에 올릴 수 있었다. 강의 15개를 일찌감치 확정해놓고 한 칸을 비워둔 채 며칠을 망설였기 때문이다.

고 노회찬 의원 부인 김지선씨에게 강의 요청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져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교육과정을 논의하는 운영위원회에서도 “김지선씨의 이야기를 정말 듣고 싶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다음 학기에 신청하는 것이 예의인 것 같다”는 의견도 만만찮아서 그 결정의 무거운 짐이 나에게 넘어와 있는 상황이었다.

며칠을 그냥 보내다가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마침 김지선씨가 “노회찬이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어 했던 꿈을 이루기 위해 일어서려 한다”는 내용의 글을 기자들에게 보냈다는 기사를 보고 용기를 냈다. 전화 문자를 간단히 보내고 기다렸더니 밤 1시가 다 된 시간에 전화가 왔다. 11월쯤에 성공회대학교에 와서 강의 하나만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김지선씨는 고맙게도 “그때쯤이면 마음을 추스르고 사람들 앞에 설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고 노회찬씨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느라고 내가 오래전 일찍이 무대 위에 올라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노라고 말하자 20대 시절부터 나를 보아온 김지선씨가 말했다. “아주 하종강스러운 결심을 했네, 무슨 그런 결심을 하고 그래. 그냥 올라가서 사진 찍으면 어때서…”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강의가 성사됐고 나는 비로소 수강생 모집 포스터를 완성할 수 있었다.

공기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일과 관련해 전국에 있는 노조 지회를 두 달 동안 돌아다녔다. 아랫녘 작은 도시의 비정규직노조 지회장을 맡고 있는 여성 동지가 버스터미널까지 나를 태워다 주며 말했다. “정규직이 된다고 해도 저는 정년이 다 돼서 혜택을 1년밖에 못 봅니다. 7년 전에 노동조합 만들고 그동안 엄청 탄압당했는데… 관리자에게 잘 보이려고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그 인간들도 이번에 모두 정규직이 되겠지만… 그래도 이거 하나는 내가 해놓고 그만둬야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끝까지 싸워볼랍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노회찬 의원 생각만 하면… 분해서 눈물이 나와요.” 터미널까지 오는 동안 둘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그렁그렁 맺혔다. 운전을 하느라고 지회장 동지가 손바닥으로 자꾸 눈물을 훔쳤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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