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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아 캠프 비상사태에 관한 공개 서한

모리아 캠프에 머물고 있는 아동들
모리아 캠프에 머물고 있는 아동들 ⓒⓒRobin Hammond/Witness Change
ⓒhuffpost

나는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정신건강국에서 14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해 왔다. 정신과 응급 상황에 관해서는 전문가라고 자부하며, 나는 주로 중독이 있거나 여러 정신과 질환을 앓는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치료하는 사람 중에는 인신매매를 당했던 사람들도 있다. 나는 또한 난민들과 수감자들에게도 정신건강 의료를 지원하고, 그들에게 보호 및 사회 복귀 프로그램에 관해 조언도 건넨다. 나는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그동안 갖가지 난관과 위기 속에 많은 경험을 쌓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의사로 일해 왔지만, 중증 정신질환 환자를 이렇게 많이 만나보긴 처음이다.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레스보스 섬에 머물고 있는 난민들인데, 그들 대다수가 자살 생각, 심지어 자살 시도와 같은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고 있고, 모두들 매우 혼란스러워한다. 수면, 식생활, 개인위생 관리, 의사소통 등 기본적인 일상생활조차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레스보스 모리아 캠프의 최대 수용 인원은 3100명인데, 현재 무려 9000여 명이 모여 있어 캠프가 터져 나갈 지경이다. 캠프 사람 3분의 1이 아동이며, 열악한 환경 때문에 사람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모리아 캠프로 들어온 가족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모리아 캠프로 들어온 가족 ⓒⓒRobin Hammond/Witness Change

망명 신청자들은 고국에서 혹은 피난길에서 극도의 고문과 폭력을 당했던 사람들로 다들 육체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외상을 입었다. 감옥과도 같은 레스보스 섬은 갖가지 형태의 폭력을 조장하는 상황을 유발하며, 성 · 젠더 폭력까지 일어나 아동, 성인 모두가 피해를 입고 있다. 이 같은 끊임없는 폭력은 중증 정신병적 증상을 촉발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유입 인구는 계속 늘어나는데 내륙으로 가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어,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미틸레네 · 모리아 진료소에서 근무하는 팀들은 의료, 소아과, 정신건강 분야에 지원할 것이 너무 많아 허덕이고 있다. 환자 수도 많고 증상도 심각해져 현장 동료들이 점점 지쳐 가는 게 눈에 보인다. 망명 시스템도 점점 후퇴하고 사람들의 생활 환경도 급격히 나빠지고 있으며, 그리스 정부와 EU, 유엔난민기구(UNHCR)의 대응도 부적절해 사태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우리의 노력이 상황을 대폭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짓누른다. 한편, 지금도 사람들은 계속 들어오고 중증 정신병을 앓는 환자들도 더 많아지고 있어, 이런 상황이 조만간 바뀔 수나 있을지 의문스럽다. 지금과 같은 억제 정책이 유지되는 한, 이곳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신과 지원은 결코 줄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취약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망명 신청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놀라게 한 점은, 레스보스가 20세기 중반 이후로 유럽에서는 볼 수 없게 된 오래된 정신병원과 비슷해 보인다는 것이다. 열악한 환경, 끊임없는 폭력의 위험, 억압된 자유, 심신 건강 악화, 섬 사람들 모두가 느끼는 스트레스와 압박이 불러일으킨 결과다.

문화 중재자로 환자들과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이 모리아 캠프 옆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 앞에서 어린 아동을 안고 있다.
문화 중재자로 환자들과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이 모리아 캠프 옆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 앞에서 어린 아동을 안고 있다. ⓒⓒFaris Al-Jawad/MSF

한편, 시민들과 현지 단체 직원들, 정부 기관 관계자들이 느끼는 긴장과 고통도 점점 더 두드러진다. 우리와 협력하는 다른 NGO들도 부담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활동을 중단하거나 줄이는 단체들도 많아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우리는 날마다 여기서 심각한 인권 침해에 부딪치며, 사람들에게 상당한 의료 · 정신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모리아 캠프는 분명 비상사태에 처해 있다. 이 상황을 비상사태로 보고 즉시 단호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합리하고 비윤리적인 일이다. 나의 오랜 경험과 이곳의 심각한 상황을 놓고 볼 때, 이곳 상황은 앞으로 몇 주 사이에 급격히 악화될 수도 있다. 그리고 섬 전체를 극도의 혼란 상태로 빠뜨릴 만한 폭력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글 · 알레산드로 바베리오(Alessandro Barberio) 박사 정신과의 / 국경없는의사회 레스보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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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인권 #모리아 캠프